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유영
그랬구나 응응, 그래서 거기까지 혼자 걸어갔구나 괜찮아 계단을 내려가면 거기 버려진 농구 코트가 있고 더 내려가면 바다에 반쯤 잠긴 벤치, 거기 너를 기다리는 내가 앉아 있을 거야 떠올려 봐, 색깔이 바랜 벤치에 앉아 내가 너를 기다릴게 어젯밤에는 내 침대가 날아가는 꿈을 꾸었단다 문턱을 가뿐히 지나 아무도 없는 자정의 길을 떠가면서 핀 조명 하나가 낮게 켜져 있는 박공지붕 상점을 들여다보고 있었어 수수꽃다리 화단이 가지런한 길에서, 모든 것이 무사한 것처럼 보였던 밤, 꿈을 꾼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뻐서 깨고 싶지 않았던 밤, 잠들어 있는 작은 상점의 내일 아침은 어떨까 꿈꾸어 보았어 언니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지 모든 것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단다, 내겐 부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의 부리로 네 깃털을 가다듬고 윤을 내어 줄게,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싶어도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니까, 그 일들이 너를 미워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니까, 이제 너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 세상을 벌주려 하지 말아, 올겨울에는 연탄난로 곁에서 같이 얼린 홍시를 나눠 먹어야지.
박상수,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中
그래서 거기까지 혼자 걸어갔구나 괜찮아 계단을 내려가면, 내가 너를 기다릴께
이 시의 전문을 몇번 이나 읽고 밑줄을 다시 그었다. 작년 부터 꿈을 꾸고 있는 것 처럼 변화들이 너무 많았다. 그 누구도 혹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꾸준히 진행해오는 것들의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좋은 변화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가 되는 것들은 원동력이 되어 나의 꾸준하지 않은 꾸준함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서울에 완전하게 정착한지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 곳에 올때, 그냥가진 않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지금도, 아무리 돌아보아도 내가 완벽하게 잘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꾸준히 하려고 했을 뿐
기적처럼 올해를 시작할 때 작성한 목표가 한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루어졌을때는, 주변을 돌아 보았다.
근데,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이 글에 위로를 받은 것도 계속 계단을 내려가는 날 상상했다. 거기에 누군가 날 알아봐 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