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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1. 2021

비 내리는 류큐의 거리

2016년 1월 8일(1일째)-나하 국제공항, 슈리성, 국제 거리

다시 대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의 날이 밝았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차를 몰고 인천 국제공항까지 아침 일찍 출발해서 여유 있게 도착했다. 저번에 한 번 가봐서 그런지 어느 정도 익숙한 풍경과 거리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은 어두컴컴한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오랜만에 가는 일본 여행에 대한 설렘을 희미해지는 별빛에 남겨보았다. 일본에 유학 생활을 하면서 산적도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졸업 후 취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사실 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가는 것이 망설여졌는데 저 멀리 남국의 태양이 이글거리는 오키나와를 가게 되어 설렌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출근길로 붐비기 시작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고 아침 9시쯤 인천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티켓팅을 한 다음 11시 30분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전에 일본 화폐로 환전도 하고 데이터 로밍도 확인했다. 이제 만 1살, 한국 나이로는 3살이 된 아이는 아직 여행이 뭔지 모르지만 많은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기분 좋아하면서 울지도 않고 잘 탔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인천 국제공항에서 일본 오키나와 나하 국제공항까지는 비행시간으로 2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


나하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

오키나와 나하 국제공항은 오키나와 제도(沖縄諸島)의 허브 공항으로 가장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으며 나하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오키나와 제도는 사람이 거주하는 섬으로만 계산하면 4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이 오키나와 섬에 살았다. 오키나와 현(沖縄県)의 전체 인구가 140만 명 정도였는데 그중 120만 명 정도가 나하시(인구 35만 명)를 중심으로 오키나와 섬 중남부에 살고 있었다. 제주도의 전체 인구가 70만 명에 못 미치고 제주시에 60만 명정도가 사는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규모가 크다 할 수 있겠다. 물론 본섬의 크기는 제주도가 약간 더 크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탑승하기 전에 면세점 거리에서 샀던 샌드위치를 안 먹고 공항에 가지고 내렸는데 탐지견이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쪽으로 와서 냄새를 맡아보는 통에 샌드위치는 그대로 반납해야 했다. 우린 국제선에서 내렸는데 입국 수속을 위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 빌딩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2층에서 모노레일에 탑승했다. 밖으로 나왔을 때 나하시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울비였지만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지는 비였는데 우산이 없었던 우리는 편의점에서 비닐우산을 사서 나눠 쓰면서 거리를 걸었다. 아내는 처음 와보는 일본의 깨끗한 거리가 인상 깊었는지 그 이야기를 자주 했다. 우리나라도 거리가 깨끗하긴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거리는 비가 와서 그런지 더 깨끗한 느낌을 받았다.


슈리성 디오라마

나하 시내에 있는 호텔에 들러 먼저 체크인을 하고 짐을 놓은 다음 가벼운 발걸음으로 첫 번째 둘러볼 곳을 가기로 했다. 첫 번째 둘러볼 곳은 오키나와의 세계문화유산인 슈리성(首里城)이었다. 오키나와는 1879년 일본에 복속되기 전에 류큐왕국이라는 독자적인 문화를 가진 국가였다. 그전에 사실 중국의 명,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우리나라와는 고려, 조선 때 조공을 바치거나 교역을 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큐슈의 실력자였던 시마즈 가문의 영향 아래 있다가 그때 침략당해서 완전히 일본으로 복속되어 현재 오키나와 현이 된 것이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슈리성은 류큐왕국의 왕이 거주했던 성으로 붉은 성벽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슈리성 자체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슈리성이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2000년 구스쿠 유적 및 류큐국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그 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 사실을 모르는데 슈리성은 철저히 파괴되어서 재건한 건축물이다. 슈리성은 본래 류큐왕국의 왕궁이자 거성인 구스쿠(ぐすく)인데 마지막 왕이었던 쇼타이 왕이 도쿄로 압송되고 류큐 왕국 대신 오키나와 현이 설치되는 폐번치현 과정에서 완전히 왕궁의 역할을 잃게 되었다. 


슈리성 정전 앞에서

1933년에 일본의 국보가 되었고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다가 죄 없는 오키나와 사람들을 엄청나게 희생시킨 오키나와 전투로 인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미군 함대의 포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때 많은 문화재가 불타거나 소실되었고 이후 슈리성의 터에는 류큐 대학이 세워지게 된다. 그러기 때문에 슈리성 자체보다는 그 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다. 그리고 1979년에 류큐 대학이 이전하게 되고 본토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1992년부터 복원 공사가 시작되어 우리가 여행 갔던 2016년에는 공사가 막바지였다. 최종 복원 공사가 끝난 것은 2019년이었다. 그런데 복원 공사가 끝나자마자 다시 화재가 나서 완전히 전소당했다고 한다. 2019년 10월 31일 새벽에 정전인 세이덴에서 난 화재가 호쿠덴, 난덴, 쇼인, 니케이우둔 등으로 전파되어 6개의 중심 건물이 불에 탔고 이 화재는 경과 9시간이 지난 오전 11시쯤에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사실 복원 건물이니 다시 지으면 된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안에 있던 1,500점이 넘는 유물이 불에 타서 없어지거나 훼손당한 것이다. 소방 당국에서는 전기 합선으로 인한 누전 때문에 일어난 화재 같다고 했는데 계속된 슈리성의 재난에 마음이 아팠다. 


안내원 아저씨와 담소

전철을 타고 가기 전에 다들 약간의 허기를 느껴서 편의점에 들러 어묵과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먹었다. 아시아바시 역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는 전철을 타고 슈리 역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택시를 2대로 나눠 타고 슈리성 정문인 슈레이몬(守礼門)에 하차했다. 상당히 옛 건물로 보이지만 사실 이 건물 역시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파괴되어서 1958년에 복원한 건물이다. 정문에서 시작한 우리의 답사 코스는 소노향우타키 석문에서 제 1성문인 칸카이몬(歓会門), 슈리성 내부 세이덴(正殿), 보초들이 자리 잡고 있던 반쇼(番所)까지 이루어졌고, 타마우둔(玉陵)과 킨죠우쵸 이시다다미 길까지 2시간 가까이 구경했다. 명나라의 영향을 받은 이 건축물은 우리의 경복궁과 상당히 닮았는데 이 슈리성이 정확히 언제 건설되었는지는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대개 14세기 정도에 지어졌을 거라고 짐작한다. 류큐왕국의 전통 복장을 입은 안내원과 대화도 하면서 사진도 찍으면서 즐겁게 관람을 마치고 저녁은 근처 가정식을 파는 식당으로 갔다. 슈리성 관람할 때까지 비가 내리다가 식당으로 갈 때에는 다행히 비가 그쳤다.


분위기가 좋았던 현지 식당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식당으로 가게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오키나와의 특색 있는 음식들을 여러 가지 맛볼 수 있었다. 오키나와 소바(沖縄そば), 고야 참프루(ゴーヤーチャンプルー), 동파육과 비슷한 라후테(ラフテー), 일본 유학 당시 자주 먹었던 돈지루(豚汁), 해초이지만 바다에서 나는 포도라는 뜻의 우미부도(海ぶどう), 각종 해초로 만든 나물 등 다양하게 주문해서 먹었다. 물론 오리온 맥주도 주문해서 다들 한 잔씩 했다. 아이가 있어서 다다미 좌식에서 함께 먹었는데 좁은 가게 안에서 전통 악기를 연주하는 주인아저씨의 연주에 사람들은 분위기에 맞춰 신명 난 가락을 즐겼다. 아이도 편안하게 앉아서 오키나와 음식을 즐겼다. 작은 로컬 식당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어서 너무 좋았다. 가게에서 나와서 근처 국제 거리(国際通り)를 거닐면서 첫날밤을 마무리했다. 겐초마에 역과 마키시 역 사이에 위치한 국제 거리는 나하시는 물론 오키나와 현에서 손꼽히는 번화가로 그렇게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재건된 오키나와의 중심지로 국제 거리의 이름은 '어니 파일 국제 극장'에서 따왔다. 이러한 발전을 두고 국제 거리는 기적의 1마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에는 오키나와 최대 토산품 과자가게인 오카시고텐(御菓子御殿)이 있어서 여기에서 자색 고구마 타르트를 사서 맛보았다.

주인아저씨와 함께


촉촉해진 국제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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