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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토끼 Oct 30. 2022

나에게서 온 편지

쉽게 하는 시간 여행

강릉 바닷가에서 우연히 ‘느린 우체통’을 처음 발견했던 때, 굉장히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초등학생 때였나 중학생 때였나,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웹사이트가 있었다. 심지어 무료였기에 이게 정말 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썼는데 1년 뒤에 정말로 편지가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마치 시간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설레며 또 한 번의 편지를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웹사이트는 접속이 되지 않았고 자연히 나의 편지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무심코 지나쳤을 우체통이었지만 엽서를 넣으면 1년 뒤에야 보내준다는 그리운 그 감성에, 나는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번에는 다행히 편지를 받았다. 강릉 여행을 함께 했지만 이제는 전 남자 친구가 되어버린 분의 깜짝 편지도 함께 받아 살짝 머쓱하긴 했기만 말이다.


그 후로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생일에는 빼놓지 않고 쓴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편지를 쓸 수 있는 곳을 보면 조금 멀더라도 일부러 찾아갔다. 해외에서 보내는 편지는 어차피 천천히 도착하니까, 꼭 느린 우체통이 아니더라도 괜찮았다.

대만 타이중의 ‘커커랜드’라는 가게에서. 원하는 연도, 월에 맞추어 편지를 보낼 수 있다.


나에게 쓰는 편지라니, 매우 민망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괜찮다. 별 말이 없어도 감동이다.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나에게서 열렬한 응원을 받는 기분이다. 매년 달라지는 나를 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안녕? 나는 20xx 년의 채토끼야.
우선 생일 축하해!
20xx 년의 채토끼는 생일을 어디에서 보내고 있니? 누구와 보내고 있어?
행복한 생일을 보내는 중이면 참 좋겠다.
……
올해도 수고 많았어. 평생 잘 부탁해!


실제 내가 받았던 편지의 일부다. 당시 힘든 일이 있어 울적한 마음으로 떠났던 제주도에서 썼던 편지인데, 1년 뒤에 받아보니 다 이겨내고 아무렇지 않아 진 현재의 내가 대견하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과분한 축하와 사랑을 받아서 행복한 생일이었다고, 걱정 말라고 답장을 보내고 싶었다.


자, 이번 생일에는 내게 뭐라고 적어볼까. 1년 뒤의 나를 상상하며 기쁘게 펜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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