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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토끼 Oct 29. 2022

엄마도 나훈아를 좋아해?

지레짐작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

“혹시 나훈아 티켓 필요하신 분 계신가요? 자리는 3층이긴 한데 연석이라서 취소하기 전에 물어봅니다~”


쏟아지는 업무로 정신을 못 차리던 어느 날, 카톡방에 메시지가 뿅 하고 나타났다. 일명 ‘짱친들(짱 친한 친구들의 준말)’이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두 명과 가끔 수다를 떠는 카톡방이었다. 이번에 짱친 중 하나가 부모님을 위해 나훈아 콘서트를 예매했는데, 여유 자리가 생겨서 우리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처음 대답은 내가 먼저 했다. 그런데 메시지를 뒤늦게 본 다른 친구가 부모님이 나훈아의 엄청난 팬이시라며 너무너무 아쉬워하길래 쿨하게 양보했다.

“괜찮아, 우리 엄마는 안 좋아하실 거 같아.”


다음날, 친구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여유 티켓이 두 장 더 생겼는데 그냥 취소하기엔 아쉬워서 한 번 더 물어본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부모님들은 다 좋아하실 거라고도 했다. 카페에서 할 일을 하느라 여전히 정신이 없던 나는 고맙지만 우리 부모님은 정말 괜찮다고 대답하려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가족 카톡방에 메시지를 남겼다.


“혹시 엄마 아빠 나훈아 좋아하십니까…?”

“좋아해서 예매하려다 못했어.”


엄마의 답장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 평소 잘 걸지 않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 말로는 안 그래도 티켓팅 시간에 맞추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어 하는 사이에 금방 매진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엄마는 콘서트 좌석의 종류와 가격까지(심지어 천 원 단위까지) 나보다 더 자세히 알고 계셨다. 몇 년 전에도 가고 싶었는데 고민하다 못 가셨다는, 그래서 이번에는 꼭 가고 싶으셨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듣게 되었다. 당연히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근데 친구들 부모님이랑 혹시 옆자리인 거야? 나는 오빠!!! 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데 눈치 보이잖아.”


자리는 다 떨어져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을 시켜드리며, 잠깐 말이나 꺼내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우리 엄마가 나훈아를 안 좋아하실 것 같다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우리 엄마가 나훈아를 좋아하기엔 너무 젊다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평소에 나훈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고,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는 더더욱 들어본 적이 없기도 했다. 그래도 직접 묻지 않고 지레짐작으로 넘어가지 않길 다행이었다. 이렇게까지 기뻐하실 줄이야. 60대 오빠 부대는 남들 일인 줄만 알았다.


잠깐의 모험으로 이제껏 몰랐던 엄마의 취향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티켓 두 장 값 294,000원으로 부모님의 행복까지 샀다. 나와 친구까지 괜스레 뿌듯해진 것은 덤이다. 짱친들의 부모님들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같은 공연을 관람하실 생각을 하니 귀엽게도 느껴졌다. 나는 친구들에 비해 아직 모르는 게 많네, 또 무엇을 좋아하시려나…


라는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엄마는 사실 조용필을 정말 좋아한다며 서울에서 곧 열릴 콘서트에 꼭 가고 싶다고 덧붙이셨다. 나훈아 콘서트보다 더 비쌀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큰일이다…



무서운 저 말, 기억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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