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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Dec 25. 2020

이렇게 높은 곳에서도 살아가는구나

라파즈, 볼리비아

또다시 야간 버스다.

우유니에서 라파즈로 가는 버스는 남미에서 타본 버스 중 아직까지 최고다.

2층 버스인데, 160도까지 뒤로 넘어가고, 담요도 주고 충전기 연결 포트도 있다. 화장실은 기본이다.

우유니의 싸구려 호스텔보다 더 편안하다.


이른 아침 라파즈에 내린다. 동이 틀 무렵의 라파즈에서 찬 기운이 몸을 감싼다.

오는 내내 잠을 너무 편하게 잤더니 개운한 느낌마저 든다.

라파즈의 첫인상은 "더럽다."


라파즈에서는 한인 민박에 자기로 한다.

여행 도중, 편안히 쉬기 위해 숙소 중 한인 민박을 집어넣었고

라파즈의 데보라 민박은 남미에서 두 번째 한인 민박이다.


택시에서 바라본 라파즈의 도로


터미널에서 A와 함께 택시를 잡아 열심히 흥정을 한다.

민박집 사장님이 카톡으로 알려주신 가격이 있어서 열심히 흥정을 해보지만 아직 흥정의 기술이 부족한가 보다.

높은 수준의 흥정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곳은 미터기가 없고 부르는 것이 값이기에 어쩔 수 없다.

결국 30 볼에 합의 보고 민박집으로 향한다.

이곳은 택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차들이 폐차 직전 수준이다. 

온통 칠이 벗겨져 있고, 심지어 테이프로 창문을 붙인 차도 보인다.


너무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체크인을 하지 못하고, 아침밥만 간단히 먹는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한식인가. 이런 볼리비아 낯선 땅에서 먹는 한식의 맛은 너무나도 달콤하다.


민박집에서의 아침 식사는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10살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나온 50대 부부, 혼자 여행을 오신 노총각 아저씨, 출장 차원에서 볼리비아까지 왔다는 아주머니, 그리고 나와 또래로 보이는 어느 여성분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곧장 우리는 또다시 택시를 타고 라파즈 시내를 구경하러 나선다.

라파즈 시내에 딱히 볼 것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딱히 볼 게 있어야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니까.

아무것도 없어도, 나가면 그 도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고, 사람을 느낄 수 있다.


시내 중심지에 있는 어느 성당에 내린다.

우유니에서 같이 투어를 한 M 누나가 라파즈에는 비둘기가 엄청 많다고 했는데, 실제로 엄청 많다.

굳이 비둘기 때문은 아니겠지만, 도시 자체가 뭔가 어수선하고 더럽다.

쓰레기가 널브러 진 것도 아니고, 건물이 무너진 것도 아닌데 그냥 더러운 느낌이 너무 강하게 온다.

그리고 거지도 많다.


라파즈 중심지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

시내 인근에 있는 마녀 시장에 가본다.

이름이 마녀 시장이라 뭔가 있어 보이지만,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시장에 불과하다.

시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것이, 다양하고 신기한 것들을 팔기보다는 기념품점만 즐비하다.

얼마 전까지 공사를 한다고 폐쇄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사람들로 북적이진 않다.


마녀 시장에서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라마 새끼를 말려서 문 앞에 걸어놓는 것.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를 문 앞에 걸어 놓는데 너무 충격적이고 끔찍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에서 돼지 머리로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한 개념인가-라고 생각하며 안도한다.

각자 문화는 다른 거고, 다수의 문화는 존중해주어야 하는 것이 맞는 거니까.


마녀 시장의 풍경
라마 새끼를 저런 식으로 걸어 놓는다, 그리고 어느 기념품점의 모습

라파즈에는 케이블카가 엄청 많다.

이곳에서 텔레페리코라고 부르는데, 해발 고도가 높은 라파즈에서 대중교통 수단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하철을 만들기도 어렵고, 도로 인프라가 좋지 못해 버스도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을 하니, 어쩌면 하늘로 대중교통 수단을 올려버린 방법이 꽤나 괜찮게 느껴진다.

그만큼 노선도 다양하고 라파즈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다.


텔레페리코에서 바라본 라파즈의 모습

텔레페리코는 한 번 탈 때, 3 볼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인데 그걸 몰라서 처음에는 구간마다 돈을 내버린다.

결국 서너 번 갈아타다가 이상하다 생각되어 직원에게 겨우 물어물어 해결한다. 


하늘에서 보니, 이 높은 곳에 무슨 집이 그리 많은지 놀라울 지경이다.

절벽 바로 옆에도 집이 겨우 서있고, 건물이 온통 도시를 빼곡히 매우고 있다.

그러는 중간중간 학교와 운동장도 보인다. 있을 건 다 있나 보다.


텔레페리코에서 집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도 보인다.

빨래를 너는 모습도 다 보이니, 이곳에서 사생활이 지켜지긴 하는 건지 의심스럽다.

특이한 것이 집집마다 물탱크가 하나씩 있다. 물이 귀한 것인지, 수도 시설이 열악한 것인지 모르겠다.

모든 게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보는 재미가 있다. 

라파즈는 말 그대로, 분지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 분지는 분지도 아닌 느낌이다.


텔레페리코에서 바라본 풍경들, 그리고 절벽 끝자락에 서있는 집들

이른 아침부터 줄 곧 돌아다녀서인지 피곤함에 지쳐,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잔다.

이전 같았으면 여행 와서 낮잠은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이렇게 멀리 와서 한가롭게 낮잠이나 잔다고?-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멀리 오긴 제일 멀리 왔지만, 여행 기간은 한 달이다.

수 번의 여행으로, 여행지에서 적당한 휴식은 여행의 흥미를 높여준다는 것을 이제는 느꼈다.

그리고 이곳 라파즈, 딱히 구경거리가 많은 도시도 아니다.


일어나 보니 임상병리사 누나들이 숙소에 와있다. 

같이 저녁을 먹고 야경이 아름답다던 낄리낄리 전망대에 같이 가보기로 한다.

터미널과 거리는 비슷해 보이는데, 민박집 사장님이 택시를 불러줘서 그런지 가격이 더 싸다.

역시 바가지가 맞았다.


늦은 시간이라 위험하기도 하고, 실제로 사장님도 택시에게 기다려달라 하고 30분 정도 전망대를 구경하고 내려오면 택시가 다시 숙소로 태워주도록 말을 했다고 하신다.


보통 전망대라 하면 높은 곳을 말하는데, 이곳 라파즈의 전망대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주변 지대보다 상대적으로 높긴 했지만, 건물로 둘러싸이지 않아 주변이 탁 트인 정도.

그런데 그게 이곳 라파즈의 야경을 담기엔 최적의 공간인 듯하다.


낄리낄리 전망대에서의 야경
분지라서 불빛의 끝은 지평선이 아닌 산 꼭대기이다.


이런 전망대가 또 있을까?

    

다시금 생각해보아도 라파즈 만한 분지가 따로 없을 정도다.

전망대에 서있자면, 사방이 불빛이다.

마치...... 콘서트장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팬들이 휴대폰 플래시로 나를 비추는 느낌.

고척 돔에서 가수를 위해 플래시 이벤트를 하는 팬들을 보는 가수의 기분이 이런 걸까.

멍하니, 그리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가로등 불빛, 집에서 나오는 빛들, 이 도시의 모든 빛들이 나를 비추고 있는 기분

이런 야경은 오직 라파즈에서만 볼 수 있겠지.

내가 세계 많은 곳을 둘러본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나에게 최고의 야경은 이곳, 낄리낄리다.



라파즈에서 둘째 날, 임상병리사 누나들과 A 그리고 나까지 4명이서 달의 계곡에 가기로 한다.

아타카마의 달의 계곡과 이름이 같다. 왜 같은진 모르겠지만, 일단 나라가 다르니까 그러려니 한다.

사실 내가 라파즈에 오려고 한 이유도 달의 계곡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서이다.

다른 사람들은 와이나 포토시에 오른다거나, 혹은 데스 로드 투어를 하기 위해 온다는데 나는 솔직히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알았다 하더라도 과연 내가 갔을까 싶은 의문도 든다.


달의 계곡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넓은 곳도 아니고,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닌 듯하다.

실제로 내가 어느 사진을 보고 환상을 너무 가진 건지, 달의 계곡을 가려고 막상 정보를 찾아보니 돌아보는데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투어로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택시로도 금방 갈 수 있는 수준이다. 사실 버스를 타도 되지만, 라파즈의 버스를 본다면 그런 생각이 싹 가실 거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라파즈는 진짜 운전 고인물들만 운전이 가능할 것만 같다.

일단 신호등 같은걸 본 적이 드물고 신호등을 지키는지도 의문이다.

도로는 매우 비좁고 그럼에도 교통량은 엄청나다. 도로 위를 다니는 차들은 금방이라도 길을 가다가 주저앉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아있고, 우리나라 90년대 사용하던 차들을 모조리 이곳으로 가져와서 사용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교차로에서 서로 끼어들고 앞다투어 지나가는데 신기하게 사고가 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횡단보도가 있을 리 만무하니, 중간중간 사람들도 도로를 지나다닌다. 웬만큼 운전을 잘하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운전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달의 계곡에 무사히 도착한다.

딱히 볼 것이 그리 많진 않은데, 어떻게 돌들이 이런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궁금하긴 하다.

닐 암스트롱이 이곳을 보고 "달의 표면과 같다."라고 해서 달의 계곡이라는데

실제로 보면 그럴싸하게 느껴지긴 한다. 그나저나 암스트롱은 라파즈까지 왜 온건가.


라파즈 달의 계곡


달의 계곡 투어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남미에서 유명한 엔바나다를 사 먹는다.

사실 점심 대용으로 간단하게 뭐라도 먹기 위해 사 온 것인데, 현지 경찰관들도 사가길래 괜찮은 집인가 싶었다. 막상 숙소로 들고 와서 먹으니 안에 치즈만 조금 들어있고 속이 텅 비어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먹은 엔바나다는 그래도 속에 치킨이나 돼지고기를 넣어 줘서 먹을만했는데, 이렇게 비어있는 엔바나다도 있는지 처음 깨닫는다. 


또다시 낮잠을 청한다.

시내로 나가볼 수도 있지만, 숙소가 떨어져 있어서 가려면 또다시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귀찮기도 하고, 돈도 아깝다.

여행의 절반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라파즈에서 볼 것도 다 봤겠다, 쉬어가는 도시로 생각하련다.

이런 날도 있어야 다음 일정에서 체력을 아끼지 않을까?


첫인상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더러워 보이고, 여전히 어수선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본 야경, 해발 5000미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독특한 지형 구조 그리고 그에 적응하며 새워진 도시의 풍경 때문일까. 나에게 있어서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라파즈에서 평화롭던 날들이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라파즈의 지붕, 엘 알토. 해발 4095미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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