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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토끼 Oct 30. 2022

‘나는 잘해’의 마법

기준을 남에서 나로 바꾸기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만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제목과 등장인물부터 갈등 구도, 배경 음악이 가사까지 치밀하게 계획했을 정도니 꽤나 진심이었다. 나만의 만화 노트에 작품을 연재하는 것은 소소한 취미 중 하나였다. 교내 사생 대회에서 상을 타본 적은 없었지만 그림을 좋아했고 또 괜찮게 그린다는 나름의 자부심도 있었다.  


그렇지만 주변의 평가는 달랐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연하게 색칠한 바닷물을 보시더니 이것은 잘못된 그림이라며, 스케치북의 흰 부분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크레파스로 진하게 칠해야 한다고 하셨다. 엄마는 나와 친구의 그림을 비교하며 너무 어린이 같은 그림이라고 하셨다.(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아빠는 나의 손이 둔한 편이라고 하셨다. 자연히 나는 기가 죽었고, 누가 제일 자신 없는 과목에 대해 물으면 당연히 미술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비단 그림만이 그럴까. 세상 다양한 것들이 모두 어렵게만 느껴지던 , 이력서에 써야 하는 ‘특기’ 란에 멈칫하던 때, 나는  이렇게 잘하는 것이 없을까, 스트레스를 받던 어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잘한다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가 취미로 러닝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오 러닝 잘해? 몇 분 페이스로 뛰어?”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면 이런 말을 들었다.

“우와 바이올린 잘해?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


10km를 50분 안에 주파할 수 있으면 러닝을 잘한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 아니면 40분은 되어야 하나…? 사실 나는 1시간 언저리 안에 10km를 뛸 수 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기준을 남이 아니라 나에게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바이올린 역시 어디 가서 멋지게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아주 간단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지금도 충분한 것 아닌가? 예전에는 활 쥐는 방법도 도레미도 모르던 예전에 비해 엄청난 성장을 한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응, 내 기준에서는 잘해!”

‘나는 잘해’의 마법 덕분에 나는 러닝과 바이올린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다.


꼭 칭찬과 인정을 남에게서만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우선 나부터가 나를 칭찬하고 격려해주면 어떨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응원하며 으쌰 으쌰 다음 단계로 가다 보면 언젠가 남들이 보기에도 잘하는 사람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높고 높은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며 기죽는 것보다 나는 잘한다고 외치며 에너지를 얻는 편이 훨씬 낫다.


… 이상 나는 글을 잘 써,라고 세뇌하며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고 있는 채토끼였다. 오늘도 외쳐본다. 나는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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