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안전한 곳이 가장 불완전한 곳이다>
고래에게는 아가미가 없다. 고래는 어류가 아니라 포유류라서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다.
가장 안전한 삶의 터전에서 숨을 참고 있다. 그들에게도 물속은 잠수로 버텨야 하는 공간이다. 고래는 호흡을 하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실제로 수면이 얼어버린 곳에 갇혀 그 아래에서 익사한 사례도 있다.
물속에 생활이 있고 가족과 먹이, 삶의 터전이 모두 있지만 그 안에만 머물렀다가는 익사를 한다. 결국은 홀로 수면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한다.
고래의 잠수시간은 종마다 다르지만, 5분에서 60분 정도라고 한다. 생각보다 수면 밖에 자주 나와 호흡해야 한다.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고래의 생명은 물을 떠나 유지될 수 없지만, 역설적으로 물안에만 있다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수시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이 호흡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없고 같이 할 수도 없으며 스스로 힘으로 나와 등의 숨구멍으로 물을 뿜어내고 숨을 쉬어야 한다. (고래에겐 콧구멍 위치가 등의 숨구멍이며 사람의 콧구멍처럼 구멍이 2개다.)
우리 주변에서 질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자주 보인다. 생활을 유지하는 그곳에만 머물고 있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호흡을 잃을지도 모른다.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죽음과 이어져있다는 걸 우리는 잊고 있다. 해녀가 가족을 위해 전복 하나 더 캐기 위한 채취 활동이 죽음의 경계와 맞닿아 있는 것처럼.
의식적인 자가호흡이 필요한데 잠깐 건너뛰는 걸로 죽을 거 같지 않아서 그 안에만 빠져있기도 한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어딘가 정신이 아프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 많다. 심지어 자기 정신이 아픈데 세상이 나쁘고 타인이 괴롭힌다는 치명적인 오해에 빠진다.
예전에는 이렇게 타인을 질투하고 괴롭히는 행동을 보면 분노로 대응했다. 지금은 연민을 가지고 보게 된다.
그들은 마음이 아픈 것이다. 숨이 붙어있으니 죽었다 생각지 못하고 있지만 이미 질식하여 옹졸하고 못난 모습이 표출되고 있다. 원래 그들도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잠시 이상 호흡으로 인해 정신착란 증세가 나타나고 있는 거겠지. 훨씬 더 여유 있게 자신의 호흡을 되찾게 되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각자 나름의 개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여유롭고 행복한 순간에 만난 모든 사람은 저마다 아이덴티티가 다채롭고 멋지기만 하다. 이런 감정은 이미 어린 시절 이후 잊게 되어 지금은 사람들이 좋기보단 피곤하기만 하다. 호흡을 잃은 사람들과 생활하는 세상은 피로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인간을 존재자체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다들 자기 호흡을 되찾아야 한다. 스스로 건강한 자신이 되지 않고서는 타인을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받기도 어렵다.
고도의 경쟁주의 세상에서는 숨을 참아가며 미치기가 딱 좋다. 자가 호흡의 타이밍을 자꾸 미루고 있다.
그들은 숨이 많이 차있다. 홀로 숨을 쉴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다.
성실하게 인생의 숙제를 해나가다 보니 물밖에 잠시 나갈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고 본인도 모르게 주변을 아프게 한다.
근래에 회사에서 숨차고 아픈 고래에게 상처를 받았다.
순간 화가 났지만 마음을 추스르며 집에 돌아와 돌이켜봤다.
그들은 숨이 차서 헐떡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초조하고 시야가 좁아져 자기도 모를 말을 내뱉었을 거라고. 아무도 그들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는데 그들은 모든 것을 날카롭게 느끼며 상처라 생각했을 거라며.
그렇게 먼저 공격하는 것으로 스스로 보호하려고 했던 생존의 발버둥이라고...
나는 속상한 마음을 털어버렸다. 그들의 원활한 자가호흡을 응원하게 된다.
물밖에 나가 숨 한번 쉬고 오라고. 나도 호흡이 딸릴 땐 세상을 미워했지만, 지금은 수시로 자가호흡을 잘하고 있으니 사는 게 때때로 재밌고 평온하기까지 해졌다고. 당신도 이제 숨 쉴 때가 됐다고.
하지만 완전히 자기 호흡을 잃고 그곳을 아예 떠나는 것으로 벗어나는 사람도 가끔 있다. 영영 사회를, 가정을, 삶의 터전을 떠나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 해결되는 것인가?
다시 고래 이야기로 돌아와 고래가 물에서 질식할 수 있으니 포유류답게 육지로 나오면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래는 육지에만 머물게 되면 신체 무게가 폐를 짓눌러 질식사를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고래는 수중에서 생활하며 수시로 수면 밖 호흡을 동반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불완전한 진화 속에서 우리는 밸런스를 찾아야 한다.
물속에서 다 같이 살면서도, 한 번씩 혼자 수면밖으로 나와 호흡을 찾아야 한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타인의 행동에 화가 날 때는 세상이 아니라 자신이 공격적인 상태인 거다. 내가 호흡이 딸릴 때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아무도 당신에게 상처를 주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 그러기엔 각자 살기 바쁘다.
당신은 외부로부터 상처를 입은 것이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진짜는 내 호흡이 모자란 것일 뿐. 그래서 마음에 여유 공간이 없었을 거다.
섣부른 말과 행동 대신 혼자 호흡을 해보면 어떨까?
수면 밖에 나가는 호흡은, 혼자 조용히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제때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상처를 입을 때마다 사람이 싫어졌다.
요즘은 그저 아픈 고래다~ 숨이 차 있는 고래다~라고 생각하면 안쓰럽고 가여운 마음이 먼저 든다. 아픈 고래야~숨 좀 쉬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