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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Nov 22. 2020

세상의 거울이 맞구나

우유니, 볼리비아

데이 선셋 투어를 신청한다.

일단 우유니에 가 보는 것이 목적이기에, 아무 가이드나 신청한다.

처음에는 나와 A 둘이었는데, T형도 합류하고, 캐나다에서 유학 중이라는 한국인 커플도 합류한다.

그렇게 출발하나 싶더니, 마지막에 볼리비아 자매가 꼈다.

같이 가도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이 친구들이 우유니에 대한 기대감이 그 누구보다 큰 듯하다.

자매는 휴대폰에 원근법 사진 100여 장을 담아오며, 같이 찍자고 아주 들떠있다.

한국에서는 이미 유명하고, SNS에서 흔히 본 사진들을 계속 본다.

그들 옆에 앉아 있던 A는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호응해주기 바쁘다.

그들이 그런 사진을 찍기 위해 일부러 한국인이 많이 찾는 투어사에 온 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사진에서 자주 봐오던 지프차를 타고 출발한다.

생에 첫 우유니로 향하는 순간이다

들뜬 마음을 힘들게 가라앉힌다. 

고등학교 자습실에 붙여놓던 사진 3개가 있다.

좋아하는 축구팀, 에펠탑 그리고 우유니

에펠탑을 보았고, 또 하나를 보게 되는 순간이다.


데이 투어는 우유니로 가는 길에 기차 무덤과 콜차니 마을에 들린다.

사람이 너무 많기도 하고, 잡상인들도 많다.

녹이 다 슬어버린 기차가 몇 대 있는데, 생각보다 흥미가 있진 않다.


기차 무덤

콜차니 마을은 별 다른 건 없고, 우유니에서 파는 흔한 기념품을 죄다 팔고 있다.

실제로 사고 싶은 기념품이 굉장히 많기도 하고,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남미에서 다들 하나씩 사곤 하는 폰초에 눈이 간다. 많은 사람들이 페루 쿠스코에서 폰초를 사서는 우유니까지 입고 다니는데, 나는 폰초를 파는 것을 여기서 처음 본다.

우유니 마을에서 하는 것보다 반값 정도 싸길래, 고민을 하다가 결국 하나 산다.


콜차니 마을, 그리고 장화를 갈아신던 폐허 마을


우유니에 입성한다.

비가 조금 내려서인지, 우유니에 물이 가득하다. 이래서 우기에 온 거지.

운이 좋은 건지, 그래도 구름은 엄청 껴있다. 별을 보러 온 게 아니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소금 사막에 들어가니, 차가 거의 기어간다.

빨리 내리고 싶은데 차가 너무 천천히 가니 답답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소금 사막에서는 빨리 갈 수 없다고 한다. 빨리 가면 소금물이 차 아래에 다 튀어서 차가 금방 상하게 된다고......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고, 내 욕심이다.


처음 내린 곳은 소금 호텔.

소금으로 만들어진 호텔이라는데, 말이 호텔이지 그냥 건물의 모양을 한 "무언가" 같다.

옆에 국기 밭이나, 볼리비아 석상(?)에서 사진을 대충 찍고는 점심을 먹으러 호텔 안으로 간다.

국기 밭과 소금 호텔의 풍경

밥이라 해봤자 또 "날아다니는 밥"과 함께 이상한 치킨 가스 그리고 수박이다.

먹을게 이거뿐이니 억지로 먹는다. 그나마 허기를 채운다. 시설은 너무할 정도로 열악하다.

사막이다 보니 물이 안 나온다. 

심지어 화장실에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 얼마나 열악한지 짐작이 가리라 믿는다.

아타카마에서 넘어오는 2박 3일 투어를 하면 여기서 하루 밤을 잔다는 것인데......

어떻게 여기서 하루를 보낸다는 건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볼리비아 석상(?)과 소금 호텔에서의 식사

밥을 다 먹고, 밖에서 다시 출발하길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가이드가 나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식기를 다 씻어서 오는 거였다.

물도 나오지 않는데, 식기는 어떻게 씻은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는 마음이 급해서 가이드를 재촉한다.

물이 없는 곳을 찾아갔는데, 구름도 많이 끼고 물이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소금 색이 누렇게 보인다.

어차피 나는 원근법 사진에 별 감흥이 없었기에, 사진을 조금 찍고 만다.


소금 사막에서의 지프 차량, 그리고 마른 사막의 모습

단체로 원근법 사진을 찍는다.

사진 컨셉은 다 비슷해서, SNS에서 보는 사진 컨셉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찍은 사진을 보니 그럴싸하게 나오는 듯한데, 찍는 도중에는 도대체 가이드가 무슨 사진을 찍는지 알지 못한다.

결국 하라는 대로 사진을 다 찍고 나서 사진을 보니 "오~"라는 말이 나오는 정도.


슬슬 지겨워진다.

하필 날씨도 구름이 많이 껴서 원근법 자체는 훌륭한데, 보정을 과하게 하지 않으면 못 쓸 사진이 되어버린다.

지겹기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란 것을 체감한다.

캐나다 유학생 친구들과 우리는 지친 나머지 한국어로 서로 공감한다.

"그만하자, 이제 그만......"


흐린 날씨 속에서의 원근법 사진 촬영

물이 찬 곳으로 이동한다.

같은 지역인데, 어떤 곳은 물이 차있고 어떤 곳은 말이 빠져서 바닥이 보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저 멀리 비가 내리는 것이 보이고, 이곳은 맑은데 다른 쪽에는 먹구름이 잔뜩 껴있기도 하다.

사막이 워낙 넓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얼마나 넓은지 지도로 보지 않고서 실감하긴 어렵다.


물이 차있는 곳으로 가니, 말 그대로 '세상의 거울' 이란 곳이 딱 맞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전날 투어를 했던 A를 제외하고는 다들 감탄사를 내뱉는다.

하늘에 떠있는 모든 구름이 땅에 비치고, 땅 위에 서있는 사람과 차 또한 깔끔하게 반영이 된다.

이처럼 완벽한 데칼코마니도 따로 없을 듯하다.

내가 원하던, 내가 머릿속에 그리던 그 모습 그대로를 보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마음속에서, 그리고 입 밖으로 자연스럽게 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이곳에 와있다는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 고등학교 때, 유럽은 갈 수 있어도 남미는 어렵지 않을까-라고 당연스럽게 생각했던 나를 생각하니 마치 꿈만 같은 현실이 되어버린다.


우유니의 반영
세상에서 가장 넓은 스튜디오

노을까지 보고 오는 일정의 투어. 하지만, 구름이 잔뜩 껴서 노을이 환상적이진 못하다.

괜찮다. 나는 노을도, 사진도 목적은 아니니까.

그저 우유니의 반영을 두 눈에 담았다는 자체로 너무나 행복하다.

남들은 스냅사진 신청도 하고, 며칠 있는 사이에 있는 체력과 시간을 모두 투어에 쏟는다고 하지만 

나는 오늘 단 한 번의 투어로도 내가 염원하던 이곳에서의 모든 것을 느꼈고, 그렇기에 만족한다.


원근법 사진을 찍어주는 가이드, 소금 물이 잔뜩 튀어버린 바지
우유니의 흔한 풍경들


돌아오니 늦은 저녁이다.

폰초도 젖고, 바지에도 새하얀 소금물이 다 튀어서 얼룩이 져있다. 그대로 내일도 입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고된 투어에 심신이 피로하다. 고산병이 오면 안 되니 우유니 약국에서 산 고산병 약을 하나 먹는다.

내일 선셋+스타라이트 프라이빗 투어가 있다. 유명한 가이드와 함께라니 조금 더 기대를 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해본다. 단 한 번의 투어로 만족해버린 것이 다행인 건가, 아니면 내 기대치가 오히려 낮았던 건가 생각하며 우유니의 첫 투어는 이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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