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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Julie Jun 13. 2020

김대리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고

한 신문사 기사에 의하면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여 자신의 무용담을 전설처럼 늘어놓기를 즐기는 직장인이 전형적인 젊꼰의 유형, 일명 '과거를 미화하는 참전용사형' 꼰대라 한다. 찔린다. 나의 회사생활을 담은 글들이, 어쩌면 과거를 미화하는 무용담처럼 불편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를 화려한 영웅담으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리 전설처럼 늘어놓을 멋진 이야기도 없다. 진짜다. 물론 내가 젊꼰이 아니라 방어하고 싶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크게 활약하여 큰 공을 세우지도 못했고, 눈에 띄는 성과로 특급 승진 따위를 이루지도 못했다. 결국은 치열한 회사생활에서 이기지 못한 패잔병이다. 퇴사는 내가 인생에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용감한 선택이지만, 그만큼 회사라는 조직에서 계속해서 싸울 자신이 없어 백기를 든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의 이야기는 무용담은 절대로 되지 못할 것이며, 배우고 싶은 현명한 선배의 이야기도 아닐 테다.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그리 믿었지만 돌이켜보니 충분히 지혜롭지 못했던, 그래도 내 젊은 날의 열정을 다 바친 소중한 시간들이며 내 인생의 중요한 역사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아가든 바뀌지 않을 나의 경력이며, 어쨌든 나는 이 경험에서 배운 것들을 써먹으며 살아갈 것이다.

한 회사에서 8년을 일하며 20대를 지나 30대가 된 한 여직원의 성장기이자 그저 평범한 사람 사는 이야기 일 뿐이다. 조금은 대견하고 조금은 찌질하고 조금은 애처로운 옆집 언니 동생의 회사생활 이야기 말이다. 그저 나의 조금 덜 슬기로운 회사생활을 기억하여 기록함으로써 누군가는 조금 더 슬기로운 회사생활을 해나가길, 소중한 시간들을 조금 더 현명하게 채워나가길, 실수는 있어도 후회는 없는 자신의 역사를 써 내려가길. 또 누군가에게는 '그래 그땐 그랬지'하고 웃어넘기는 가벼운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거창하게 운을 떼는 것이 딱 '라떼는 말이야~'다. 젊꼰 맞네 맞아.)


그리하여, '라떼는 말이야' 하고 썰을 풀자니 역시 커피가 빠질 수 없다. 요즘 신입사원들은 대놓고 시켜도 당당히 거부한다는, 이제는 옛날 옛적 탑골 회사 문화가 되어버린, 꼰대의 상징 커피 심부름 말이다. 지금은 시키는 게 더 이상한 그 흔한 잡무 축에도 못 끼는 커피 심부름이지만, 사실 이렇게 사회의 인식이 순식간에 바뀐 것이 채 5년도 되지 않은 듯하다. 매우 불편한 이야기를 굳이 꺼내자면, 그 이전의 사회적 분위기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후배가 선배에게, 유독 조직의 가장 어린 여직원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로 당연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에는 시키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뭔가 찜찜하고 불편하지만 어느 한쪽도 딱히 무언가 변화를 주도하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어정쩡한 그 어디 즈음에 와있었던 것 같다. 분명히 사회적 변화의 흐름은 존재했지만 누군가는 용기가 부족했고 누군가는 배려가 부족했다. 누군가에게는 매일 참아내는 마음의 불편함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편리하게 대접받는 일상이었을 뿐이다.


나는 맥심 인스턴트 커피믹스 물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주로 40대 이상의 아재 입맛에 찰떡같이 맛있게 타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나는 정작 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싸구려 인스턴트라서가 아니라, 그저 내 입맛에는 텁텁하고 너무 달아서다. 나는 카누를 사랑하는 쪽이다. 하지만 물 조절 능력은 커피믹스에 최적화되어있다. 내가 마시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아니라, 수없이 누군가를 위해 물을 따르며 얻은 손에 익은 기술이다.

내가 처음 신입사원으로 업무를 시작한 부서의 부장님은 요즘 말로 '핵인싸'였다. 타고나게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고, 엄청난 양의 독서를 즐기는 만큼 다방면에 해박했고, 업무능력 또한 일찍이 인정받았다. 일주일에 7일 술을 마실만큼 대단한 애주가였고, 하루에 두 갑씩 담배를 태우는 굉장한 애연가였다. 농담으로 간과 폐를 매일 아침 빨아서 출근한다고 할 정도 했다. 당시 회사 대세의 흐름을 쥐고 흔드는 관리자 중 한 명이었는데 그런 부서의 신입사원이라는 말은, '너의 개고생 길은 시작되었다'였다. 동기들은 나를 볼 때마다 위로했다. 관리자가 업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보고서들을 만들어내는 실무자들이 있어야 한다. 마치 도장깨기를 하듯 한 가지 업무가 끝나면 곧바로 두 가지 업무가 밀어닥쳤고, 임원들이 믿고 일을 맡기는 만큼 업무량은 어마 무시했다. 하지만 업무량이 많은 건 그와 동시에 많은 걸 배우고 있다는 의미이기에 힘들어도 견딜 수 있었다. 업무를 털어낼 때마다 얻는 성취감은 스스로를 동기 부여하여 더 잘 해내고 싶었다.

정작 나의 개고생 길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잘 나가는 핵인싸 수장이 이끄는 핵심부서에는 업무 내외적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이 정말 너무 많았다. 조그마한 부서 내 회의 테이블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의사결정들이 이루어졌고, 그 시절의 문화는 찾아오는 손님들마다 차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부장님의 원만한 사내 관계 관리와 업무 내외적 부서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막중한 업무는 '어린, 여자, 막내'직원인 나의 일이 되었다. 당연히 특별한 역량 따위 필요 없는 잡무 중 잡무지만, 업무분장에 확실히 기록으로 남겨 주던가 연말 평가에 반영이라도 됐으면 할 만큼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이었다. 화장실도 참고 끼니도 거르며 타자를 두드릴 만큼 바쁜 날에도 벌떡 일어나 손님 커피 대접하는 일은 빼먹을 수 없었다. 하루에 수십 잔 맥심 봉지를 뜯은 날은, 나의 본업이 뭘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항상 모든 분들께 웃으며 인사드렸고 안부를 여쭈며 커피를 드렸다. 모든 업무에 긍정적인 태도와 최선을 다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지만, 커피 심부름 조차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고 열심히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부서 배치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직속 선배가 나에게 조언을 했다. "이 커피가 단순한 커피가 아니야. 귀찮다 불쾌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이 커피를 드리면서 니 얼굴을 그분들께 각인시키고, 그렇게 니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거야. 회사생활에서 이미지는 정말 중요한 거야. 알지?" 당시 군기가 바짝 든, 모든 일에 의욕이 넘치던 신입사원이었던 나에게 직속 선배의 조언은 마치 법전 같은 것이었다. 

커피 한잔을 타더라도 제대로 해서, 이 또한 인정받자. 나는 방문하는 모든 분들의 음료 취향을 모조리 외웠다. 당시 꽤나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차, 군것질 거리까지 갖춰져 있던 터라 사람들마다 취향도 가지각색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취향에 맞춰 음료와 간식까지 구색을 갖추어 내어 드렸다. 커피를 두 잔 이상 드신 부장님은 카페인이 없는 차나 물을 드리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물의 온도를 맞추고, 식사 전후 여부에 따라 종류도 달리 했다. 과할 만큼 정성이다 싶겠지만, 매일 수십 잔을 타다 보면 저절로 외워지고 맞춰지는 것들이기도 했다. 손님들은 커피 한잔에도 고맙다는 인사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말 그 선배의 말처럼 나와 직접적으로 업무를 하지 않은 분들도 내 이름을 외우고, 나는 어느새 '뭐든지 열심히 하는 성실하고 착한 직원'이 되었다. 물론 커피만 타서 그런 이미지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의 성실과 배려를 이용하는 분들도 있었다. "이야~ 나는 김대리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고~ 왜 그런지 몰라~" 하며 목적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찾아와 대놓고 커피를 요구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바쁜데 이런 거 시켜서 미안해서 어쩌냐는 멘트도 잊지 않으셨다. 웃으며 온갖 기분 좋은 말들과 함께 커피를 드리지만, 나의 노력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뭉개지는 이런 순간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기억에서 잊히지 않을 만큼 마음에 남는 날들도 있다. 높으신 분들이 줄줄이 참석하는 회의가 끝도 없이 늘어지면, 회의 테이블 한편에 앉은 유일한 '어린, 여자' 직원인 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분들이 있었다. 나 또한 그 회의에 참석한 이유가 분명히 있는 직원이었음에도, 나는 회의 중 자리를 비우고 커피를 타러 가야 했다. 종이컵이 아닌 손잡이에 금테 반짝이는 커피잔에 짝이 맞는 컵받침까지 예쁘게 받치고 투명한 유리잔에 물까지 담아 들고, 한창 진행 중인 회의 중에 구두굽 소리를 줄이기 위해 뒤꿈치를 들고 걸으며 쟁반을 나르고 있자면 어쩔 수 없는 엄청난 회의감이 몰려왔다.


그렇다면 나의 동기들 모두 그때 그 시절엔 그렇게 많은 맥심 봉지를 뜯어야 했을까? 아니다. 모든 동기들이 나를 애처로이 위로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이다. 내가 아는 가장 슬기로웠던 내 동기의 일화가 있다. 임원이 회의 테이블에 앉은 몇 분을 위한 커피를 타오라 내 동기에게 지시했다. 내 동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저 지금 이 보고서 진짜 급해서 1층 내려가서 커피 사 오려니 시간이 부족하긴 한데, 그래도 법카 주시면 최대한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커피를 타오란 지시에 커피를 사 오겠다 답했다. 대답이나 행동이 아닌, 질문도 아닌, 아주 명확한 반박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것도 대리가 상무에게. 이런 대답은 처음 들어보았을, 당황한 회의 참석자 모두 OO 씨가 많이 바쁘니 저희가 하겠습니다 하고 커피를 직접 타서 가져왔다고 한다. 또 다른 날은 선배가 커피를 타오라 시켰는데, 그 길로 사무실을 나가 스타벅스에서 자비로 부서 전체의 커피를 사 와서 돌렸다. 그 후로 아무도 그 동기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이 동기의 커피 일화가 한동안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을 만큼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내가 이제까지 잘못 살아온 것일까 하는 의심을 들게 만들었다. 나는 스스로 희생이 아닌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라, 그 어떤 사소한 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잘 해내는 직원이 되고 있는 것이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나의 수고로움으로 얻은 것이 훨씬 많다 확신하지만, 당연히 잃은 것도 있을 것이라. 돌이켜보아도 후회는 없지만, 스스로 현명했다 자신은 없다. 물론 다시 돌아가도 내가 이 동기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친구의 확실한 색깔이 회사생활의 지혜라 생각이 들었다. 

이 동기는 원래, 처음 입사한 신입 때부터 이런 직원이었다. 그렇다고 평이 나쁜 직원은 절대 아니었다. 과도한 업무가 갑자기 주어지거나 업무를 끝내기 위해 야근을 하고 새벽에 임원의 전화나 문자를 받아도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내어본 적이 없지만, 부당하거나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는 그 모든 업무 외 지시에는 거부 의사를 확실히 전달했다. 임원에게 직접 보고를 하는 자리에서도 본인이 맞다 판단하는 의견 제시에 거침이 없었고, 선배고 부장이고 직급에 상관없이 업무 관련이라면 어떤 대립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업무 집중도와 완성도가 뛰어났고,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와 부서 간 마찰은 술자리로 시원하게 풀었고, 마음이 맞는 직원들끼리는 정기적 모임을 할 만큼 인간관계에도 본인의 색깔을 뚜렷이 했다. 업무가 힘든 건 돈 받고 일하는 회사니 당연하다 했고, 사람이 힘들면 당당히 업무로 싸워 이기거나 철저히 무시하면 된다고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할 만큼 매우 단단한 사람이었다. 진짜 슬기롭고 현명한 회사생활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동기는 현재 동기들 중 가장 승진이 빠르고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나는 에스프레소 투샷에 바닐라 시럽도 넣고 캐러멜 드리즐도 뿌리고 휘핑크림까지 듬뿍 얹은 모두에게 달달하고 진한 캐러멜 마끼아또 같은 직원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질리지 않고 모든 음식에 잘 어울리는 커피 본연의 제 역할에 가장 충실한 아메리카노를 이기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방식이 이제는 한물 간 커피 2 프림 2 설탕 2 다방커피 같은 그 옛날 옛적의 그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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