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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5) 동방으로 가는 길

2025년 7일(금)-8일(토) 타슈켄트에서 인천

by 오스칼 Feb 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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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아이와 마지막 타슈켄트 일정을 소화하러 가방을 멘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첫 목적지는 근처 시장을 들렸다가 아미르 티무르 광장(Amir Temur xiyoboni)으로 갔다. 19세기 러시아 점령기 이후로도 이 도시는 여러 번 변화를 겪었지만, 이 광장은 여전히 우즈베키스탄의 심장부로 남아 있었다. 멀리서 보이는 기마상은 강인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광장의 중심에는 티무르(1336~1405), 한때 중앙아시아를 넘어 페르시아와 아나톨리아 반도, 인도, 러시아 남부까지 정복한 강대한 군주가 말을 타고 서 있었다. 나는 그의 동상을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 칸이 아닌 아미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당시 몽골의 전통으로 칭기즈칸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지휘관이라는 아미르를 쓰게 되었다.


아미르 티무르


티무르는 칭기즈칸과 같은 조상을 공유했기에 몽골 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면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새로운 제국을 세운 인물이었다. 그는 칭기스칸의 직계 혈통은 아니었지만, 그의 정복 방식은 몽골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철저한 군사 전략과 무자비한 전술, 그리고 잔혹한 보복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버금가는 군사 천재였다. 하지만 단순한 약탈자로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이 피로 얻은 땅 위에 예술과 학문의 꽃을 피웠다. 사마르칸트를 화려한 문명의 중심지로 만들었고, 과학자와 예술가들을 모아 그의 제국을 장식했다.


광장 옆 티무르 박물관


그의 삶을 떠올리며, 만약 티무르가 오늘날의 세상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해졌다. 그는 전쟁을 통해 질서를 세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무력보다 외교와 경제력이 국가의 힘을 좌우한다. 만약 티무르가 현대의 지도자였다면, 여전히 정복을 꿈꿨을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제국을 구상했을지가 궁금했다. 사실 알렉산드로스와 칭기즈칸에 비해서 세계사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 했지 못하지 않을 인물이 티무르였다.


티무르 동상 앞에서


그의 카리스마로 세워진 제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강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확장했지만, 그의 사후에 국가를 유지할 정치적 시스템은 약했다. 그러나 그는 중앙아시아의 역사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그의 후손들은 결국 무굴 제국을 비롯한 여러 왕조로 이어졌고, 지금 많은 이를 끌어모으는 사마르칸트의 건축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다. 티무르는 비록 영토를 영원히 지키지 못했으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브로드웨이


티무르 광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사일고흐 거리(Sayilgoh Street)는 타슈켄트 중심부에 위치한 번화가로 현지에서는 흔히 '브로드웨이(Broadway)'라고 불렀다. 이곳은 도시에서 가장 활기찬 거리 중 하나로 소련 시대부터 번화가 역할을 했으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명소였다. '브로드웨이'라는 별칭은 뉴욕의 브로드웨이처럼 문화와 예술이 활발한 거리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거리 곳곳에서 초상화 그리는 화가, 노점상, 악기를 연주하는 예술가들을 볼 수 있고, 현지 수공예품, 그림, 우즈베키스탄 전통 직물 등을 판매하는 상점과 노점이 많았다. 또한,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와 다양한 음식점들이 즐비해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었다. 소련 시절에 지어진 카페로 들어가서 우리는 점심 식사를 했고, 친절한 종업원의 응대에 감사해서 150,000 숨이 나왔는데 50,000 숨을 팁으로 드렸다.


점심 식사
어떤 사람이 시키길래 따라 시킨 메뉴


카페에서 쉬다가 도심을 걷고 싶어서 30분 정도 걸어서 천주교 성당을 찾았다. 예수 성심 대성당(The Sacred Heart of Jesus Cathedral)은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 위치한 로마 가톨릭 성당으로 타슈켄트에서 가장 중요한 가톨릭 교회였다. 이 성당은 20세기 초에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소련 시기에는 종교 활동이 제한되면서 방치되기도 했다. 이후, 소련 붕괴 후 가톨릭 신자 공동체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복원되었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설계되어 있으며, 높은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특징이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제단과 종교적인 벽화가 장식되어 있다. 한국에서 지원을 했다고 해서 그런지 한국어 미사도 있고, 한국어 기도문도 있어서 조금 놀랐다.


이슬람 국가에 자리잡은 천주교 성당


성당을 나와서 마지막 일정으로 정한 것이 지하철 탐방이었다. 타슈켄트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예술과 역사가 어우러진 공간으로 존재했다. 1977년에 개통된 이 지하철은 구소련 시대에 건설된 만큼 웅장한 건축미를 자랑하며, 각 역마다 독특한 테마와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마치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갤러리를 걷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하철 여행의 시작인 타슈켄트(Toshkent)역은 수도의 이름을 딴 만큼 웅장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이곳은 대리석 기둥과 샹들리에가 어우러져 있으며, 마치 고급 호텔 로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줬다. 세련된 건축 양식과 조명은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도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더욱 부각했다.


타슈켄트역


그다음 스모나브틀라르(Kosmonavtlar)역은 단연 독특다. 이 역은 소련의 우주 탐사를 기념하며 만들어졌으며, 벽면에는 푸른색 타일과 함께 우주비행사들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유리 가가린,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등 우주개척자들의 모습이 조명 아래 은은하게 빛나며, 마치 우주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다.


코스모나브틀라르역


한편, 알리셰르 나보이(Alisher Navoiy)역은 전통적인 이슬람 건축의 영향을 깊이 받은 곳이었다. 역의 이름은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인 시인 알리셰르 나보이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으며, 그의 작품 세계를 반영하듯 화려한 아치와 정교한 모자이크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마치 중세 시대의 이슬람 궁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곳은 지하철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역 중 하나로 꼽힌다. 가푸르 굴롬(G‘afur G‘ulom)역은 우즈베키스탄의 유명한 시인을 기리는 공간이었다. 따뜻한 조명과 전통적인 패턴이 조화를 이루며, 문학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단순한 대중교통 공간을 넘어, 문화적 의미까지 담아낸 점이 이 역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알리셰르 나보이역
가푸르 굴롬역


1호선 환승역인 파흐타코르(Paxtakor)역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파흐타코르'는 우즈베크어로 '목화 농부'라는 뜻으로,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인 목화를 기념하기 위해 설계된 역이었다. 벽면과 천장에는 따뜻한 색감의 장식이 어우러져 있고,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적인 패턴이 반영되어 있다. 이곳은 단순한 대중교통 공간을 넘어, 우즈베키스탄의 정체성과 문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여기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와서 한 번에 타지도 못하고 엄청 붐벼서 타슈켄트의 신도림역 같았다.


파흐타코르역


우리는 마지막으로 칠런저르(Chilanzar)역의 멋진 샹들리에를 보러 갔는데 1호선 구간은 전반적으로 엄청 붐벼서 앉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타슈켄트 지하철은 단순히 목적지로 향하는 수단이 아닌, 지하에 숨겨진 예술의 보고이며, 우즈베키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공간이었다. 각각의 역은 저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으며, 승객들은 그 속에서 한 편의 역사책을 읽듯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하철을 타는 행위가 일상이 아닌 하나의 여행이 되는 곳, 바로 타슈켄트 지하철이고, 우리가 택한 마지막 여행 코스였다.


칠런저르역


지하철이 너무 붐벼서 도저히 다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서 호텔까지 가기에는 무리 같아서 택시를 잡아서 갔다. 호텔에 간 다음 짐을 챙겨서 다시 택시를 타고 타슈켄트 국제공항으로 갔다. 여러 번 택시를 탔는데 여기 운전사들은 운전을 상당히 터프하게 했다. 안전벨트도 의무가 아닌 것 같았고,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을 매번 느꼈다. 어쨌든 마지막이 될 택시를 타고서 이미 해는 저물고 퇴근길에 막히는 도로를 지나 제2 터미널에 내렸다. 공항 안으로 들어갈 때 짐 검사를 하고, 비행기 티켓 발권을 한 다음 출국 심사하는데 작은 규모에 옛날 심사대 느낌이 물씬 났다. 출국장으로 들어와서 라운지에 갔는데, 규모도 작고 먹을 것도 없어서 거의 시간 때우는 느낌이 강했다. 쁠롭(Plov) 있어서 먹어봤는데 맛이 상당히 아쉬웠고, 샤워 시설이 있어서 탑승 전에 샤워를 했지만, 물 조절이 제대로 안 돼서 실망스럽긴 했다. 인천 국제공항의 클래스를 다시 한번 느꼈다. 이때 월요일에 같이 탑승했던 일본인 노부부를 만나서 반갑게 이야기하며 연락처를 교환했다.


공항 도착
출국
대실패 쁠롭
대한민국으로 가는 여정
식사 메뉴
비빔밥 코스


비행기는 한국에서 내린 폭설로 제설 작업을 하고 오느라 1시간 연착되어 우리는 밤 11시 10분 출발로 타슈켄트 상공을 오르게 되었다. 아이는 이번 여행을 한 단어로 말하면 '여가'라고 했다. 복잡하지도, 바쁘지도 않은 여행의 스타일이라서 이것도 좋다고 평했다. 짙은 밤 속에서 한 번의 기내식과 간식을 먹으며 6시간의 비행을 했다. 내식으로 비빔밥을 먹고 나서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날이 밝았다. 아이는 어느새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톈산산맥을 지나서 화북 지방으로 진입하고 있는 비행기는 이내 베이징을 지나서 톈진을 거쳐 황해로 갔다.


여명
도착전 라면
대한민국 도착


그 사이 우리는 언제 먹을지 모를 라면까지 주문해서 야무지게 아침 끼니로 먹었다. 그리고 정겨운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해 까불이팀은 대한민국에 발을 내디뎠다. 공항에 도착해서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우즈베키스탄 화폐를 환전하려니 비고시 환율이라서 안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2시간을 기다리고 우리가 사는 도시로 가는 버스에 탑승해 3시간 넘게 달려갔다. 어제 폭설로 하얀 세상이 된 우리 동네가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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