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 단체여행에도 가지 않았고 시가에도 가지 않았어
명절이 한창 진행 중인데 어인 일로 고등학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뭐 해?"
"뭐 하긴~ 명절에 전화를 다 하고 무슨 일이야?"
"나 지금 어딘 지 알아?"
"엄마네? 아니면 시부모님댁 이겠지요."
"집 근처 스타벅스 와서 내 작업하고 있어. 애랑 남편만 시댁 보내고 나는 아무 데도 안 가 버렸어."
"엥? 무슨 일이야. 말도 안 돼."
말해놓고도 말도 안 될 건 또 뭐람.
친구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걱정이 되었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흠, 그게 말이야.. 이번 명절은 사실 친가 식구들과 단체여행을 가기로 했어. 그래서 신랑과 나랑 아이는 여행에 동참하고 시가는 명절 한 주 지나고 방문하면 어떨지 여쭈었지. 우리 부모님, 남동생네 가족, 작은 아빠네 가족, 고모네 가족, 친척동생들 등 함께 가는 처음이자 마지막인 여행이었거든. 작은 아빠와 고모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어른친구였어. 시어머니께도 어떻겠는지 말씀드렸더니 '그래, 그러렴.' 말씀해 주셔서 정말 기뻤지.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기특하기까지 했어. 친척 어른들의 자녀들도 곧 시집장가갈 텐데 그러면 더욱 기회가 없어질 테니까. 신랑도 본가식구들과 가이드까지 섭외해서 제주도 단체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명절 전 날에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지. 이번에는 지방에서 증조할머니께서 올라오실 것 같은데 친정 단체 여행에 안 가면 어떻겠냐고 말씀하시는 거야. 둘째 작은아버님께 제사를 넘겨받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 며느리가 없으면 체면이 안 섰나 봐. 내 선에서 해결했어야 하는데 전체의 목표에 익숙하고 나로서 살아가는 데 매우 취약한 나는 엄마한테 이 상황에 대해 말을 해버렸어. 그랬더니 엄마가 '여행 가지 말고 너는 시댁 가거라.' 하시는 거야. 아니라고 갈 거라고 했더니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아쉽다는 뉘앙스는 말은 전혀 없었고 니 맘대로 하라셨어.
선택권을 주는 척하면서 무언의 거절을 하셨어. 시가에 매번 먼저 가는 것도 나는 백번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같이 살았던 나의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의 명절차례는 고사하고 남편도 뵌 적이 없는 조상님들 차례에 참석했지. 그리고 지방에서 올라오신다는 할머님은 다리가 불편하셔서 원래부터 올라오시기 싫어하시고 안 오실 거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여기서 내가 제일 화가 났던 사실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엄마가 단체여행에 오지 말라고 했다는 사실이야. 한평생 명절마다 만났던 남동생과 작은 아빠랑 고모인데 결혼했다고 갑자기 명절에 끝! 마주치기 힘든 상황에 초반에는 적응이 너무 힘들고 화가 났지만 문화려니 매번 억울한 마음을 다잡았어. 그런데 엄마의 말은 마치 '너는 더 이상 우리 가족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같았지. 장녀로서 어린 시절부터 어른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요구받았고 집안일 대소사에 남동생에게는 요구 안 하는 큰돈도 내가 여러 번 내놨는데 그렇게 이용만 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런 마음이 아닐 거라는 부모 자녀 간의 신뢰가 느껴왔다면 나는 괜찮았을 거야. 어려서부터 속이 깊고 어른들을 헤아릴 줄 안다고 자신들의 편의를 위한 칭찬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이해했을 거야. 우리 부모니까. 그런데 내가 느낀 감정은 맞았어. 부모님은 자신이 아프면 남동생에게는 연락 안 하고 애기가 어려서 도움 없이 혼자 쩔쩔매며 육아하고 있는 나에게만 연락해. 아기띠를 하고 바닥난 체력으로 병원에 함께 하고 오고 난 뒤에도 나에게는 인정보다는 끊임없는 잔소리를 했어.
첫 아이를 낳기 전 엄마와 둘만의 여행을 몇 번 제안했어. 그때마다 엄마는 친구들과 여행이 있다고 다음번으로 미뤘지. 이것저것 따져보니 친구들과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을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하셨지. 그런데 내가 아이를 출산하고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 되자 그제야 남동생 부부와 우리 부부와 손주들과 다 같이 단체여행을 가자고 하는 거야. 다른 집은 자식들과 손주들과 함께 여행 간다고 부럽다고 하면서 말이야. 전체만 생각하는 사고에 익숙한 맏며느리 엄마는 자신도 그렇게 살기를 요구받아왔기에 딸에게 어떤 행동을 하셨는지 전혀 몰라. 아마 죽을 때까지 이해 못 해줄 거야. 시부모님은 몇 년 전 까지는 남이었으니 그렇다고 쳐. 그런데 우리 부모님이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마음 둘 곳이 없다. 고모의 카톡 프로필에 올라온 내가 없는 친정 단체여행 사진이 올라왔어. 그 사진을 보니 마음에서 친가를 버리는 편이 차라리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친가도 시가도 다 싫고 나는 그냥 나를 위해서 명절을 보내기로 했어. 후에 무슨 일이 생기든 이제 상관없어. 정신 나간 딸과 며느리 소리 들어도 이제부터 나는 나로서 살아갈 거야."
그러고선 사람 많은 카페에서 갑자기 펑펑 우는 친구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게 혼자 있어도 괜찮겠냐고 말했지만 끝내 친구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나도 결혼 초반에는 좋은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어떠한 관계가 그렇듯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서로에 실망을 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시가 식구들과의 경우 서로 너무 밀접하지도 멀지도 않은 건강한 거리 유지를 조정하며 소모된 많은 에너지와 눈물이 있었지. 세월이 흘러 그런 나날이 있었다는 걸 조금씩 잊었구나. 나보다 뒤늦게 결혼하여 비슷한 감정을 겪고 있는 친구의 고민과 고통이 짐작이 갔다.
나의 미혼 시절의 명절도 떠올려 봤다. 우리 부모님도 역시 그랬다. 아빠는 술을 마시며 계속해서 심부름을 시켰고 나와 남동생이 엄마를 거들었는데 부모님은 남동생 보다 나를 더 불러댔다. 남동생은 직장일이 힘들다는 거다. 나도 매일 야근하고 주말만 되면 긴장이 풀려 몸살을 앓고 있는데 엄마는 언제나 아들 손가락이 더 아팠다.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을 칭찬했다면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강화되었을 테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나의 어른 역할 강요와 언제나 아픈 손가락인 동생은 나와 같은 2촌이었음에도 꽤 친근했던 남매관계를 계속해서 상하관계로 혹은 멀어지게 만든 꼴이 되었다.
기혼자의 명절은 사실상 어르신들의 허락 없이는 개인의 자유가 없다. 깨어있는 부모라고 자부해도 막상 자녀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싫은 게 사람 마음이라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에게 2세 문제만 아니라면 결혼은 50에 하는 게 딱 적당한 듯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아이디어는 나만 생각한 게 아니어서 놀랍기도 했다. 선진국 대열로 들어서려 하는 나라의 특징 중 하나인 저출산은 여성들의 사회적 욕구가 의식 변화가 우리나라에도 여지없이 적용되고 있다. 출산하는 가정에게 돈을 지원해 주는 건 감사한 일이지만 근본적인 여성에 대한 사회 문화적 인식을 바꾸는 운동을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심리학자 우즈홍은 이렇게 말했다. 자아 세계가 무너진 부모가 아이에게 타인의 요구와 의지를 지나치게 강요한다면 아이는 생존을 위해서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순종하며 타인의 감정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된다고 했다. 자아를 잃은 사람은 현재를 살아내기 어렵고 심할 경우 이중 속박에 빠질 수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A에서 벗어나 -A에 이르지도 못하고 늘 불안하고 그 어떠한 위치도 선택 할 수 없다고 했다.
전지적 자아를 누리는 10세 정도까지의 아이는 자기중심적인 게 당연하다. 그 사실이 뿌리 깊게 인식이 되면 그제야 탄탄한 자아를 뿌리로 타인에게 내어줄 품이 생긴다. 나의 모든 좋은 면, 나쁜 면을 안아주고 수용해 주는 어른의 태도를 보고 자라면서 부모와 같은 따뜻한 냄새를 가진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자기 중심성이 발달과정인 어린아이에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어른은 아이에게 품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본인이 이기적인 것이다. 자기중심을 토대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아이는 그때의 정신세계에서 성장을 멈춰 정작 어른이 되어도 자신이 세상에 중심으로 돌아가지 못할 세상이 원망스럽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안고 자라난 아이는 정작 어른이 되어서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억울함으로 타인의 기분과 반응에 따라 내 감정이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된다. 그러면서 타인과의 관계가, 자녀와의 관계가 왜 힘든지도 모르는 삶을 살게 된다.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은 앞으로 대한민국의 생존전략으로 개인의 시대를 넘어 핵개인의 시대를 예견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디지털로 바뀌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중장년층은 핵개인은커녕 개인의 자유도 소화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감과 치유라는 감성을 넘어 사회의 흐름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던 전체의 시대. '진짜 자아'가 없는 삶이 생존에 유리했던 부모님 세대는 자녀에게 진짜자아를 더 챙겨야 생존에 유리하다는 사실을 믿기 쉽지 않다. 개인은 개인 대로지만 결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개인화를 존중하는 집단이 자손을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고 죽으려는 인간 본성의 욕망. 즉, 불멸의 꿈같은 꿈을 이룰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