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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Sep 06. 2020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곳저곳

Buenos Aires, Argentina

외국에서 새해를 맞이할 줄 알았을까


아침 일찍 일어난다. 무려 새벽 4시. 시차 적응을 위한 길은 마냥 쉽지 않은 듯하다. 유럽도 힘들 텐데, 심지어 지구 반대편으로 왔으니, 시차 적응이 바로 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거겠지.


오늘은 12월 31일. 이곳도 1월 1일은 공휴일인데, 듣자 하니 모든 가게가 문을 일제히 닫는다고 한다. 물건을 살 수도,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없다는 말이다. 심지어 오늘도 문을 일찍 닫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고 해서, 내일까지 먹을 식량을 사러 또다시 마트로 향한다.


에어비앤비 밖의 길거리 풍경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 날씨는 그리 덥지도 않고 선선하다. 내가 딱 좋아하는 날씨다.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와 함께 식사하기 좋은 그런 날씨다. 


우버를 타고 오벨리스크로 향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우버는 불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다들 우버를 이용한다고 한다. 오벨리스크로 간 이유는 환전을 하기 위해서인데, 그곳에 깜비오(Cambio)라고 불리는 환전상들이 많다는 소식을 들어서이다. 공식 환전소에서 환전을 하는 것보다 불법 환전상에게 환전을 하는 것이 환전율이 훨씬 높아서 그들이 즐비하다는 오벨리스크 주변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우버도, 깜비오도 불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행하는 이곳의 문화, 그리고 그걸 알면서도 그들과 협력하는 여행자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정말이지 광장스럽다. 날씨는 갈수록 더 좋아진다. 오벨리스크를 지나 조금만 더 걷다 보니, 아니나 다를까 거리 곳곳에서 "깜비오~"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불법 환전이기에, 위조 화폐가 섞여 있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위조지폐 검사하는 방법에 대해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다.


수많은 깜비오 중 아무나 잡고서 환전을 한다. 컨테이너 박스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한 깜비오를 나와 동행은 사기라도 치진 않을지 철저히 감시한다. 결국 수많은 아르헨티나 페소를 하나하나 다 검사해본 다음 컨테이너를 빠져나온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그래도 나라의 수도답게 도시의 형태를 띠고 있다. 건축 양식이 되게 독특한데, 천편일률적이라고 느껴진 우리나라의 고층 건물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그리고 모든 건물에 야외 테라스가 무조건 있다. 없는 건물을 본적이 거의 없다. 이 나라의 문화이자 특징인 것일까. 


노숙인들도 많은데, 대놓고 길거리에 매트리스를 깔아 놓고 누워있다. 아이를 이용해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사람도 보인다.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지만, 안쓰러운 마음 또한 감출 수 없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길거리의 노숙인




남미 여행자 카카오톡 단톡 방에서 레꼴레타 공동묘지 무료 투어를 해준다는 어느 한인 가이드분의 소식을 듣고 우리는 투어를 신청한다. 딱히 가보고 싶던 곳은 아니지만,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관광지임은 분명했다. 


나와 동행 그리고 다른 한국인 여행자분들을 포함해 총 6명이 모인다. 셰비라는 이름의 가이드 분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거주하는 한인분인데 환전도 좋은 가격에 해주시고 투어도 무료로 진행해주신다고 한다. 물론, 암묵적으로 투어 팁은 주는 것이 예의이긴 하지만 말이다. 


레꼴레타 공동묘지의 모습

이곳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둘러보러 왔다면 분명 아무 감흥도 얻지 못한 채 돌아갔을 것이 뻔했다. 그래도 한인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이 넓은 공동묘지에서 길을 잃지도 않았고, 그냥 지나칠 뻔한 많은 것들이 눈에 더 들어오긴 한다. 묏자리가 한화로 6억에 달하고, 연간 유지비만 1억이 넘는다고 하니,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전부 대대손손 엄청난 부를 누리는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묻힌 곳이기도 했다. 관을 땅에 묻는 우리나라의 공동묘지와 다르게, 이곳은 관이 밖에서도 보이게 해 놓았다. 이런 공동묘지가 도심 중앙에, 거주지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을 벗어나 인근 엘 아테네오 서점으로 향한다.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거대한 서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타이틀로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겉에서 보면 이곳이 관광지인지 알기 힘들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로 북적인다. 화려한 조명이 사방에서 내리쬐는 이곳에서, 포토스팟으로 가서 사진만 남기고 나온다. 어차피 책들을 구경해봤자, 스페인어나 영어로 적힌 책들 뿐일 것이 뻔하니까.


엘 아테네오 서점

내일 먹을 식사에 라면을 추가하기 위해, 기어코 한인 타운까지 가기 위해 우버를 다시금 부른다. 굳이 라면을? 싶지만, 동행이 먹고 싶다고 하니 갑자기 나도 먹고 싶어 지는 기분.


우버를 타고 가는 도중, 차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자꾸 들린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가고 있는데, 우버 기사가 잠깐 내려보라고 한다. 무슨 상황이지? -라는 생각을 하며 내리는데 차바퀴가 빠지려고 한다. 세상에......

우버 기사는 사과를 하며 다른 우버를 부르라고 말한 뒤, 본인은 어디론가 다시 전화를 건다. 조금만 더 갔으면 진짜 위험한 상황이 될 뻔했다. 도대체 이런 차를 어찌 타고 다니시는지 대단할 따름이다.


다음 우버를 타고 가는데, 차에서 힙합 노래가 나오는 것부터 심상치가 않다. 흥이 많아 보이는 우버 기사는 외국인인 우리에게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러더니 한인 타운에 가자고 하니, 우리에게 진지한 말투로 뭐라고 말을 하신다. 번역기를 써가며 들은 말은 "steal and kill". 아무튼 엄청 위험한 동네라고 하신다. 현지인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겁이 없던 나도 괜스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실제로 한인타운에 도착하니, 주변이 황량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잘 없고 건물도 쓰러지기 직전의 풍경이다. 가방을 꼭 껴안고 휴대폰을 속옷 안에 집어넣는다. 우버 기사는 마트 바로 앞에 차를 세워준다. 우리는 후다닥 가서 후다닥 라면과 쌀을 사고는 후다닥 다시 우버를 탄다. 순간이지만, 여행 중에 신변에 위협이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몇 안 되는 순간이었다.  한인마트 주인인 한국 분도 낮에 대놓고 휴대폰을 꺼내는 행위는 삼가라고 말씀하실 정도니까. 우버 기사가 고맙게도 우리를 기다려주고 다시 시내까지 태워주셔서 망정이지, 그곳에서 다시 우버를 부르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새해가 되면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미국에서는 타임스퀘어에서 폭죽을 터트리곤 한다. 이곳에는 어떤 문화가 있는지 비행기에서 만난 한인분에게 물어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고작,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폭죽을 각자 터뜨리는 정도라고 하신다. 결국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와인을 따라놓고 새해가 되는 순간, 곳곳에 울리는 폭죽 소리를 들이며, 건배를 하면서 한 해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마무리 짓는다. 



1월 1일은 이미 아무 곳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진짜 우리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온종일 잠이나 자고, 일어나서 라면이나 김치볶음밥 따위를 먹고 과일도 깎아 먹는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한다.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시간이 아깝다-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앞으로 바쁘게 이어질 여정을 생각하니 이런 휴식도 필요할 것만 같다. 



다음 날 아침은 비가 억수같이 내리더니, 금세 그치고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해가 쨍쨍하게 내리비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의 마지막 날, 근처로 산책이나 나갈 요량으로 숙소를 나선다. 스타벅스도 들렸다가, 작은 상점에서 아르헨티나 유니폼도 산다. 메시밖에 팔지 않아 고민할 거리가 사라져서 어쩌면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숙소로 돌아와서 짐을 싸서는 이과수로 가기 위해 또다시 우버를 탄다. 

남미의 첫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멋진 날씨와 함께 설레는 마음으로 본격적인 여정을 출발한다. 


    

이과수로 향하는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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