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디아이 Feb 14. 2024

K장녀 가해,피해 프레임에 갇힌 내 딸 (심리상담편)

내가 겪었던 피해와 가해 프레임을 내 아이들에게 씌우고 있지 않은지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는 날이었다.

오늘은 나에 대한 상담보다 3살 터울 두 아이 갈등에 대한 질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     : 그런 동생 때문에 언니가 힘들거 같아서요.

선생님 : 언니가 왜 힘들거라고 생각하죠?

나     : 동생이 4살이라 말도 잘 안 통하는데다 언니도 아직 7살밖에 안됐는데 자기물건 뺏기면 억울하죠.

선생님 : 어린시절 동생에게 물건을 빼앗겨서 억울했던 비슷한 상황이 있었나요?

 


내게는 4살 7살 두 딸이 있다.

언니는 동생이 징징거려도 침착하게 설명하고 잘 토닥이며 논다.

엄마인 나도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서려다가도 금세 둘이 하하호호 모드로 바꿔 내 발걸음이 머쓱한 적도 많다. 그런데 그런 언니라도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다. 언니가 구축해 놓은 놀잇감들을 동생이 망치고 빼앗을 때다. 그러면 언니는 동생을 크게 만류하지 못하고 울먹이며 달려와서 이른다. 


나는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해봐. 언제까지 갖고 놀다가 이따 줄게~ 라고 해보든지."


그런 말이 진즉에 통했으면 이렇게 달려오지도 않았겠지. 귀여운 막내는 무척 사랑스러웠지만 장녀였던 나와 첫째 아이의 마음이 동일 시 되어 4살 동생을 어떻게 다룰 지 머리를 짜내느라 마음이 쫄렸다. 그 사이에 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앙~ 하고 더 크게 우는 일 뿐이었다. 그 전에도 동생에게 이 방법이 통했거든.


나는 아이들 싸움에 웬만하면 개입을 안 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맏딸의 큰 울음에 내 마음이 힘들어 둘째 앞에 직접 나서고 말았다.


"언니가 먼저 갖고 놀던 거니까 돌려주자~ 이따가 언니가 준대."

"자~ 여기, 가져가라~."


그제야 둘째는 빼앗은 장난감을 던지듯 툭 건네준다.

언니로서 동생에게 좀 단호해도 괜찮을텐데 왜 자꾸 쪼르르 와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걸까.

나도 4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었던 첫째다. 첫째만의 설움을 잘 알기에 언니가 무조건 양보하고 져 주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심지어 동생도 거꾸로 언니 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세상이치도 모르는 둘째아이에게 내 마음을 투영하여 오바한 적도 있다. 육아서적의 조언에 따라 빼앗는 쪽 보다 빼앗김을 당하는 쪽에 더 관심을 더 주고 동생에게는 간단명료하게 일러보기도 했다. 일을 벌인 쪽이 엄마의 관심을 더 받으면 곤란하니까.


"에구, 갖고 놀던건데 빼앗겨서 속상하긴 하겠다~."

"동생아, 언니꺼 망치고 빼앗으면 안돼."


나 :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반복되는 일상들이라 한 번은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선생님 : 어린 시절 동생과의 갈등에서 어려웠던 일들이 있나요?

니 : 떠오른 일들이 너무 사소하고 유치해서 말씀드리기도 민망한 수준이에요.

선생님 : 별거 아닌 일이란 건 없어요. 사소한 일이라도 누군가가 들어주고 진심으로 수용받는 경험이 중요해요. 내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한 거예요.

 

대략의 사건들에 대해 말씀드렸다.

 

니: 남동생은 덩치도 좋고 먹성이 좋은데 반해 저는 오래 씹어서 천천히 소화시키는 편이에요. 그런데도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딸기를 주실 때 결코 두 접시에 나눠 담아 주신 적이 없었죠. 한 접시에 담긴 더 많은 양의 딸기는 남동생 차지였어요. 엄마께 말씀드렸지만 반영된 적은 없었습니다. 제게 있는 식탐의 이유가 될 수도 있겠네요. 성인이 되어 엄마가 옛날에 그랬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막내라 양보하라고 한 적은 있지만 결코 차별이 아니다.'라며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셨죠. 

 

또 한 번은 우리 남매에게 똑같이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는데 동생은 벌써 다 먹고 내 거를 달라고 떼를 썼어요. 엄마는 그날도 징징대는 동생의 감정을 조절해 주는 노력을 포기

하셨고 그 책임은 제게 넘어왔어요.

"아휴~ 그냥 동생 줘라~."라고 하셔서 저도 동생의 징징거림을 보다 못해 줘 버렸습니다.

저도 어린아이였는데 굉장한 억울함이 마음속에 남아있어요. 그러면서 동생을 더 잘 챙기라고 하는 엄마와 동생 모두 미워졌습니다.

 

7살 때 유치원에서 캉캉춤으로 재롱잔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날이었어요. 진짜라 믿었던 산타할아버지가 나타나 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셔서 방방 뛰며 좋아하고 있었어요. 그러자 관객석에 있던 동생이 무대로 뛰어나와 제 선물을 달라고 떼썼습니다. 엄마는 나만 보이는 눈짓을 보내셨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무대에서 동생한테 선물을 건네줬죠. 엄마는 객석에 다수의 손님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보다 7살인 제가 희생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셨어요.

그 선물은 집에 가는 내내 동생 손에 들려있습니다. 나의 빈손은 갈 길을 잃었고 "집에 가면 어차피 같이 갖고 놀 거니까?"라고 반복해서 물으며 나의 억울한 마음을 외면한 채 평소 듣던 속 깊은 아이답게 굴어야 했습니다.

효율적으로 함께 갖고 놀 수 있는 큰 선물보다 작은 선물이었어도 제 거와 동생 거 2개를 따로 준비하셨더라면 어땠을까요.  


 

차별 없는 공평은 조건이 서로 동일한 상황에서 같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한 조건이 동일하지 않다면 차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 공평이다. 불공평이 눈에 희미하게 보였어도 엄마도 자세히 볼 에너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 보기도 했다. 정신분석에 따르면 엄마는 딸을 자신의 확장자라 인식하고 성이 다른 아들은 타자라고 인식한다. 딸은 엄마의 이해를 요구받기 쉬운 구조적 성격을 띤다. 나의 동생은 막내에다가 아들이었으니 공식은 완벽했다. 나와 동생의 엄마는 명백하게 서로 다른 엄마였다.

 

선생님은 내 이야기가 끝나자 벌떡 일어나셔서 팔소매를 걷고 반대편 의자에 큰 쿠션을 두셨다. 그리고는 그 쿠션이 남동생이라고 생각하고 억울했던 마음을 동생에게 직접 말해 보라고 하셨다. 나도 똑같은 어린아이였을텐데 억울했을 그 마음을 끄집어 내 따져보라고 하셨다.

 

.....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고 나는 선생님께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도대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말을 해 봤자 소용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은 나를 대신하여 입이 대빨 나온 심술 맞은 어린이 표정으로 연기하셨다.

 

선생님: "흥! 나도 정말 먹고 싶었는 데에~ 왜 너만 다 먹는 거야~ (징징)

내 거를 막 다 뺏어가고 어?!! 정말 짜증 나고 억울해 죽~겠어! 너 그래도 되는 거야?! 엉?! "

나 : 동생은 저보다 4살이나 어리니 말한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선생님 : 아기도 아닌데 왜 이해 못 한다고 생각하죠?

동생은 사고뭉치에 보호와 도움만 받는 존재로만 인식 됐었나 보네~

나 : 엄마는 제게 어른이 없을 때 제가 엄마 역할을 해야 된다고 항상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선생님 : 누나를 집안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로 여기기도 하셨구나.

 

 

선생님은 가끔씩 함께 흉을 보며 무조건 내 편을 갖는 느낌을 가져보게도 하셨고 상황극을 통해 내면 깊숙한 곳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마음을 언어로 배출시켜 주셨다.

 

선생님은 바구니 속에 있던 나무 인형 2개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그게 나와 동생이라고 하셨다.

그러고선 내 인형 옆에 있던 '가시 공'을 저 빈 공간으로 보냈다. 선생님은 내게 동생 옆에 있었던 하트나무조각을 내 쪽으로 가져오라고 하셨다.

 

선생님: 누나를 따라다니고 좋아했던 마음(하트조각)은 자~ 이렇게 받고!

남매가 똑같은 어린이였음에도 어른이 되어야 했던 억울했던 마음(가시공)을 저 멀리 빈 공간에 옮겨보세요.

 

그것도 바로 되었다면 내가 상담실에 있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막연하게 억울하기만 했던 내 마음이 나무인형 시각화를 통해 해석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 다음 단계가 될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나 : 이번 상담은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참았어요.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요.

선생님 : 감정을 억제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래요. 이해해요.

상황에 따라 원래 제일 나이가 많은 형제가 대장이 되기도 해요. 그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장녀였기 때문에 전체 상황을 보며 리더십과 주도성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좋은 거예요.

동생은 때리고 망치는 존재, 언니는 피해를 받는다는 내 어린 시절의 프레임을 씌우지 말아야 해요. 첫째 딸이 와서 울며 이르면 마음을 공감해 주고 그래도 동생을 잘 데리고 노네~ 기특하게 여기며 칭찬해 주세요.

특별히 때리거나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아이들끼리 놀다가 화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세요.

 

 

 

오늘날에는 발전된 문화 매체로 스스로를 탐구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과거보다 훨씬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먹고사는 것 외에 마음까지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나의 이런 노력도 부모님 세대가 일구어 낸 기반 위에서 누리는 혜택인 부분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내가 누리지 않는 혜택은 혜택이 아니다. 동시대 문화권에 속하더라도 나이에 상관없이 자신의 편향에 따라 정보를 취하기도 거부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피해와 가해의 구도를 우리 아이들에게 씌우고 또다시 그런 구도로 세상을 바라보게 대물림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현대에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를 싸움들에 뒤엉켜 있다. 존재 자체가 충분히 존중되고 사랑을 받아왔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도 된다고 믿는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사랑과 평온의 언어로 이끌어 줄 수 있다..

 

 

 

그림) 새끼 사자들이 뒹굴며 노는 모습

 

새끼 사자 형제들은 서로 물고 물리며 이빨의 힘 세기를 느끼고 신체조절을 해 나간다.

놀다가 싸웠다고 힘들거나 나약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갈등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 사회성을 기르는 열쇠가 있다.

 

으르렁~ 엇 이빨 너무 셌어? 미안해~



이전 06화 명절에 혼자 스타벅스 간 정신나간 며느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