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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Jun 01. 2021

일본 신화의 고향

2018년 8월14일(5일째)-사쿠라지마,아오시마, 미야자키 시내

사쿠라지마

마지막 조식으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한 다음 체크 아웃을 했다. 오늘은 가고시마를 떠나 우리의 마지막 도시인 미야자키 시로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주차비가 생각보다 많이 나와서 생각지도 못한 지출에 비용이 생겼지만 즐겁고 친절한 이곳을 떠나는 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미야자키에 가기 전에 가고시마 시를 동양의 나폴리로 만들었던 사쿠라지마(さくらじま, 桜島)를 보러 가기로 했다. 사쿠라지마는 가고시마 시내 어디서든 보이지만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서 운전해서 갔다. 주차장에는 이미 사쿠라지마를 보러 온 사람들로 빼곡했고 관광버스도 많이 보였다. 주차를 한 다음 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니 가고시마 시내 위로 사쿠라지마가 보였다. 지금도 연기를 뿜어내는 활화산으로 1914년 대분화 당시 가고시마에 큰 피해를 끼쳐서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고 한다. 둘레 55km로 상당히 큰 섬으로 시내에서 멀지 않은 위치여서 화산재가 여기까지 날아오기도 했다. 원래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섬이지만 1914년 대분화 당시 흘러나온 용암으로 인해 육지와 이어져서 반도 끄트머리에 있는 화산이 되었다. 비록 화산재에 가려지긴 했지만 희미해서 어제보단 정상의 모습이 육안으로 잘 보였다. 지금도 활동하는 화산 옆에 자리 잡은 도시라니 정작 가고시마 사람들은 일상이라 그런지 딱히 걱정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미야자키를 향해

도로에 줄을 지어 나란히 심어진 야자수를 배경 삼아 미야자키로 향했다. 미야자키 시(宮崎市)는 미야자키 현의 현청 소재지로 인구는 65만 명 정도라서 규모는 가고시마 시보다는 크고 구마모토 시와 비슷한 규모였다. 가는데만 2시간이 걸렸지만 푸른 하늘과 짙은 녹음이 우리를 감싸 주워서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했다. 미야자키 역시 일본의 신혼 여행지로 과거에 인기가 굉장히 높았다고 한다. 예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많이 간 것처럼 미야자키, 가고시마, 오키나와 같은 곳이 일본인들에게는 이국적이면서 국내 신혼 여행지로 각광받았다. 1960년대까지는 신혼 여행지의 메카였지만 1972년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이후 남국 이미지는 오키나와가 가져가서 그 이후로 쇠퇴를 맞이했다고 한다. 그리고 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익숙한 스프링 캠프가 이곳에 많이 차려져서 야구팀들이 전지훈련을 하러 많이 온다. 이렇게 따뜻한 아열대 기후지만 비가 많이 내려서 우리가 온 날에도 갑자기 비가 내리거나 그치는 경우가 있었다. 


일본 신화의 고향

미야자키는 일본 안에서도 역사가 굉장히 오래된 지역으로 약 5만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해서 그 유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리고 일본 신화의 무대가 된 곳이기도 한데 일본 역사서인 고사기(古事記)에 의하면 일본 천황의 조상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天照大神)의 손자인 니니기노마코토(ににぎのみこと)가 거울, 구술, 검 즉 3종 신기를 가지고 강림한 곳이 바로 이곳으로 일본 신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무대이다. 니니기노마코토의 증손자가 바로 일본 초대 천황이라고 일컬어지는 진무 천황(神武天皇)으로 큐슈 미야자키에서 출발해 혼슈 오사카, 교토 지역까지 정벌을 가서 기원전 660년에 일본 황실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미야자키 현 니치난 시 해변가에 갔을 때 이러한 신화를 써놓은 설명과 동상이 보이기도 했다.


신선한 바다가 입으로 담기는 식사

점심은 꽤 유명한 로컬 일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같이 여행 온 어머니와 아내에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일본 유학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매일 기숙사 방에서 간단히 먹거나 학생 식당 아니면 덮밥 체인점에서 사 먹었는데 이제 쓸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니 기분을 내고 싶었다. 현지인이나 일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만석이었다. 예약을 하지 않아서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식사를 했다. 2층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에 앉았는데 정갈하게 차려진 회 정식과 두툼하고 거대한 새우튀김, 성게 덮밥의 맛이 정말 황홀했다. 해산물을 다들 좋아하기에 맛있게 먹었고 배가 불러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먹으면서도 계속 감탄하면서 먹어서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아내는 웃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저렴한 가격에 정갈하고 깔끔하면서 신선한 요리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 먹으러 가고 싶을 정도였다.


아오시마 신사

입과 배가 모두 즐거운 식사를 마치고 근처 아오시마(青島) 섬에 가려고 나왔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데 비가 점점 세지고 후드득 떨어지는 장대비가 되어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아이를 안고 최대한 걸어보려고 했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동차로 돌아가서 운전해서 섬에 최대한 가까이 갔다. 걸어가면 짧은 거리이지만 장마처럼 갑자기 쏟아부어서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섬 바로 앞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를 하니 신기하게도 비가 그쳐서 허탈한 마음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빗방울이 멈추고 햇살이 비추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다 같이 섬을 향해 걸어갔다. 섬이긴 하지만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둘레가 1.5km밖에 안 되는 작은 섬으로 안에는 아오시마 신사가 있었다. 신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거대한 붉은 도리이가 있어서 신성한 느낌을 자아냈다. 단정하게 지어진 신사에는 연인들에게 유명한 신사라고 해서 그런지 소원을 비는 나무판인 에마(絵馬)에는 그런 글귀들이 많이 있었다. 


도깨비 빨래판 해변에서

신사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니 도깨비 빨래판(鬼の洗濯岩)이라고 불리는 마치 파도치는 것 같은 모양의 암석층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암석층은 침식 작용으로 인해 만들어진 지형으로 지각 변동의 융기와 침식의 흔적이라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곳에만 보이는 특징이라고 하니 자세히 보면 볼수록 결이 가지런히 나 있는 모양새가 신기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해수욕장이 있어서 이는 윗옷은 벗고 바지만 입고 물놀이를 했다. 모래찜질과 모래놀이도 하고 한 시간 동안 신나게 놀았다. 나도 옷이 젖는 걸 신경 쓰지 않고 아이와 놀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을 챙겨 올 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리쬐는 햇살에 아까의 빗줄기는 사라진 지 오래여서 시원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아이는 행복한 한 때를 보냈다. 한참 놀고 모래만 털어내고 미야자키 신궁으로 향했다. 


미야자키 신궁

미야자키 신궁(宮崎神宮)은 미야자키 시내에 위치했는데 일본의 초대 진무 천황을 모신 곳으로 일본의 태동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다. 진무 천황에 동쪽으로 정벌을 가기 전에 머물렀다고 알려진 곳에 세워진 신궁으로 언제 정확히 세워졌는지는 모른다고 한다. 그러다가 메이지 천황이 신사로 정비하고 궁으로 격상시켜서 격을 높였다고 전해진다. 거대한 청동 도리이를 지나서 우리가 갔을 때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정말 우리 가족만 이 신궁 경내를 거닐었다. 그래서 흔하게 만날 수 있었던 다른 신사나 신궁과는 다르게 질박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낯선 기분이 들었다. 신궁 안에는 일본 황족들이 심었던 기념수들도 보였고 바닥의 자갈 하나까지 굉장히 관리를 잘해놔서 그런지 정갈한 느낌까지 났다. 곳곳에 일본 황족들이 심은 기념수가 있어서 이곳이 일본 황실과 연이 깊은 곳이구나를 실감했다. 넓은 신궁 경내를 우리가 전세 낸 듯 거닐면서 마음껏 삼나무 향기를 맡았다. 아무도 없는 신사 안을 우리만 걸으니 기분이 묘했다. 


마트 쇼핑

신궁에서 나온 뒤 일본의 대표적인 마트인 이온몰에 가서 신나게 쇼핑을 하고 간식을 샀다. 크로와상을 파는 데가 있길래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주문을 했는데 내 일본어 실력에 점원이 감탄했다고 하면서 서비스로 더 주었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현금으로 내서 현금이 마침 거의 떨어져서 급하게 은행에서 환전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속도로 통행료 지불은 카드 결제가 되었다. 괜히 현금으로 지불하면서 다녀서 환전하게 되는 불상사가 벌어진 것이다. 폐점이 될 때까지 있다가 밤 9시가 지나서 미야자키에서 묵을 호텔 체크 인을 했다. 호텔 앞 민간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주차장 관리인의 큐슈 사투리가 너무 심했는데 알아듣는 것은 문제없었지만 일본 드라마에서 보던 발음을 들으니 신기했다. 호텔에 와서 마트에서 산 초밥, 카라아게, 컵라면, 맥주 등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다음날이 귀국인데 태풍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서 많이 걱정되었다. 무사히 귀국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도깨비 빨래판 해변
아오시마 신사의 에마들
미야자키 신궁의 기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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