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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디아이 Feb 21. 2024

결혼을 결심하게 된 그의 '말'

머리칼과 얼굴빛이 왜 이렇게 거칠어요?

생각해 보면 이런 대화가 오고 간 후 그와 결혼을 결심했던 것 같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어감, 분위기, 불어왔던 가을바람도 좋았다.


나: 오늘은 머리칼이 위로 쭉쭉 뻗었네요 

그: 사람이 줏대가 있어서 그래요. 후훗


나: 집에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얼굴빛이 거칠어요.

그: 남자가 상남자라서 거친 거예요. 후훗


나중에 알고보니 짧은 머리에 하드왁스를 발라서 머리가 쭉쭉 뻗은거였다.

얼굴빛이 거친 이유는 건강검진 중 작은 시술을 했는데 안타깝게도 집에 가서 쉬지 않고 나를 만나러 나온 탓이었다. 

 

그는 일상의 대화를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꾸는 힘이 있다. 자칫 심각하게 이어질 수 있는 상황조차 과하지 않은 유머로 자연스레 녹인다. 의도했다기 보다 원래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다. 나를 좋아해서 그렇게 말했을 수 있지만 이 사람만의 색깔이 있었다.


그의 함께 있을 때는 마음이 따스하고 평안하다.

미성숙하고 거친 타인의 말을 듣더라도 상대의 감정적인 외적 언어와 내적 의도를 쉽게 분리해 자신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해 내는 그의 태도가 부러웠다. 그렇지만 의도가 나쁜 말을 잘 알아차리고 내게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럴 때 그는 그런 상대와 대화를 최대한 나누지 않으려는 편이지만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이내 자신의 일로 돌아가는 것, 그 뿐이다.

그의 자존감은 삐죽한 머리칼도 부드럽게 거친 피부도 윤기나게 만들었다.


그래도 늘 궁금했던 점은 있었다. 자신의 성격을 '초긍정적'이라 한 표현이다.

긍정적이면 긍정적이지 왜 '초'를 붙였을까. 어떤 험난한 산을 초월해야 했을까 궁금했다.

성경에도 의인은 고난이 많다고 했다. (시편 34:19) 앞으로 인생의 여정에도 넘어야 할 수많은 고난의 산이 있을텐데 '이 사람과 함께라면 맞닥뜨릴 고난이 많이 힘들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 상상이 술술 됐다. 그렇게 어느 새 결혼식장에도 술술 들어가 있었다지.


신혼 때는 각자 직장을 다니며 연애할 때와 다를 게 없는 삶을 보냈다.

그러다 그가 심신이 힘들 때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했다.


"나도 여기서 작업하려고 했어~."


혼자있는 그의 시간이 길어질 때는 그가 있는 방으로 작은 책상을 낑낑거리며 옮겨 놓고는 나도 여기서 내 할일을 하는거라며 집 안에서 따라다니기도 했다. '아이쿠, 동선이 자꾸 겹치는걸 어쩌나.' 그는 나의 애정을 잘 받아주면서도 거부당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게끔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정성껏 설명해 주었다.


그는 나의 치유자이기도 하다.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준다.

내가 겪은 불쾌한 감정이 맞는 지 확신이 들지 못할 때도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불쾌한 게 맞는거야.' 라고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런 대화가 지속될 수록 자존감에 큰 힘이 되었고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공백을 충분히 갖게 해주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은 고통이라 했다. 때로는 남편이 아니라 아들같은 모습이 왜 없었겠나. 그래도 이 사람의 좋은 점이 단점을 가려버릴 만큼 크고 소중하다 라며 마음을 다독일 때도 있었다. 실례로, 화장실에 휴대폰을 들고 큰 일을 보러 들어가서 30분 넘게 안 나오는 습관이다. 그 습관은 결혼 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습관이라 고치기 힘들다고 했다. 한 귀로 잘 흘리는 성격이 이럴 때는 악영향을 끼쳤다. 유익하지만 자신에게 적용하기 싫은 말도 한 귀로 잘 흘려 보냈다. 이번 사안 만큼은 나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습관은 우리에게도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고 큰 해가 될 거라 생각했다. 수많은 호소, 회유, 협박, 눈물, 밤 시간에 롯데리아로 가출 등 일방적인 충돌 5주년이 되서야 그 습관이 아예 뿌리 뽑혔다.

 


가볍게 티격태격 하기는 했지만 애틋한 나날이 지속될수록 우리 부부에게도 애정선이 얇아지는 날이 올 까 불안하기도 했다. 내게 매력으로 다가 온 배우자의 성향에 끌려 결혼했다가 그 성향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는 게 인간이기에.

마초같은 남자의 매력에 넘어 가 결혼을 했는데 가정적인 섬세함은 전혀 없는 남편이 미워죽겠다는 사람도 있고 섬세한 공감성이 좋아 결혼했는데 가장으로서 야망은 없단다. 또, 공감성도 야망도 완벽한데 아내 말고도 세상에 모든 여자들이 좋은 사람도 있단다. 한 사람 안에 여러 성향들이 적절히 분배되면 좋으련만 사람이 참 중간이 없다.


그런데 이유는 딱 하나다.

나의 삶도 '중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대가 중간이더라도 내가 우측으로 치우쳐 있다면 나의 시선으로 보이는 상대도 더이상 중간이 아니다. 나라마다 정각의 때가 다르고 지역별로도 생활습관이 다른데 어느 누가 나만큼은 상식적이고 기본적인 사람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사람이 기본이 없다거나 상식적이지 않다는 말을 매우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오히려 본인이 더 기본과 상식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나도 위 사실들을 망각하고 그에게 이런 말들을 건네기도 했다.


"당신은 참 사랑스럽고 아이들에게도 따스한 아빠야. 여성성이 많아서 섬세하고 공감력이 좋은가봐. 그래도 아까 다른 아저씨랑 주차문제로 이야기 할 때는 성격도 좀 부릴 줄 알고 그러면 좋겠네. 내가 다 화가 난다."


또 이런 말도 건넸다.


"샐러드 싸줄테니 식단 하면서 운동도 하면 좋겠어. 코로나 전 수영이 마지막 운동이었으니까.

누구 아빠는 자기 건강 챙긴다고 헬스다니면서 근력운동도 열심히 한다더라고."


아뿔싸, 다른 아빠를 들먹였다.

말이 먹히라고 자극적으로 말해봤는데 역시나 예민한 피드백이 날아왔다.

 

"남에게 성격부리는 사람은 자기 가족에게도 부릴 가능성이 높다는 걸 모르나?

아이쿠, 일리가 있는 말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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