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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1. 2021

동양의 하와이에 평화의 바람을!

2016년 1월 9일(2일째)-옛 해군사령부 방공호, 평화기념공원, 아메

조식을 야무지게 먹는 아이

첫 아침이 밝았다. 호텔 조식을 기대하면서 다들 식당으로 갔다. 일본식으로 꾸며진 식단은 아이가 먹기에도 정말 좋았다. 집에서도 낫토는 자주 먹어서 그런지 거부감 없이 아이는 낫토에 구운 연어, 김 등을 가지고 밥을 야무지게 먹었다. 나는 이런 식단을 좋아해서 그런지 아침이지만 배가 가득 차도록 먹었던 것 같다. 낫토에 미소시루, 달걀, 베이컨, 각종 절임 반찬 등으로 풍족한 식사를 했다. 다들 만족스러운 첫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부터는 다소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차를 빌려서 다니기로 했다. 호텔 근처인 아시아바시 역에서 나하 국제공항 역까지 간 다음 거기서 버스를 타고 렌트카 회사로 갔다. 렌트카 회사에서 인원에 맞게 예약해 둔 차량 2대를 렌트하러 갔다. 한국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접수하는 곳에 한국인 안내원이 있어서 친절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차량으로 이동해서는 꼼꼼하게 안내를 들었다. 일본인이었지만 설명을 듣는데 무리가 없던 나는 이것저것 질문하면서 확인을 했다. 네비도 확인하고 주유도 확인하고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나와 동생이 한 대씩 운전사가 되어 안전하게 모시기로 했다. 일본에서 하는 첫 운전이고 국제 운전이어서 다소 긴장되었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와 방향이 반대라서 신경 쓰면서 운전을 했다. 처음 도로에 나왔을 때에는 많이 떨려서 저속 주행을 하면서 천천히 갔다. 그리고 도로 방향이 반대이니 헷갈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갔다. 도로가 복잡하지 않고 차선도 많지 않아서 생각보다는 쉽게 적응되었다. 


화창해진 오키나와 하늘

어제와는 다른 푸른 하늘 덕분에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즐기며 오키나와 도로를 즐길 수 있었다. 처음 가볼 곳은 먼저 옛 해군 사령부 방공호였다. 입장료 계산을 하는데 할인되는 걸 물어보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직원이 내가 일본어를 너무 잘하니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청명한 날씨와 대비되는 이곳은 지금 차가운 동굴만 남아있지만 뜨거웠던 포탄과 피가 튀기는 전장의 중심에 있던 곳으로 이제는 말없이 자란 풀들만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전쟁 당시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유적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제주도에도 이러한 동굴이 있어서 당시 전쟁기의 참상을 보여주는데 옛 해군 사령부 방공호는 당시 미군의 포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철저히 준비된 곳이었다.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은 일본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독일, 이탈리아와 연합군들이 전쟁을 하고 있었고 태평양에 있는 일본의 거대한 식민지 섬들에는 미군과 일본군이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방공호 안에서 수류탄으로 자결한 흔적

오키나와 전투는 이오지마 전투와 더불어 일본 영토에서 벌어진 전투로 민간인들에게 어마어마한 피해를 불러일으킨 전투였다.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은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으며,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죽기를 강요했다. 전쟁 당시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하여 군인, 노동자 심지어 위안부로 끌고 갔던 것처럼 오키나와 주민들을 그렇게 사용하다가 결국엔 자살을 강제했다. 이른바 옥쇄(玉碎)가 자행된 것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이렇게 집단 자살을 강요받아 서로 폭파해서 자결하거나 서로 죽이거나, 미군의 포격으로 죽거나, 일본군의 선전으로 미군이 오면 살해나 강간 등이 있다고 속임 당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그렇게 자랑했던 거함 거포 시대의 최정점이었던 야마토 전함이 침몰한 사건이기도 했다. 일본은 이후에도 본토 결사 항전을 외쳤지만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당하고 소련의 참전으로 인해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된다. 오키나와는 이후 미국의 점령지가 되어 1972년까지 미국의 지배 아래 있게 되었고 현재에도 주일 미군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아픔의 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일 미군 철수를 외치고 심지어는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외치는 곳이기도 하다.


옛 해군사령부 방공호 안 

1944년 일본 제국 해군은 오로쿠 비행장(현재 나하공항)을 지키기 위해 미군 군함 포격에도 끄떡없는 방공호를 만들게 되는데 오키나와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석회 동굴을 많이 만들었다. 450m 정도 되는 거미줄 같은 거대한 통로를 만들게 되었고 여기에는 막사, 작전실, 막료실, 사령관실, 의료실, 암호실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당시 3,000명 정도 인원이 동원되었는데 건설 대부분을 곡괭이로 하는 등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미군이 상륙하게 되고 이후 1945년 6월 13일에 오타 미노루 소장은 권총 자살을 하게 되고 장교들은 수류탄 폭파로 집단 자살을 하게 된다. 오타 미노루 소장은 당시 오키나와 지상군 사령관으로 복무하고 있었고 죽음 후에는 중장으로 추서 되었다. 방공호 내부에는 지금도 수류탄 폭파 흔적이 남아있어서 그날의 참상을 그려보게 했다. 하얀 벽 곳곳에 총알을 쏜 듯 파편이 나있는 모습을 보니 전쟁의 무서움과 무모함이 느껴졌다. 전쟁 이후 53년, 58년에 이곳에서 도합 2,300명이 넘는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참혹한 상황에 머리가 저려왔다. 내부가 미로처럼 생겨서 하나의 병영처럼 생겼으며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더운 바깥 날씨와는 다르게 서늘하게 느껴졌다. 이곳의 분위기 때문에 더욱 서늘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미로 같은 곳에서 잃어버릴 수 있어서 내가 안고 다녔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방공호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셨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호텔 조식을 다들 든든하게 먹어서 그런지 밥 생각이 안 나서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와 빙수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 빙수는 우리와는 다르게 시럽만 뿌려주는 식이어서 딸기 빙수와 이곳의 명물인 흑설탕 빙수를 시켜서 먹어보았다. 잠시 오키나와의 평온한 바다를 두 눈에 담고 이어서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한국인 위령비

그리고 한국인 위령비가 있는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 갔다. 오키나와 전투는 앞서 말했듯이 일본 영토 안에서 가장 치열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 희생자가 엄청났다. 일본군도 많이 죽었지만 오키나와 주민들도 많이 희생되었으며 더군다나 이곳에 강제로 끌려온 조선인 희생자도 많이 있었다. 그분들을 기리기 위해서 우리는 찾았다. 드넓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는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희생되었던 많은 분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비석들이 있었고, 한국인 위령비는 엄숙한 느낌마저 주었다. 오키나와 남부 마부니(摩文仁)에 조성된 공원에는 검은색 대리석으로 많은 이름들이 새겨있었고 바로 옆에는 한국인 위령비가 있었다. 평화의 초석이라고 불리는 부채꼴 모양의 비석들에는 총 24만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위령비는 무덤이면서 제단 같은 모양새였는데 당시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된 조선인은 만 명이 넘는다고 전해졌지만 현재 확인된 것은 313명으로 고국으로 가지 못한 한이 서려있는 듯했다. 위령비의 돌은 우리나라 전국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 한다. 상당히 드넓은 공원 주변을 산책하면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다시는 이러한 일을 겪지 않기를 기도했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에서












니라이카나이 다리

공원에서 나와서는 니라이카나이 다리(ニライカナイ橋)로 갔다. 거대한 도로가 휘어져 들어가는 다리인데 오키나와의 멋진 배경을 볼 수 있는 다리로 전망이 매우 좋았다. 니라이카나이는 니라이 다리와 카나이 다리가 합쳐져서 이렇게 부른다는데 '니라이카나이'는 오키나와 방언으로 바다 너머의 이상향을 뜻한다고 한다. 한참 경치 구경을 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큰 섬이 아니라서 그런지 자전거 라이딩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저마다 자전거를 타고 복장을 갖춘 라이더들이 단체로 와서는 사진도 찍고 했는데 마침 한국 사람들이어서 조금 놀랐었다. 나중에 제주도를 자전거 타고 라이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메리칸 빌리지

저녁을 먹기 위해서 아메리칸 빌리지(AMERICAN VILLAGE)로 갔다. 오키나와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미국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데 일례로 일본의 교통 문화로 손꼽히는 것이 전철이지만 오키나와는 전철이 없다. 전쟁 전에는 있었지만 파괴되고 나서는 복구하지 않고 미국처럼 도로를 깔아 자동차 문화로 만들었다. 그래서 여행 온 사람들이 주로 렌트해서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아메리카 빌리지는 미국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으로 거대한 테마파크같이 보이면서 안에는 쇼핑센터, 극장, 카페, 음식점 등 돈 쓰기에 좋게 만들어 놓았다. 주차장도 매우 넓어서 주차하는데 전혀 어려움은 없었다.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어둑어둑해진 저녁에 방문한 우리는 일단 A&W버거에 가서 햄버거와 루트비어를 샀다. 버거를 좋아하는 나와 동생, 사촌동생들은 무조건 가서 먹어야 했기에 일본에서도 오키나와에만 있는 버거 가게라서 맛을 봤다. 루트비어는 계피 맛이 나는 탄산음료인데 꼭 박카스에 탄산수 넣어서 먹는 것 같다고 다들 별로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좋아해서 마트에서도 다시 사 먹고 공항 면세점에서도 구입해 아껴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배를 두둑하게 채우기 위해 가성비 좋은 회전 초밥집에 가서 마음껏 초밥을 즐겼다. 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한국어 번역이 된 패드가 있었기에 다들 주문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먹고 나서는 카페에 들려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키나와의 평화를 기원하면서 다녔던 두 번째 날이 그렇게 저물어 갔다.

A&W버거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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