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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un 01. 2021

가토 키요마사에서 사이고 다카모리까지

2018년 8월 12일(3일째)-구마모토 성, 센간엔, 가고시마 시내

구마모토의 강한 햇살을 받으며 일어난 뒤 어김없이 일본식 조식을 먹고 짐을 챙겼다. 매일 아침 먹어도 질리지 않는 식단이어서 아침마다 조식 먹는 시간이 즐거웠다. 구마모토에 온 이유는 단 한 가지 구마모토 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배울 때 일본어 강사 선생님 고향이 구마모토여서 구마모토 라멘에 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는데 이번에 먹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일본은 도시, 지역마다 유명한 라멘이나 면 요리가 하나씩 있는 듯했다. 구마모토 시(熊本市)는 구마모토 현의 현청 소재지로 인구는 70만 명을 상회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인구가 비슷했다. 큐슈에서는 후쿠오카와 키타큐슈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다. 밖에 나오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우리를 덮쳤다. 여행 내내 비가 오지 않았던 것은 축복이지만 너무 화창하게 내리쬐는 햇빛 덕분에 무더위로부터 견뎌내야 했다. 호텔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구마모토 성을 가기 위해 서둘렀는데 이미 많은 방문객이 왔는지 주차장에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자리를 찾아 주차를 했다. 


구마모토 천수각 앞에서

구마모토 성을 말하기 전에 일단 구마모토가 자랑하는 영웅이면서 우리에겐 숙적인 가토 기요마사를 알아야 한다. 1592년 임진왜란 침략을 단행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측근인 가토 기요마사는 침략 당시 선봉이었는데 그가 전쟁 이후 돌아와서 세운 성이 구마모토 성이기 때문이다. 가토 기요마사는 임진왜란 당시 울산성 전투에서 조명 연합군의 공세에 우여곡절을 겪고 후퇴에 성공하는데 그때의 축성술과 고생을 경계삼아 난공불락으로 쌓은 성이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공성전이 일어나 어떻게 될지 모르니 다다미에 말린 토란을 넣어 놨다고도 전해진다. 그리고 주변에 은행나무를 많이 심어 전쟁이 나면 식량으로 쓰려고 했다. 가토 기요마사는 후퇴하면서 울산 사람들을 포로로 많이 데려왔는데 그들이 살던 곳이 구마모토에 울산마치(蔚山町)로 아직도 남아있다. 구마모토 성은 일본에 유학하던 때에도 나고야가 고향이던 일본 친구에게 일본 3대 성 중 하나라고 들어봤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구마모토 성은 완전한 복원이 아니고 콘크리트로 외부만 복원이 되었고, 나고야 성과 오사카 성은 복원되면서 콘크리트 공법에 내부에 엘리베이터까지 설치되어 명성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복원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컸다. 나에게 있어서 일본 최고의 성이자 제대로 된 성은 히메지 성으로 여름, 겨울에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난공불락의 성이어서 무샤가에시(武者返し)라고 전해지는 구마모토 성을 지은 가토 기요마사는 항상 전쟁을 걱정하고 대비했지만 그가 죽은 이후 가토 가문은 영지를 몰수당하고 대가 끊겨 호소카와 가문이 구마모토를 오랫동안 다스리게 된다. 


지진으로 무너진 구마모토 성

해자가 보이고 성 외곽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점점 보이는 성의 모습에 전율을 느꼈다. 아내이, 어머니는 더운 게 더 걱정이었지만 나는 어서 성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6년 4월 14일에 발생한 최대 진도 7의 구마모토 지진으로 성의 군데군데가 무너져 있었고 보수 공사 때문에 성 안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는 너무 허탈고 이는 어제만큼이나 더워서 벌건 얼굴에 혼이 빠져 있었다. 천수각은 그대로 남아있으나 망루와 성벽 등 많은 곳이 금이 가 있고 무너져 있어서 복구가 한참 걸린다고 했다. 구마모토 성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지진으로 인해 붕괴된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오기 전에도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이다. 둘러봐도 파손된 흔적이 만만치 않아서 상당한 강진인 것이 체감되었다. 다들 덥고 기운이 빠져서 그나마 덜 더운 나무 밑에서 사 온 간식을 먹기로 했다. 은행 성이라는 별명답게 은행나무가 참 많았는데 그나마 거대한 은행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이 있었기에 그늘을 휴식처 삼아 군데군데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카스텔라를 먹다 보니 목이 막히는데 내 마음도 막히는 듯해서 아쉬웠다. 아이는 그런 마음은 전혀 없이 앉아서 모래 놀이에 푹 빠져서 한참을 놀았다. 


구마모토 라멘

심은 유명한 구마모토 라면을 먹기로 했다. 찾아간 유명한 가게는 시내에서 좁은 도로를 이리저리 가야 나와서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주차장을 찾지 못해서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무사히 주차를 했다. 실내는 그렇게 크지 않고 중앙에 주방이 있는 구조였다. 중앙에서 조리를 해서 조리 과정이 눈에 다 보였다. 마주 보고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고, 창가에는 테이블 좌석이 있었다. 우리는 중앙 주방을 마주 보고 먹는 자리에 앉았다. 구마모토 라멘은 돈코츠 계열로 눅진하면서 기름진 맛을 자랑하는 라멘이었다. 마늘 기름이 들어가서 먹음직스럽게 나왔는데 날이 덥고 아까 카스텔라를 먹어서 그런지 국물이 묵직한 돈코츠 라면이 잘 먹히지 않았다. 오히려 느끼하게 느껴져서 다들 남기고 점점 더 달아오르는 날씨에 우리는 빨리 차를 타고 가고시마로 가고 싶어 했다. 가면서 남겨 놓은 구마모토 라멘 생각이 많이 났지만 더 먹으라고 했어도 먹지 못했을 듯했다. 먹는 것을 웬만하면 남기지 않는 나도 남겼으니 아내와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사쿠라지마 휴게소

구마모토에서 큐슈 남쪽 끝인 가고시마까지 160km 이동하는데 나는 운전을 좋아하기에 재미있었다. 다른 나라에서 풍경도 바라보며 운전하는 재미는 또 다른 여행의 즐거움이었다. 아이는 뒷좌석에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다. 렌트하고 처음으로 주유가 필요해서 빠르고 안전하게 휴게소에서 셀프 주유도 성공했다. 휴게소는 그렇게 크지 않고 편의점 정도만 있는 규모여서 다음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지역 명물인 사쿠라지마 이름을 딴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고 쉬었다 갔다. 하늘을 짙은 푸른색으로 여전히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고시마 방언으로 환영 인사가 적힌 입간판이 있어서 얼굴을 내밀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해서 목적지인 센간엔 스타벅스로 갔다. 가는데 길이 꽤나 복잡했다. 360도 도는 내리막길에 U턴까지 난코스를 뱅뱅 돌다가 모두의 기지를 발휘해 무사히 센간엔에 도착했다. 탁 트인 바다와 사쿠라지마의 화산 연기가 눈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카페에서 모두 아까의 미친 더위는 잊고 푹 쉬었다.


가고시마 역시 가고시마 현의 현청 소재지로 미나미큐슈의 중심 도시이면서 과거에는 사츠마 번의 중심인 도시였다. 사츠마는 야마구치 현의 쵸슈와 더불어 메이지 유신 이후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군벌 지역으로 지금도 많은 정치인을 배출하고 있는 지역이다. 인구는 60만 명 정도이고 후쿠오카에서는 280km 정도 떨어져 있어서 상당한 거리를 자랑했다. 대대로 시마즈 가문이 지배한 곳으로 오키나와를 점령했던 그 시마즈 가문이 이곳에 자리 잡은 가문이었다. 가마쿠라 막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명문가인데 특히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정복당하기 전에 큐슈를 거의 점령한 큐슈 최고의 실력자였다. 그러다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고 그의 편에 섰는데 나중에 토요토미 사후, 도쿠가와의 동군과 토요토미의 서군으로 갈라진 1600년에 일어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속했다가 바로 항복해서 영지를 보장받았다. 일본 NHK 대하사극에서 방영되었던 '아츠히메(篤姫)'라는 사극이 있는데 이는 시마즈 집안의 여성으로 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정실부인이 되는 내용으로 쇼군 가문과 혼인도 맺는 등 여전한 세력을 과시했다. 이후 막부 말기에 쵸슈 번과 함께 삿쵸 동맹을 맺어 도쿠가와 막부에 대항하게 되면서 메이지 유신에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고 그것을 견인한 인물이 가고시마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이다. 우리에게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인물로 유명한데 일본인들에게는 세이난 전쟁을 통해 마지막 사무라이라며 존경받고 있다.


센간엔 스타벅스

센간엔(仙巖園)은 사츠마 번의 주인인 시마즈 가문이 1658년에 조성한 정원인데 그곳에 위치한 스타벅스 센간엔점은 등록유형문화재로 인증된 유서 깊은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얀 2층 목조 저택으로 내부는 평범하지만 외관은 역사를 자랑하는 건물로 현관 지붕에는 시마즈 가문의 문장인 원형에 십자무늬가 있었다. 내부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앉아 있어서 거의 만석이었다. 어머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나와 아내는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아이는 추로스를 주문해 잠시 더위를 달랬다. 길 건너에는 철도가 있고 바다 건너 사쿠라지마가 보였는데 화산재로 인해 봉우리 부분은 가려져 있었다. 안에는 자석으로 물고기 낚시할 수 있게 해 놨는데 여름이라 아이들이 놀 수 있게 만들어 놓은 듯했다. 점원이 가지고 놀도록 종이로 된 낚싯줄을 줬는데 아이는 재미있어라 하면서 몇 번 시도하다가 줄이 끊어졌다. 그걸 본 어느 일본 사람이 아이에게 자신의 낚싯줄을 줘서 아이가 자석 물고기를 낚아 올릴 수 있었다. 센간엔 스타벅스를 배경으로 감상을 하다가 이어 우리 여행의 세 번째 숙소에 갔다. 가고시마 시내에 있는 호텔이었는데 도착하고 나서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할지 몰라서 찾다가 자동차 사이드 미러가 조금 긁혔다. 보험 처리가 되기에 비용이 들지는 않지만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체크 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니 편백 마루가 깔린 소박한 느낌이 드는 방이었다. 먼지 하나 없고 테라스에서 바라본 가고시마 시내가 탁 트여서 다들 마음에 들어했다.


가고시마 시내

밖으로 나와 저녁으로 초밥을 먹으러 갔다. 전형적인 일본 도심의 중심가인 아케이드를 지나갔는데 맥주 축제를 하고 있는지 내부 광장에서는 맥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아케이드를 나오니 노면전차가 다니고 노을의 어스름에 평온해 보이는 시내가 나타났다. 꼭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 온 느낌이었다. 조금 더 걸어서 바닷가 쪽에 있는 회전 초밥 가게에 갔는데 인기가 높아서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번 여행 내내 일본도 휴가 시즌이라 이런 맛집에서 대기 시간이 꽤 있었다. 30분 넘게 기다린 끝에 드디어 자리를 잡았다. 벽에는 66cm 돌돔 어탁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골고루 골라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다들 초밥은 좋아해서 마음껏 주문해 먹었다. 초밥 먹을 때 베니쇼가라고 하는 초생강이 있는데 아이가 한번 먹어본다고 입에 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료마와 오료의 동상

다들 넉넉하게 먹고 어둑해진 가고시마 거리를 걸었다. 더위가 가셔서 좋긴 하지만 이 곳은 화산재가 바닥에 수북이 쌓여있고 공기 중에도 많이 날아다녔다. 눈이 갑자기 가렵기도 하고 기침이 나기도 하고 참 독특한 환경을 가진 곳이었다. 신발로 한번 쓸어보면 화산재가 쓸려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시내 거리를 걸어 호텔로 갔는데 가고시마 초등학생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전시되어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거리 중간마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이야기를 적은 간판과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서 반가웠다. 사카모토 료마는 당시 도쿠가와 막부에서 천황에게 정권을 넘기는 대정봉환을 주도해서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일본인들이 매우 존경하는 인물인데 가고시마는 부인이었던 오료와 신혼여행을 왔던 기록이 있어서 일본 최초로 신혼여행을 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아케이드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에 먹을 간식을 샀는데 점원이 처음에는 의 일본어를 듣고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가 우리랑 한국어로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서는 한국인인 것을 알았다고 하며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잘한다고 칭찬했는데 아직 일본어가 녹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이도 더 이상 써먹지 않으면 점점 잊어버릴 일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다들 가고시마에서 첫 밤을 마무리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땡볕과 장거리 이동에 다들 애쓴 하루였다.


구마모토 성
화산재에 가려진 사쿠라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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