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정신승리?>
살아가면서 우리는 좋은 감정보다 안 좋은 감정에 휩싸일 때가 더 많다.
이 감정의 비율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기쁠 때보다 불편한 느낌을 슬기롭게 관리 것이 삶의 만족도에 중요한 부분이란 걸 깨닫게 된다.
사실 기쁘거나 행복한 감정은 찰나다. 게다가 기쁨과 행복한 감정은 특별히 관리할 필요는 없다. 그저 겸손하게 즐기면 될 뿐.
행복과 기쁨의 순간적인 감정을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의 인생은 그저 그렇거나, 무료하거나, 외롭거나, 짜증 나거나, 서운하거나, 부끄럽거나, 우울하거나, 한심하거나 같은 그냥 그런 감정의 시간들이 길게 이어진다.
이런 기쁘지 않은 대부분 삶을 잘 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 행복을 찾아 나서는 시간보다 많이 투자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인생의 전반이 평균이상으로 안정적인 느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전혀 없고 무조건 낙천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삶의 긍정성보다는 부정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두게 된다.
이건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이다.
낙천적인 유전자를 가진 조상 대부분은 이미 호전적으로 도전하다가 빠르게(죽어. 이미 사바나시절 대부분 멸종.) 사라져 그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겁이 많고 의심을 먼저 하며 매사 조심하면서 부정적인 면을 먼저 고려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사람마다 살아온 후천적 환경에 따라 그 강도는 다르지만 부정성에 먼저 반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거다.
나 역시 사피엔스답게 매사 부정적인 것을 먼저 인지하고, 미리 상상으로 걱정하는 성향이다.
늘 이런 불편한 감정을 관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위험을 감지하는 예민성으로 현재를 불안하게 사는 것에 지쳤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은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해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감정 동요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부정적 감정이 꼭 부정적 상황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늘 신경이 경계태세라 감정상태가 늘 피곤하다.
그러나 어제 아침 어머니와 통화하며 이 예민함을 재해석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됐다. 내가 예민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없었을까?
나는 어릴 때도 예민이 지나쳐서 육아하기 참 어려운 딸이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둔한 것보다 나았다고 했다. 다른 애들이 모르는 감정을 캐치해서 냉철하게 했던 말들을 통해, 어머니는 마치 딸이 아니라 어른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어린아이에게도 여러 통찰을 얻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많은 것들을 겨우 초등학생이던 나와 의논했다.
이 예민함은 감수성 발달에도 도움이 되어 미술을 전공하고 글을 즐겨 쓸 수 있었다. 둔하기만 한 감각은 오히려 이런 예술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별것 아닌 것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생활은 스스로를 힘들게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직업적으로나 취향적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둔한 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런 아이였다면 또 순둥순동하고 키우기 편한 딸이었을 거다. 스트레스 지수가 낮고 여러 사람들과 둥글게 지내는 친화력 있는 사람이 되었을 거다. 어떤 면이든 괜찮은 점이 있다.
그렇게 통화 말미에 어머니께선 "예민한 게 나쁘다고 생각할 거 없어. 그냥 그게 너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였다.
나는 예민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점이 나를 괴롭힌다가 아니라, 그냥 그렇구나 받아들이는 색다른 해석을 통해 마음이 편해졌다. 예민한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관점을 바꾸게 됐다. 예민함은 그저 예민한 성향일 뿐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있다. 둔함도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도 있는 것처럼.
항상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치환할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냥 예민하니까 이런 감정이 들고, 이런 부분에서는 능력이 발휘되었구나라는 상황의 양면성을 이해하고 감정상태 그대로 바라보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 바라봄이 필요한 이유는 부정적인 감정이 사실 생각만큼 빠르게 다른 감정으로 대체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지금 또 예민하구나.' 인정해 버리는 편이 빠르고 쉽게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특정 감정을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다. 수치심은 나쁘다, 외로운 건 별로다는 식으로.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를 우울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이때 이것을 없애기 위해 대응하기보다는 늘 자기식으로 해석해 보는 연습이 도움이 된다.
'음. 나는 지금 외롭구나.' 외로움을 만끽하며 그저 그날의 생활을 평범하게 살아가면 된다. 외로운 느낌이 든다고 부정적인 감정으로 반응해 자기 연민에 빠지면 더 외롭고 불행해질 뿐이다. 외로우니까 감성적인 음악을 들으며 그 감정에 푹 빠져본다든가, 외로우니까 활기차게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러 나간다든가 하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그 감정을 느끼며 생활하면 그만이다. 여기에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이입할 필요 없다.
그냥 이런 감정 상태구나 느끼면서 다음 할 일을 생각하거나, 감수성에 푹 빠져 즐겨봐도 좋다.
외로운 건 무조건 나쁜 감정이니 없애보겠다고 생각하면 실수를 하게 되고 후회할 일을 만들 수도 있다. 그냥 오늘 내가 좀 그렇구나 생각하며 늘 하던 대로의 일상을 유지하면 된다.
일종의 정신승리 같은 건데 남에게 굳이 말하지 않으면 꽤 괜찮은 정서 관리 방법이다.
남들에게 말하는 순간 자기 객관화가 안되고 현실도피하는 한심한 인간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에 맞서 싸우거나 불안을 제거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문제들은 몸으로 부딪혀 해결해야 할 때도 있지만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살아가는 방법도 있다.
어쨌든 남에게 털어놓거나 의지할 필요는 없다. 혼자 조용히 불편한 느낌 속에 슬기로운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어차피 내 마음속의 전쟁은 스스로 진화해야 한다. 내 마음속이 평온해지면 그걸로 충분하다.
감정을 없애기보다 스스로 재해석하면서 정신승리를 해보는 것이다.
P.S.
노랑은 질투의 색이라거나 노랑은 희망의 색이다라고 규정짓고 좋고 나쁨을 나눌 필요도 없다.
지금 내 마음이 노란 상태구나. 마음이 노랑일 수도 있고 파랑일 수도 있고... 오늘은 노랑으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된다.
----
옛날 드라마 '순풍 산부인과'에 보면 남자간호사(표인봉)가 병원장에게 매번 혼나고 깨지는데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많은 간호사들이 원장님께 모욕적인 질책을 당해도 어떻게 그렇게 여유 있는지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알려준다. "혼날 때 눈을 흐리멍덩하게 뜨고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사이사이 고개를 끄덕이면 돼." 혼나는 시간을 그저 상사와 만나 공감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남들에게 말하면 웬 사회성 결여된 미친놈인가 싶지만, 스스로는 정말 현명하게 괴로운 상황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은 누구나 만날 수 있으니 스스로 그 상황을 재해석하여 달리 받아들이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