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볼리비아
독방을 쓰던 숙소에 새로운 여행자가 들어온다.
유치원 선생님이라는 M 누나는 여행 고인물이었다. 한국에서 일을 하지 않고, 애초에 외국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세계 방방 곳곳을 이미 다 돌아다닌 전문 여행가였던 것이다.
선셋+스타라이트 투어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다.
나와 A가 신청한 프라이빗 투어에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여행에서 만난 세 번째 선생님이다)이 연락이 닿아 투어 인원은 4명이었고, 최대 인원이 5명이었기에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마침 M 누나가 혼자 여행을 왔기에, 내가 먼저 같이 투어를 하지 않겠냐고 권유했고, 흔쾌히 그녀는 수락했다. 결국 5명의 투어 인원이 맞춰졌다.
대충 레오빵으로 아침을 먹고 밀린 잠을 자다가 손빨래도 하다가 2시가 조금 넘어서 근처 시장으로 향한다.
장날인 건지, 시장이 엄청 크게 열렸다. 휴대폰이랑 TV도 시장에서 대놓고 팔고 있다. 판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들고 온 것인지가 더 놀랍다.
이상한 음료수들도 팔고, 처음에 무슨 내장같이 생긴 걸 팔길래 놀랐는데 알고 보니 체리 주스라고 한다.
도대체 믿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침에 빵 한 조각으로 버티니 배가 고파 A와 둘이서 라마 고기 덮밥 하나를 나눠 먹는다. 허기를 채우기엔 충분한 느낌이다. 이곳은 노천 식당이 굉장히 많은데, 위생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냥 굶는 게 차라리 낫다. 이보다 더 안 좋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위생은 최악이며, 우리나라였다면 전부 위생법 위반으로 잡혀 들어갔을 정도다. 이런 걸 먹고살면 몸이 상하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 된다.
남미 여행을 하다 보면, 하나하나 내려놓고 포기하게 된다.
충격적인 시장 구경을 마치고 우유니 동네 한 바퀴를 돈다.
워낙 모든 시설이 낙후되고, 즐길 거리라곤 하나 없는 동네인 것은 확실하다.
우유니 놀이터에 가본다. 어떤 곳인지 궁금했는데, 실로 보니 이 또한 충격일 수 없다.
놀이터라고 하기엔 너무 위험해 보인다. 아이들이 이런 곳에서 논다고?-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미끄럼틀이라도 타보려고 올라간다. 매우 높고 아찔하다.
이런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타고 논다는 게 대단할 따름이다.
미끄럼틀 손잡이도 잡지 않고 내려오는데, 비도 조금 내리고 속도가 붙어서 미끄럼틀에 내려오면서 한 바퀴 구른다. 손도 까지고 바지도 배린다.
시간이 되어 오아시스 투어사로 이동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어서 은근 걱정이 되는 가운데, 다른 투어 차량을 타러 떠나는 T 형님을 만난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서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을 기다리는데,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N 누나를 만난다.
"너 지금 가는 거야?" N 누나가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네네 선셋 스타 지금 가려고요"
"너 지금 간다고? 가지 마. 지금 취소 가능해."
"왜요?"
"지금 비 엄청 내려서 우리도 일찍 철수하고 돌아온 거야. 다른 한국인 스냅 투어도 미리 날씨 알아보고 취소하고 난리도 아니더라"
"아..... 그래요? 근데 저 아마 이게 마지막 투어 될 것 같아서요. 못 보면 못 보는 대로 그냥 돌아오죠 뭐"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며 말해주는 N 누나였지만, 어차피 나는 내일 떠나기로 했고, 스타라이트를 할 수 있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었기에 그냥 떠나기로 한다. 비가 오는 우유니는 어떤 모습일지 그거도 나름 볼 만 하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결국 우리는 투어를 가기로 하고, 곧이어 아리엘이 나타난다.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에 머리를 왁스로 한껏 올린 그는 잘생기기까지 해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아리엘 옆자리에 타서 친해져 보려고 이것저것 물어본다. 둘 다 어설픈 영어로 대화를 하니 오히려 대화가 잘 통하는 느낌이다.
"안녕 아리엘, 머리가 멋있어. 스프레이 뿌린 거야 아니면 왁스 바른 거야?"
"스프레이 뿌렸어"
"근데 몇 살이야?"
"나 22살"
"22살? 몇 년생이지? 97년생인가?"
"맞아 97년생"
"오 나랑 동갑이다. 친구네 반가워~ 넌 여기서 일하는 거야?"
"음...... 방학 때만 잠깐 일해. 방학 때 일하고 학교 다니고 있어"
"요즘 같은 시기는 바쁘지 않아?"
"응, 여름은 매우 바빠. 하루에 투어 3~4개를 주말도 없이 맨날 뛰어. 2~3시간씩 쪽잠 자고 일하러 나가곤 하지"
"완전 바쁘구나. 혹시 얼마 벌어?"
"한 달에 천 달러 정도? 미국 돈으로"
천 달러라길래 많이 버는구나 싶었는데, 한 달에 백만 원 조금 넘는 금액. 주말도 없이 잠도 못 자고 일하는 것 치고 너무 적게 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유니 사막에 진입하니 입구부터 비가 무지하게 내린다.
어제의 우유니는 입구부터 너무 아름다웠는데, 그에 비해 비가 내리니 날씨도 흐리고 바다인지 소금 사막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비가 오는 우유니 사막을 차로 이동하다 보면 마치 바다 위를 달리는 자동차에 타고 있는 느낌이다. 괜히 N 누나가 걱정하던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리엘 표정도 좋지 못하다.
"비가 엄청 오네" 내가 말하니
"그러게, 오늘 날씨가 좋지 못해. 별을 보지 못할 수도 있겠어"라고 아리엘이 답한다.
아무렴 어떤가 여기는 우유니 인 것을
한참을 가다 보니 비가 그치고 물결이 잠잠해진다. 우유니 날씨는 정말 아무도 모르는가 보다.
날씨가 괜찮아지고 나니 어제와는 조금 다른, 여전히 굉장한 광경이 나를 반기고 있다. 다시 보는 장면이지만, 언제 봐도 장관은 장관이다.
남미에 와서 "장관이다", "어마어마하다" 이런 생각을 마음속으로 몇 번을 한 지 모르겠다.
"너는 우유니를 매일 봐서 질리지 않아?"라는 나의 물음에
"아니야. 우유니는 매일 다른 모습이고 언제 보아도 멋져"라고 아리엘이 답한다.
아리엘은 그의 명성답게 사진 기술이 아주 좋다.
대충 찍어도 잘 나오는 "우유니 스튜디오"에서 멋진 작가까지 있으니 금상첨화다.
어제 한 번 찍은 자세로 똑같이 찍어서 질릴 법도 한데, 여전히 즐겁다.
아무렇게나 찍으면 프로필 사진이 되는 곳
해가 지고 있는데도, 먹구름이 잔뜩이다.
다들 추워지는 날씨에 차로 들어와서 하늘에 별이 혹시라도 뜨진 않을까 기대하며 잡담을 나눈다.
아리엘이 하늘을 보더니
"저기 별이 하나 떠있어"
우리에게 별을 그래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일까.
모두가 오늘은 별을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던 중
무슨 일인지, 구름이 서서히 걷히더니 하늘이 전부 갰다. 세상에 이런 운이 따로 없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한다. 우유니의 날씨는 아무도 모른다고.
갑자기 하늘에 별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떠있다.
은하수를 내 두 눈으로 선명하게 보기는 처음이다.
이게 은하수구나......
한국에서는 별이 많이 보인다 해도 작고 희미한 별들이 많이 보였다.
남반구라서 그런지, 색다른 별자리도 보인다. 정말 촘촘하게 많이도 박혀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어플로 별을 보면서 별자리를 말해준다.
선생님이셔서 그런지 알지 못한 별자리들도 많이 알고 있는 듯하다.
단언컨대 이렇게 많은 별들은 내 인생 동안 처음 보는 것이라 장담한다.
산도 아니라서, 사방이 모두 뚫려있는 곳이니 고개를 어떻게 돌려도 온 천지가 별이다.
갑자기, 이런 많은 별들을 볼 수 있게 해 준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첨벙첨벙' 장화 신은 발로 소금 사막을 걸으며 한껏 별을 즐긴다. 너무 행복하다.
'쏟아질 것 같다'라는 말의 표현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별들을 질리도록 구경할 때 즈음, 아리엘이 사진을 찍자고 한다.
SNS에서 많이 봐오던 사진이었지만, 그 과정을 직접 보고 그 주인공이 내가 된다는 느낌은 다르다.
오늘 별을 보지 못하면, 내일 새벽에 나올 수도 없고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천만다행이긴 하다.
M 누나가 본인 스스로 '날씨 요정'이라고 했는데, 처음에 비가 올 때만 해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M 누나에게
"날씨 요정과 함께 와서 너무 다행이네요"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아리엘도 요즘 별이 잘 안 보여서, 이렇게 제대로 별이 잘 보인 적이 4일 만이라고 한다.
사진 찍는 것에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10시가 넘어가고 있다.
교사 누나들이 이니셜 사진도 하고 싶다고 한다.
모든 차가 다 떠나가고 우리만 남겨진 상황, 피곤할 법한 아리엘은 마지막으로 이니셜 사진도 멋지게 찍어준다.
그런 아리엘의 열정과 사진 실력에 감탄한 우리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팁을 주자는 얘기가 나온다.
그렇게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10 볼씩 아리엘에게 건넨다. 그리고 거절 없이 받는 아리엘.
팁을 받아도 될 실력이긴 하다.
아리엘이 버는 금액을 생각하면 더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너무 많이 줘버리면 우유니 투어 문화를 망친다는 얘기도 들어서 적당한 금액만을 줄 수밖에 없었다.
결국 10시가 넘어서 우유니에 도착한다.
남들은 날씨를 기다린다고 투어를 여러 번 하는데, 나는 겨우 2번 만에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다. (근데 무엇에 감사해야 하지?)
도착하니,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한 탓에 배가 고파온다.
10시가 넘었으니 당연히 가게도 다 문을 닫았다.
그런데 길거리 포장마차는 열려있기에 가보니 작은 햄버거를 판다.
배가 고픈데 뭔들 맛이 없을까, 심지어 가격도 너무 저렴하다.
햄버거랑 맥주 하나를 사들고 호스텔 부엌에서 먹는다.
늦은 시간에 레오가 홀로 누워서 영화를 보고 있다.
그런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건배를 하자고 하는 레오.
그렇게 우유니에서의 모든 투어도 마무리 짓는다.
나중에 겨우 2번 밖에 하지 못한 게 아쉽진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지만, 만족하면 된 것 아닐까.
황홀했던 우유니에서의 순간들도 끝이 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소원 성취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