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볼리비아
칠레-볼리비아 출/입국 심사를 한다.
버스에 내려서 출입국 심사를 받고 다시 버스에 오르는 것이 익숙하다.
듣던 소문으로는 칠레의 출입국심사는 까다롭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간단하게 통과된다.
짐 검사도 대충 했는지, 가방에 참치캔이 그대로 들어있는데도 통과된다.
심지어 버스에 놓고 내린 바나나도 그대로다.
버스를 갈아타게 하던가, 아니면 버스까지 검사를 하는 것이 정상이지 않을까.
일처리는 여전히 답답하다. 남미 어디든 하루 종일 걸린다.
버스 내내 잠만 잔다. 야간 버스니 잠을 청해야 할 것만 같다.
눈 떠보니 우유니 시내.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인지,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고산병이 찾아온 건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다. 걱정이다.
싸구려 숙소에 짐을 푼다. 4인실인데 아무도 없어서 독실이다.
우유니에서 만나기로 한 A와 같은 숙소로 예약을 해서, 숙소에서 처음 만난다.
짐을 대충 풀고는 N 누나와 볼리비아 현금도 뽑고, 유심도 산다.
남미 통합 유심을 샀는데, 볼리비아만 유일하게 통합 유심이 먹히질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통신사에 가서 단기 유심을 사야 한다.
허기가 져서 인근 식당에 들어간다.
이곳 우유니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동네라, 식당인지 아닌지 구분도 가지 않는다.
라마 고기를 처음 먹어본다. 엄청 질기고 기름지다. 제대로 된 음식인지도 모르겠다.
라마 인지도 의심이 가지만, 어쩔 수 없다. 샐러드도 주길래 옆에 있는 드레싱을 뿌린다.
알고 보니 드레싱은 아니고, 매운 소스다. 결국 매운 샐러드를 먹는다.
뭘 먹긴 했으니 배는 부른데, 이상하게 포만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곧바로 투어를 갈까 생각하지만, 시간이 애매하다.
우유니의 투어는 크게 선라이즈, 데이, 선셋, 스타라이트로 나뉘는데, 출발 시간이 제각각이고 오늘 새벽에 무리해서 투어를 하고 싶지는 않다. N 누나가 오늘 저녁에 당장 투어를 같이 가자고 말을 하지만, 애써 거절한다. 야간 버스에 몸이 지치지고 한 게 이유이기도 하다. A와 함께 브리사 투어사로 간다. 아타카마에서 따로 출발한 T 형님과 연락이 닿아서 내일 선셋+데이 투어를 함께 신청한다.
우유니는 남미의 한인타운이다. 그 정도로 한국인이 넘쳐난다.
한국인들에게 이곳이 포장된 것인지, 아니면 한국에 유독 많이 알려져서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도 우유니를 보고 싶어 온 것이고, 워낙 한국에 알려지기 전부터 꿈꿔왔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볼리비아의 촌동네에 한국인이 이렇게 많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한인 식당도 있고, 한국인 전문(한국인들에게 엄청 유명한) 투어사도 존재한다.
나는 남미에 오면서, 그저 우유니의 풍경을 보고 싶었다. 당연히 사진을 멋지게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것은 두 번째 목표일 뿐, 제일 중요한 것은 내 두 눈에 우유니를 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미에 실제로 오니,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우유니에서 어떤 사진을 남기는가가 이번 남미 여행의 결과물이라도 된 듯 말을 했다. 사진을 잘 남기면 성공한 여행이고, 사진을 못 남기면 다들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사진을 남기지 못하면, 그게 여행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떠들어댔다. 물론, 남는 건 사진이라고 여행에서 나도 사진을 많이 찍긴 했다. 하지만 사진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내 마음속에 남아있는 잔상이고, 머릿속에 남아있는 깊은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진을 잘 찍어주는 가이드가 있는 투어사가 한국인들에게 유명한가 보다. 그런데 이젠 사람들이 가이드의 존재 자체를 사진 기사로 착각하기도 한다. 남미 단톡 방을 보면 우유니 가이드에 대한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 어떤 가이드는 사진을 나보다 못 찍는다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그때마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가이드는 말 그대로 우유니를 보여주는 가이드이지, 절대 사진기사가 아니라고. 운 좋게 사진을 잘 찍으면 좋아하면 되는 거고, 운이 나쁘게 사진을 못 건지면 그거대로 아쉬움을 남길 순 있지만, 그게 가이드를 욕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유니에 거주하는 한국인 사진 기사들도 있다. 그들은 인당 15만 원가량의 비용을 받으며 사진을 찍어준다. 물론 그만큼 돈을 받으니, 확실히 사진이 다르긴 하다. 적지 않는 돈을 받으면서도 그만큼 수요가 있으니 우유니에 거주하는 것 아닐까. 확실히 한국인들이 우유니에 그리고 사진에 미쳐 보이긴 하다.
어떤 사람들은 우유니에 도착하기 오래전부터, 미리 투어사에 예약을 하고, 가이드는 예약이 따로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투어사에게 계속 가이드를 정해달라고 재촉한다. 어떤 투어사를 가고, 어떤 가이드를 선택할지, 스냅사진을 찍을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여행의 목적이 사진이라도 된 느낌이다. 이런 걸 두고 흔히, 주객전도라고 하는 걸까.
그렇게 말을 하지만, 나도 이왕이면 좋은 사진을 남기고 싶었기에, 신청 가능한 유명한 가이드가 있는지 알아본다. 운이 좋게도, 오아시스 투어사의 아리엘이 모레 투어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A와 함께 신청해버린다. 우선 신청하고, 그다음에 사람이야 모으면 되는 거니까. 게다가 유명한 가이드와 함께하는 투어라면 마다할 여행자는 없을 것이다.
우유니의 첫날밤, A와 함께 근처 치킨집으로 간다.
여전히 치킨은 기름지고, 감자튀김은 산더미처럼 쌓여 나온다.
그리고 이곳에서 밥은 정말 최악인 것이, 밥맛이 나지 않을뿐더러, 밥이 우리나라처럼 붙어있지 않고 밥알이 각자 따로 논다. 그러니 숟가락 따위로 퍼먹기가 겨우 가능하고, 젓가락이나 포크로 집어먹는 것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이다. A가 농담 삼아 "날아다니는 밥" 혹은 "흩날리는 밥"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이 딱 맞는 표현 같다.
첫날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자는 내내 대단한 숙취가 온 것 마냥 머리 뒤편이 지끈거린다.
평소 같으면 아프다가 자면 다시 잠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아파서 몇 번이고 깬다.
결국 타이레놀을 하나 먹으니 두통이 말끔히 사라진다.
고산병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하는데, 나는 두통으로 온 게 확실하다.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이어서 다행이다.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정도면, 양호한 편이라고 하니까.
숙소는 남미 통틀어서 가장 열악한 수준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시설이 형편없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에 복도는 삐걱거리고, 방마다 잠금장치도 없이 그대로 복도와 연결되어있다.
나도 독방을 쓰다가 누군가가 새로 들어온 줄도 모르고 문을 확 열었다가 당황한 적도 있으니까.
이불 빨래는 하는지 의문이었고, 샤워할 때 따뜻한 물이 간혈적으로 나와서 곤란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호스텔 관리인인 레오 덕분에 숙소는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젊은 청년인 레오는 항상 체육복 차림에 머리는 훈련병처럼 짧았다.
언제나 웃는 인상이고, 열악한 시설에 투숙객이 불만을 제기해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웃으며 해결하곤 했다.
하는 일이 없어 보여도, 조식도 제때 챙겨주고 숙소 청소도 부지런히 하던 그였다.
밤이면 호스텔 주방에서 맥주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낮에는 여유롭게 숙소를 청소하고 투숙객을 받는다.
젊은 나이에,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그가 어쩌면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마다 딱딱한 빵이 나왔는데, 볼리비아에 자주 보이던 빵이었다.
그리고 나와 A는 이후, 그 빵을 레오 빵이라고 불렀다.
다시 우유니를 가더라도, 레오 때문에 그 호스텔을 방문하진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