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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토끼 Oct 30. 2022

핑크색 머리로 나간 애프터는 성공했을까

자유를 누리던 솔로 백수의 패기

3년 반을 몸 담은 회사를 제 발로 나와 백수가 되었던 때, 나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이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의 몸이었지만 더 자유로워야 했다. 백수니까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이 생겼다. 지금 최선을 다해 자유롭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한 채 기한이 지나버린 기프티콘이 되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떠올려보았다. 쉬는 날에도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거주 환경, 정해진 옷차림… 그리고 떠올랐다. 그래, 헤어 스타일…!


보통의 회사가 그렇겠지만 내가 다녔던 회사에도 염색에 제한이 있었다. 남성은 염색 불가, 여성은 밝은 갈색까지만 허용이었다. 어둡든 밝든 갈색톤만 허용이라니, 세상에는 갈색 말고도 예쁜 색이 많고 많은데 말이다.


순간, 처음으로 탈색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머리카락에 핑크색을 입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많고 많은 색 중에 핑크색인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니까.


문제는 다음날 소개팅 애프터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 소개팅 상대는 키가 훤칠하고 굉장히 내 취향의 외모를 가진 분이었다. 애프터 신청을 곧바로 하지 않고 며칠 뒤에나 해서 내 애간장을 졸이게 만들었던, 그런 멋있는 분이었다. 그러나 ‘최대한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을 하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은 내게는  모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자우림의 노래처럼 ‘선 보기 하루 전에 홀딱 삭발을~’까지는 안돼도 ‘애프터 하루 전에 핑크 염색을~’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의 머리색은 두 번의 작업을 걸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쨍한, 핫핑크색이 되었다.

‘흠, 이건 힘들 수도 있겠다…’


“예쁘네요!”

애프터 당일, 그의 첫마디에 나는 마음이 녹을 것 같았다.

“정말요? 너무 튀지 않아요?”

“만화 캐릭터 같고 예뻐요.”


하나도 놀라지 않고 싫은 기색 하나 없이 예쁘게만 봐준 그의 마음이 고마웠다. 소개팅에는 국룰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바지보다는 여성스럽게 치마를 입는 것이 낫고, 너무 튀지 않는 화장을 하고, 상대의 말을 잘 듣고 리액션을 잘 해주어야한다는 등. 그 날의 내 모습은 최대한 단정한 치마를 골라 입었음에도 머리 색 때문인지 눈에 띄게 화려했다. 게다가 왜 핑크색으로 염색을 하게 되었는지 신이 나서 내 이야기만 한 그날의 나는 그 국룰에 한참 위배되었겠지만 다행히 그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삼프터까지 이어졌고, 다섯 번째 만남에 우리는 사귀기로 약속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지레짐작해서 겁먹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오히려 그런 내 모습이 당당하고 보기 좋아 보였다고 했다. 결국 모험 대성공, 해피엔딩…!?


여담인데, 나의 핑크 머리를 좋아해 준다고 해서 다른 취향까지 맞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시덥잖은 이유로, 나는 그와 사귄   달째에 이별을 고했다. 핑크색이 금방 빠져 노란색에 가까워졌을 즘이었다. 그날 노란 머리에게 차인 잘생긴 남자는 목표로 하던 시험에 합격하고  결혼에까지 성공해  살고 있다고 한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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