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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경제사상의 지도”를 통해 우리는 경제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경제는 언제나 우리가 예상치 못한 것들을 결합하며 성장해 왔다. 겉으로는 상극처럼 보이는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의 시초가 되었고, 케인즈와 마르크스는 극적인 화해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자본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한때 인간을 숫자로만 환원하던 경제학은 이제 행동경제학을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과 감정을 포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의 운동이 언제나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소수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는 상대적 박탈감을 낳고, 자본주의의 본질적 모순인 빈부격차는 사라지지 않은 채 다른 얼굴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효율과 성장의 논리는 여전히 인간의 삶을 측정하려 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은 단순히 유물론과 관념론으로 나뉜다. 물질이 변화를 이끈다고 보는 유물론과, 의식이 변화를 이끈다고 보는 관념론은 서로 다른 출발점을 가지지만,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닿는다. 세상의 변화는 인간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사상의 지도”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어야 할 통찰이다. 경제는 결코 건드릴 수 없는 ‘물자체’가 아니며, 우리의 삶과 무관한 거대한 구조도 아니다. 경제는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체제, 그리고 우리가 함께 써 내려가는 담론의 언어다.


따라서 우리는 경제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미래에 가장 이로운가를 스스로 물을 책임이 있다. 그 앎의 출발점이 바로 “경제사상의 지도”가 되었으면 한다. 푸코는 “과거의 권력은 힘을 드러내려 했지만, 지금의 권력은 힘을 숨기려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모든 지배의 본질은 사상이자 앎이라고 덧붙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경제사상의 처음과 끝을 이해함으로써, 권력의 움직임을 인식하고, 그에 응답할 지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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