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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와 지위의 경제학

1. 서론

유한계급론은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라는 개념을 통해서 유한계급의 행동 원인과 결과에 관해 서술하는 책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나타나는 과시적 소비와 여가는 경제학적 유인이나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유한계급론』은 이를 풍자와 관찰로 풀어낸다. 특히 유한계급론은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유한계급의 행동을 약탈 사회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주류 경제학의 합리적 경제인이라는 개념을 비판한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사회제도를 분석하여 누가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의 진화를 막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다. 물론 유한계급론이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많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유한계급으로 불릴 수 있는 여러 유명 경제인들이 과시적 낭비보다는 경제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에 종사하는 부분까지는 설명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책의 논리적 결핍으로 귀결되는 부분이 아니라 그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사회 경제적 구조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후에 내 생각을 더 해 설명하도록 하겠다.


2. 과시적 소비란 무엇인가?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낭비)가 핵심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란, 유한계급들이 경제적 인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소비 행태를 일컫는다. 남들보다 비싼 차를 타고 비싼 술을 마시며 불필요한 예절에 집착하는 유한계급의 소비 행태는 적은 재화를 통해서 최고의 결과를 끌어내야 하는 합리적 경제인간들의 설명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에 집착하는가?? 여기서 베블런의 독창적이고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베블런은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분석한다. 구조주의란, 인간의 행동은 합리성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영향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생각이다.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가 시작된 시기를 약탈 사회로 상정했다. 그가 말하는 약탈 사회란, 잉여생산물이 막 생겨나기 시작한 사회를 말한다. 잉여생산물이 생겨났기 때문에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전사와 같은 계급이 생겨났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부족을 침략할 경제적 유인이 생겼다. 약탈 사회에는 2가지 종류의 계급이 있다.


첫째는 생산계급으로 농사, 집안일, 그릇 제조와 같이 예측할 수 있는 일을 담당한다. 이런 일은 원인과 결과가 명확한 특징을 가진다. 둘째는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유한계급으로 이들은 사냥, 타 부족과의 싸움 등을 담당한다. 동물이나 적군의 행동은 예측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결과는 불확실했다. 인과관계, 시간의 흐름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때문에 후자 부류의 계급이 더욱 존경받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결과 노동은 비천하고 피해야 하는 생각이 발달하였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보다 더 낫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며, 약탈 사회의 유한계급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들은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전투에서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잉여생산물이 적었던 초기에는 여성 노예 혹은 적군의 목과 같은 것을 가져왔고, 이는 사유재산과 가부장제의 전신이 되었다. 전리품이 가부장제 탄생의 기원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첫째, 남성 노예는 잉여생산물이 적은 사회에서 짐이 되었기 때문에 다들 처형당했다. 하지만, 여성 노예는 생산계급 혹은 개인의 성적 욕구 그리고 유전자를 남기려는 본능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기에 능력 있는 전사의 전리품이 되었고, 이는 사유적 재산으로 취급되었다. 둘째,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생산계급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일은 덜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었고 그런 고대의 관념이 후대의 가부장제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더 많은 여성 노예와 전리품을 과시하던 관습이 시간이 지나 과시적 소비와 여가로 이어졌다고 베블런은 설명한다.. 시대가 지나면서 이성이 발전했고 예전과 같이 노예와 적군의 목으로 자신을 과시하던 관념이 이제는 노동하지 않고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 소비로 자신을 과시하는 관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통해서 예법, 성대한 파티와 결혼식, 사냥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스포츠카, 스포츠 구단 소유, 보트 등의 소비 행태를 설명할 수 있다. 생산적인 노동을 하지 않고 비경제적인 재화에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뛰어남을 과시하는 것이 현대 시대의 과시적 소비와 여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3.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는 문제인가?

몇몇 사람들은 베블런의 책이 중립적 입장에서 유한계급을 묘사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한계급론의 목적은 2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 주류경제학의 경제적 합리성으로 유한계급을 평가하는 관점에 대해 반론하고 그 행동의 비합리성을 밝히는 것.

둘째, 유한계급론과 저소득층의 탄성을 이해하고 그러한 탄성이 경제 변화에 따른 경제 구조의 변화를 어떻게 저해하는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요약하면, 유한계급의 행태는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며, 오히려 그 비합리성을 지키기 위해 경제 구조의 발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베블런은 사회 경제 구조의 진화론적 관점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 있다. 다윈의 진화론이란, 생물의 유전자는 목적 없는 돌연변이를 겪는데 이런 돌연변이는 자연선택에 의해 자연에 제일 걸맞은 유전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새가 왜 날개가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연히 발현된 새의 날개는 자연에서 살아남는데 가장 적합한 형태였고 이는 날개 유전자가 살아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베를런에 따르면, 사회경제구조 또한 진화론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회경제구조 또한 무목적적 돌연변이로 인해 변이를 겪는데 지금 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사회 경제구조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제치고 살아남은 것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 사회구조는 유전자와 다르게 특정 계급에서 벗어날 수 없다. 유한계급은 그들이 가진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체제를 유지하게 되는데, 그들은 계급적 특성 때문에 개혁과 변화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경제적 우월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개혁에 반대하고 비합리적 과시적 소비에 집착하면서 사회경제구조 변화를 저해한다. 사회 저소득층은 살아남기 위한 경제활동에 모든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다 소모하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저항하기보다는 약탈 사회 때 형성된 구조주의적 인식에 영향으로 유한계급을 동경한다. 그러한 동경심과 유한계급의 사회적 영향력은 과시적 소비가 사유 재산과 같은 경제 발전에 필수적인 관념과 대립할 때, 유한계급의 입장을 옹호하기도 한다.


베블런이 기술 발전을 옹호한 경제학자임을 생각하면, 베블런의 분석은 매우 자연스럽다. 기술의 발전을 유한계급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경제적 구조 또한 발맞추어 발전할 때 기술 발전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데, 유한계급은 이러한 발전을 저해한다. 주류경제학에 따르면 유한계급의 행동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합리성의 결과라고 하지만, 베블런은 약탈 사회에 발생한 비합리적 구조주의의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비합리적 행동의 대가로 경제적 발전이 저해된다는 것이 유한계급론의 주된 논제이다. 따라서, 이 책은 유한계급의 비합리적 행동의 원인과 그 영향 그리고 저소득층의 보수화에 대한 설명을 통해 경제 발전 저해의 원인을 설명한다.


4. 내 생각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매우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과시적 소비와 여가에 대한 설명은 합리적 경제인간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약탈 사회로부터 비롯된 구조주의적 접근은 참신하고 매우 논리적이다.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


첫째, “유한계급론”이 쓰인 금권시대와는 다르게 지금 시대의 유한계급들은 과시적 낭비뿐만 아니라 생산적 경제활동 또한 자랑스럽게 여긴다. 이는 유한계급이 노동을 천하게 여긴다는 설명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마르크스는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회 저소득층의 각성을 통한 혁명으로 이루어진다는 희망찬 그림을 보여준다. 반면에 유한계급론에 등장하는 저소득층은 유한계급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유한계급이 지배하고 발전을 억압하는 현재 사회경제 체제의 유지와 그에 종속되는 저소득층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 “유한계급론”이 비판하는 고전, 스포츠, 대학은 과시적 낭비의 일환이라고 설명하지만, 현대사회의 고전 공부, 스포츠, 대학은 분명한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나는 위의 2가지 비판은 과하고 마지막 비판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재 시대의 유한계급들이 더 생산적 활동에 종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 베블런의 분석이 이를 설명하지 못하다는 것은 옳지 않다. 베블런의 과시적 소비와 여가는 사람들의 과시적 행동에 중점을 둔다. 예전의 경제 체제에서는 개인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부의 양은 한정되었다. 따라서, 내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내 능력의 결과라기보다는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유한계급들의 능력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발달과 투자 시장의 확대 등을 통해 개인이 행동이 끌어낼 수 있는 부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개인의 투자와 회사를 운영하는 생산활동은 과시적 소비와 여가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워런 버핏은 투자를 통해 무한히 자본을 축적하는데, 이는 『유한계급론』의 설명과는 다르게 보인다. 일론 머스크나 다른 경영자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본축적이 경제 구조적 변화로 인한 새로운 과시적 행동이라면 설명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쓸 수 있는 돈 이상으로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하는가? 이는 과시적 소비와 여가의 일환이라는 설명 말고는 설명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둘째,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유한계급론”은 우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유한계급론”을 칼 포퍼의 점진적 사회공학의 측면으로 이해한다면 체제의 전복을 통한 사회 변화보다는 자연선택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베블런은 사회개혁에서 중산층의 역할을 강조했는데 지식 산업으로 변모해 가는 현대경제 체제에서 중산층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중산층이 커감에 따라, 사회경제구조의 변화에 저항하는 유한계급과 저소득층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사회는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지금 상황만 보더라도 “유한계급론”이 나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사회라고 묘사할 수 있지 않은가?



셋째, 고전 스포츠 대학은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고전 공부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고 심적 안정과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대학 교육은 예전과 다르게 STEM과 같이 생산적 분야에 치중하고 있고, 이는 개인의 자아실현뿐만 아니라 생산계급의 유한계급화로의 길을 열어준다. 스포츠는 베블런의 설명처럼 약탈적이고 폭력적이지만 이를 통해 사람들은 다시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경우도 있다. 베블런은 자신의 진화론적 관점을 스포츠, 대학, 고전 공부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간과한 듯하다. 과시적 소비와 여가에 치중하던 대학은 사람들의 선택이라는 변화에 발맞추어 생산적 계급을 위한 기관으로 발전했고, 고전은 현대 자본주의의 시장만능주의와 물질화에 제동을 걸었다. 자본 침식과 자본 추구를 통한 행복에 대안적 행복으로 자리 잡았다. 스포츠 또한 약탈적 폭력적 성향에서 벗어나 감동을 주고 선수들을 보호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발전해 나갔다. 폭력성을 배제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칙적 규제를 가한다. 이는 컨택트 스포츠뿐만 아니라 UFC 같은 격투 종목에도 적용된다. 스포츠에서 감정적인 요소를 이끌어 내기 위해 결과보다는 이들의 노력에 집중한 스토리라인을 발전시키는 경우도 많다. 르브론 제임스가 위대한 이유는 위대한 스포츠 선수이기도 하지만, 위대한 스포츠 선수가 되기 위해 극복했던 여러 가지 장애물 덕택인 경우도 있다. 따라서, 스포츠 또한 진화한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미국에서 쓰인 고전 경제학 책 중 헨리 조지의 책과 함께 유일하게 현대에도 두루 읽히는 책이다. 그 이유를, 책을 읽어보면 확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는 과시적 소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유한계급을 옹호하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은 매우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오래전에 쓰인 책이라 지금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구조주의적 분석과 진화경제학적 시각은 여전히 큰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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