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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Sep 10. 2020

실로 어마어마하다는 말 밖에

푸에르토 이과수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난다. 

군대도 아니고, 저절로 눈이 떠진다. 눕자마자 잠에 들어서 그런가-라고 생각한다.


간밤에 동행의 침대에서 배드 버그가 나와서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동행은 새벽까지 약을 뿌리고, 침대를 옮기고 스탭을 불러 조치를 취하느라 밤새 애를 먹었다. 배드 버그는 여행자와 호스텔의 최대 적이기 마련이다. 


푸에르토 이과수의 길거리

이과수로 가는 길도 꽤 먼 거리이지만, 동행이 있었기에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이과수에는 들어가는 티켓을 끊는 줄부터 길게 늘어서 있다.


너무 덥고, 아주 습하다.


푸에르토 이과수 티켓 줄

티켓을 끊고 입장하니, 여름이라 무성한 풀과 나무들 그리고 간혹 보이는 야생동물들 덕분에 국립공원 느낌이 물씬 난다. 푸에르토 이과수는 너무 넓어서 기차로 이동을 하는 시스템인데, 기차를 기다리는 줄 또한 어마어마하게 길다. 기차를 줄을 마냥 선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미리 기차를 몇 시에 탈 것인지 예약표를 끊어놓아야 한다. 그만큼 사람들로 북적인다. 흔한 말로, '미어터진다'라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기차표를 끊어놓고, 다른 코스를 돌아보기로 한다. 이과수 국립공원은 엄청 넓어서 코스도 다양하고, 코스 하나가 한 시간은 족히 걸리곤 한다.


푸에르토 이과수 국립공원 지도

한 시간이나 남은 기차 시간 동안 Lower 코스를 돌아보기로 한다. 이과수에는 크게 Lower코스와 Upper 코스가 있는데, 이과수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느냐, 위에서 내려다보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Upper 코스는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급하게 Lower 코스라도 둘러보기로 한다. 시간이 많지 않아 코스를 다 돌아보지는 못하고, 전망대에서 멀리 '악마의 목구멍'과 그 옆의 작은 폭포들만 맛보기로 보고 나온다. 결국 이곳의 목표는 악마의 목구멍이니까.


결국 수많은 사람 사이를 뚫고 겨우 기차에 탑승한다.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천천히 이동하는 기차. 조금만 더 길게 만들면, 사람들을 더 많이 태우고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한다. 열차를 타고 가는 와중에 그 길을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들도 간혹 보인다.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다. 도대체 몇 시부터 준비를 한 것이며, 이 무덥고 습한 날씨에 여길 걸어간다는 자체로도 존경스럽다. 저 사람들은 지나가는 열차를 수없이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막상 악마의 목구명 역에 내렸지만, 여기서도 또 더 걸어야 한다는 암울한 현실을 맞이한다. 낙동강 하류처럼 황토 빛의 거대한 강 위의 철제 외길 다리를 오랫동안 걷는다. 처음에는 조금만 가면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크나큰 오산이다. 이제 나오겠지?-라는 생각만 수차례, 결국 거대한 폭포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오더니 마침내 말로만 듣던 악마의 목구멍에 도착한다. 


이과수 그리고 악마의 목구멍. 이름만 들어도 먼가 굉장해 보이는 이름에 언젠간 가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던 그곳.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폭포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던 바로 그곳.


악마의 목구멍


악마의 목구멍 전망대가 다가오자 거대한 폭포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빗발친다. 한국 이외의 폭포는 처음 보는 것이기도 한데, 그게 이과수가 될 줄이야. 전망대에서 멍하니 악마의 목구멍을 바라본다. 진짜 어마어마하다는 생각만 든다. 1초에 1,000톤가량의 물이 쏟아진다는 악마의 목구멍을 바라보고 있자니, 실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 짐작이 간다. 전 세계에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하늘은 맑고, 햇빛은 강렬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비집고 맞대어 난간에 기대서 폭포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는다. 멀리 떨어져 있는 폭포임에도 불구하고, 폭포로 인한 물이 여기저기 튀어 온 몸을 적신다. 이곳에서 사진을 잘 찍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사람이 너무 많기도 하고, 물이 튀기기도 하고, 심지어 각도도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이곳에서, 자기 홀로 명당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던 수많은 한국인 여행객들은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국인의 마음 같아서는, 전망대 명당에서 줄을 서서 인증샷을 남기는 방식이 이럴 땐 마음에 들기도 한다.


이과수 전경을 눈에 담고 싶지만, 그건 내일 브라질 쪽 포스 두 이과수에서 보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랜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샌들을 신고 오래 걸어서 그런가 피로가 몰려오기도 한다. 이과수에 며칠을 투자할지 고민을 했지만,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쪽에 각각 하루를 잡은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 만에 두 나라 모두 가 볼 생각을 미련하게 했었다. 진짜 그랬다면, 둘 다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시간에 쫓겼을 것이 틀림없다.


흔히들 많이 하는 보트 투어를 할지 말지 고민이 많았다. 다들 한다기에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막상 큰돈을 주고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동행들도 다들 안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그래서 안 하고 그대로 숙소로 돌아온다. 만약 보트 투어까지 했다면, 체력이 남아있었을지 의문이긴 하다. 안 해보고 좋다 안 좋다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이과수에 돌아와서 혼자 길거리를 걷는다. 

어느 호스텔을 관리하는 남매로 보이는 친구들이 뭔가를 맛있게 먹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는 항상 이상하게 생긴 컵에, 철로 된 전용 빨대를 꽂아서 먹곤 했다. 그게 뭐냐 물어보니, Yerba Mate라고 한다. 마테차의 일종인데, 남미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고 한다. 여름이면, 마테 잎에 주스를 섞어 먹고, 겨울이면 뜨거운 물을 부어서 차로 마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찻잎을 우려서 물만 먹곤 하기 때문에 티백이 상용화되지만, 이곳에서는 찻잎을 걸러 먹기 위해 전용 빨대를 사용하는 듯하다.


남미에서 자주 먹던, 예르바 마테


예르바 마테를 한 입 먹어보라는 마르틴과 엘리사의 권유에 한 모금 들이마신다. 오렌지 주스를 탄 듯한데, 마테 향이 한껏 나는 것이 맛이 아주 좋다. 생전 처음 맛보는 색다른 맛에 감탄하며, 어디서 살 수 있냐고 물어보니, 어느 마트에서든지 다 판다고 한다. 당장 근처 마트로 달려간다.


다양한 종류, 다양한 가격으로 판매되는 예르바 마테


예르바 마테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그들에게 보여주니,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서로 웃기 바쁘다. 지구 반대편의 동양인이 그들의 문화를 신기해하고 흥미를 보이는 것이 재밌던 것일까. 친화력 있는 남매 덕분에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신선한 계기가 된다. 

(한 달 동안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한국에 와서 실제로 오렌지 주스와 먹어보니 그때 그 맛이 나지 않았다는 것은 함정...... 심지어 철로 된 빨대도 싼걸 사서 그런가 금세 녹이 슬어버렸다.)


내일은 국경을 넘어 브라질 쪽 이과수를 보러 간다. 아르헨티나가 나무를 본다면, 브라질에서는 숲을 볼 수 있다는 어느 여행자의 말에 약간의 기대를 품으며, 오늘도 에어컨을 과하게 튼 채, 모기약을 듬뿍 뿌리고 잠에 든다.




    이과수에는 정말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는데, 악어를 본 건 아주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사진 첨부해봅니다.

이과수에서 본 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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