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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Feb 07. 2024

남편복 없는 여자가 자식복 없다는 푸념

"자녀야, 나의 하찮은 삶을 대신하여 보상해 줘"

SNL코리아 TV 프로에서 시어머니 역할 안영미가 이런 대사를 쳤다.

"서방 복 없는 여자는 자식 복도 없다더니, 아주 그냥!"


자신의 삶이 하찮다고 말하는 어머니들의 단골 대사다.

아들 역할 유세윤은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여자친구와 함께 부모님댁에 방문했다.

아버지는 아들 커플을 보며 흡족해 했지만 시어머니인 안영미는 예비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세윤이 저항하자 안영미는 아들 커플이 대답하는 족족 비꼬며 분위기를 망쳤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자식마저 마음에 안 드는 여자친구를 데려왔다는 거다.


겉으로 드러나는 악담 속에는 여러 관계들이 흙탕물에 뒤엉켜 내려왔다.


안영미와 친정과의 관계

안영미와 시집과의 관계

안영미와 시집과의 관계 속 남편과의 관계

안영미와 시집 간의 관계 속 역할을 못한 남편 사이에서 자란 유세윤과의 관계

눈덩이로 굴러 내려온 한을 상쇄해 줄 예비 며느리를 데려오지 못한 유세윤과 현실 예비 며느리


유교의 나라 중국보다 더하다는 유교의 한국 문화 속에서 우리네 어머니는 장녀 혹은 딸에서 며느리로 혹은 자녀의 어머니로 역할바꾸기만 있을 뿐 자기 자신으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그건 아버지 또한 마찬가지지만 나의 글 내용의 대상은 세상의 딸들에게 집중 조명하겠다. 드라마에서도 좋은 어머니, 나쁜 어머니 양쪽 모두 가족 관계로부터 비롯된 한과 억울함이 공통적으로 서려있음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드라마 스토리 감정선을 단순하고 크게 2가지로 나눠봤다.


- 과거의 한을 자신의 내면 안에서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사는 삶.

또 하나는 한의 책임을 밖으로 돌리거나 자식에게 대물림하며 갈등을 그리는 삶.


전자 어머니는 자아성찰을 하든 감정 유발자와 정면 대결하든 집 안에 숨겨진 시한폭탄을 찾는다.

우여곡절 끝에 초를 다퉈 폭파를 막을 전깃줄을 찾아 감정 대물림을 끊어내고 자식들은 어머니의 희생으로 모든 사실을 잘 모른 채 드라마가 결론으로 다다른다.

후자 어머니 경우는 누구 하나 걸리는 주변 사람이나 자식이 감정 쓰레기통이 되거나 나만 죽을 수 없다고 함께 끌어안고 자폭하며 드라마가 끝난다. 


양쪽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어머니가 없지만 종합 결론을 해보면 안영미가 자녀에게 외친 대사가 이렇게 들렸다.


'내가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아. 나는 어렸고 순진했기 때문이지.

남부럽지 않은 여자를 데려와서 체면도 세워주고 나의 하찮은 삶을 대신 보상해 줘."


인간은 본래 자기중심적이게 설계되어 있다.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다 같은 통찰로 이어지지 않고 어머니라고 다 같은 어머니가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고 타자의 언어다.'


위와 같은 말을 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생후 6개월~18개월 사이의 어린아이는 자신이 바라보는 어머니가 자신과 하나라고 인식한다. 그러다 거울 단계를 거쳐 아이와 타자가 분리되었음을 깨닫게 되지만 인정하지 못한다. 아이는 자신의 눈썹을 보지 못하고 타자의 눈썹을 보듯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모습이 나라고 착각하게 된다고 라캉은 설명한다.

다시 말해, 나의 욕망은 곧 '어머니 혹은 타자의 욕망'이지만 그것이 '나의 욕망'이라고 착각한다는 말이다. 아이를 향한 타자의 욕망이 커질수록 타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게 되고 결과적으로 나의 욕망이 소외되면서 내 존재가치가 하락한다.

 


자녀에게 씌워진 부모의 욕망이 압도적일수록 사회가 부추기는 욕망을 나의 욕망이라 착각하게 된다. 또한 인정받았고 목표를 이루고 말았는데 그제야 찾아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억울함'이 나를 괴롭힌다.

 


나의 욕망은 음악과 미술분야였다. 그러나 엄마는 나의 욕망을 무시한 채 그 때 당시 각광받았던 은행권이나 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자신의 언니, 오빠들의 욕망을 나에게 강요했다. 엄마 자신의 욕망인 음악은 인생 전반에 걸쳐 정서적 풍요를 보장해주었지만 음악과 무관한 직장생활을 했던 엄마는 경제적 자원으로 환산하지 못하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내 인생은 나만의 것이 아닌 부모님 자신들과의 합으로 발란스를 맞추어 고려되었다. 그에 반해 남동생의 욕망은 지지 받았다. 부모님은 운동을 하는 남동생의 경기를 찾아가 응원했고 경기 후 학생들과 함께 먹으라고 소고기를 대량으로 싸들고 가기도 했다. 수만가지 이유가 달린 ‘말’ 보다 결국 ‘행동’만이 답이다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험난한 여정 끝에 내가 원하는 분야로 디자인 전공을 했고 디자인회사를 다니며 돈을 모았다. 그러고나서 내 의지대로 차린 그림 작업실에 관해서 아빠는 나를 마주치기만 하면 쓸모를 증명하라는 협박을 했다. 부모님은 내가 회사에 소속이 되어있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불안해 하셨다. 엄마에게 노출이 된 나의 디자인이나 그림에 대한 평가는 백과사전처럼 객관적이었지만 그와 달리 남들에게는 자랑을 늘어놓고 다니셨다. 이런 혼란스러운 양가적 태도는 내게 상처만을 남겼다.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자녀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그것이 누구의 욕망인지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내가 살아내지 못한 삶을 자녀가 살아내서 더 나은 나로 증명해 달라는 심리가 있지 않은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해외 선진국의 대학생들은 여러 가지 분야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공부한다. 우리나라는 학생들의 복지가 탄탄한 나라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장차 불안이 아닌 여유로움을 대물림 받을 존재로 미리 땡겨서 대우해야 그 믿음대로 자라난다. 

 

조건이 없었던 나에 대한 외할머니의 자랑은 행복감을 줬다.

방법을 모르겠다면 한 세대 거른 여유있는 시선을 상상하여 자녀를 바라보자. 



그림영역)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바라보는 상은 나를 바라보는 자아상이다.


말풍선

영미남편  없는 여자는 자식 복도 없어 그냥!

세윤저도 부모  없는데퉁쳐요~^^


(주먹 내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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