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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Mar 21. 2023

사춘기와 사십춘기

작년부터 슬슬 사춘기가 시작된 중2 아들과의 관계는 서스펜스다.

아들 이야기를 할 때 선배 엄마들의 반응은 마치 스릴러 영화 예고편 같다.


아들이 다정한 행동을 했다고 하면 

“아직 사춘기 안 왔네”


말을 안 듣는다고 하면 

“이제 사춘기 시작이야. 그 정도는 껌이야”


자기 방 문을 닫고 있다고 하면 

“집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


등등..


도대체 대한민국 중학생 아이들의 중2 병은 얼마나 위중한 병이길래 선배 맘들이 하나 같이 이렇게 겁을 주며 말하는 것일까. 두렵다.

응애응애 우는 것만으로도 부서질 것 같이 연약했던 작고 소중한 내 아가, 태어나서 내 품에 안기고 아장아장 걷다가 나를 엄마라고 불러주며 재롱을 떨던 내 아들. 아기 냄새나던 나의 첫사랑이자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별이 곧 스릴러급 영화의 주인공이 될 거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사춘기에 돌입한 아들과의 행동에서 가끔 중학생이었던 나를 어렴풋이 떠올려 본다. 예를 들면 아들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 놓고 공부를 한다. 더군다나 듣기만 해도 정신 사나운 힙합 음악이다. 에어팟으로 귀를 틀어막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아들을 보면 단전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른다. 나는 30여 년 전 우리 엄마와 똑같이 아들에게 말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공부가 되나?!” “잘 되는데?” 정말 얄미운 아들의 반응이었지만 피식 웃음이 났다. 나도 공부할 때 꼭 마이 마이 카세트로 음악을 들으면서 했었는데 아들도 어찌나 나를 꼭 닮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약간의 백색 소음이 있어야 공부가 더 잘됐던 사람인지라 그렇게 생각해 보니 아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늘 단정하던 머리로 이마를 훤하게 드러내놓고 다니던 아들이, 앞머리를 길러 눈까지 덥수룩하게 덮고 다닌다. 보고 있노라면 답답해서 천불이 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중학교 때 그랬다. 앞머리에 최고의 일탈인 스프레이를 뿌리고, 구르프를 말아 한껏 들어 올려 세운 다음 앞머리로 얼굴에 커튼을 치고 다녔다.


아들은 직선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자존감이 높다. 슬슬 자기주장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어떨 땐 나보다 더 맞는 말만 골라해서 말로는 이길 수 없을 때가 많다. 참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따박 따박 다 하는 것도 꼭 나를 닮아서 누굴 탓할 수도 없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래 누굴 닮았겠나 나를 닮았지'하고 한숨을 쉬어본다. 그리고 그저 '자식이 하나니 망정이지'라는 자기 위로로 내 마음을 달래 본다. 


요즘 아들을 대하는 나를 보면 내가 얼마나 모순 덩어리인지 깨닫게 된다. 자기 가치관을 바로 세우고 생각을 똑바로 말하는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독서를 하게 하고 논술을 가르쳐 놓았다. 그래 놓고는 자기 생각을 지지 않고 말하면 부모에게 말대답한다고 얘기한다. 예의와 자기 주장 그 경계선을 찾기가 너무 힘들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어 주겠다 해 놓고 아들이 조금 대드는 기색이 보이면 “내가 네 친구냐?”라며 부모의 권위가 사라졌다 말하며 분노한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좋다는 교육을 시켜 놓고는 요즘 애들은 우리 때랑 다르게 너무 빠르다 되바라졌다고 말한다. 인내, 끈기, 용기, 좋은 습관 등 마흔이 훌쩍 넘은 성인인 나도 잘 못하는 걸 아이에게 원하기도 한다. 나도 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면서 아이에게 감정 조절을 바라기도 하고 말이다.


멋진 부모이자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도 미성숙한 사람이다. 이렇게 미성숙한 부모가 어찌 사춘기 아이만 탓하겠는가. 아들의 사춘기를 통해 나는 아들 곁에서 사십춘기를 겪으며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길 소망한다. 매우 힘들겠지만 한 사람의 인격으로 아들을 인정하고 독립해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나도 같이 성장하는 기간이 되길 바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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