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카마, 칠레
푼타 아레나스로 이동한다.
남미에서 2주 동안 함께 여행한 동행들과 헤어진다.
아쉽다. 너무 아쉽다. 그들도 같은 감정이면 좋겠다.
갑자기 혼자가 되니, 걱정도 되고 불안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 난 애초에 혼자 온 여행이니, 혼자서도 잘할 거야.'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 1시에 도착했는데, 비행기는 오후 8시이다.
기념품점 하나, 작은 식당 2개가 전부인 작은 공항에서 커피 하나를 시켜서 일기를 쓴다.
그러다 보니 어찌어찌 시간은 흐른다. 얘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니 미칠 지경이다.
앞으로 어떤 사람을 만날지,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기대도 되면서 걱정도 된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경유해서 칼라마에 도착한다.
야간 비행을 하고 나니 해가 서서히 떠오른다.
여기서 아타카마로 가는 TransVIP(소수 인원이 다 차면 출발하는 벤) 가격을 알아보고는, 30분 뒤에 도착한다는 T 형님을 기다린다. 피츠로이 등산 때, 운 좋게 만난 T 형님과 마침 아타카마를 돌아보는 날짜가 같아서 같이 다니기로 한 것이다. 동행은 미리 구하지 않아도, 남미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한 루트로 여행하기 때문에 여행 도중 종종 만나곤 한다.
사막이 있는 칼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은 쌀쌀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T 형이 도착한다. 같이 벤을 타고 아타카마 시내로 이동한다.
아타카마는 듣던 대로, 미친 듯이 덥다.
숙소에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건조한 날씨 때문에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숨만 쉬어도 입이 건조해지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경험이다. 괜히 마트에서 물을 2~3L씩 파는 게 아닌가 보다.
T형과 만나서 안데스 투어사에 예약을 하러 간다.
안데스 투어사는 한국인에게 국룰로 손꼽히는 여행사인데, 가격도 괜찮고, 다들 괜찮다고 하니 그곳으로 향한다. 처음에 가격을 듣고는 알고 있는 가격과 달라서 당황하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시 가격은 내려간다. 이래서 남미에서 가격 흥정을 하라고 하는 것일까.
투어는 오후 4시부터 시작이라, 그전에 아타카마 시내를 둘러본다.
다음 일정인 우유니에서부터는 고산 증세가 온다고 해서 미리 고산병 약을 사러 약국으로 향한다.
그런데 아타카마에 얼마 되지 않는 약국이라 그런가 대기표가 200번이 넘어간다. 결국 기다림 끝에 약국으로 향하니, 칠레는 볼리비아와 다르게 고산병 약은 처방전 없이는 판매할 수 없다고 한다. 약사가 코카잎이나 코카 차를 먹으라고 한다. 좌절하며 돌아가려는데, 옆에 있는 어떤 아주머니가 "코카 차 필요해?" 라면서 묻는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고 하며, 나와 T형은 그대로 그 아주머니를 따라간다.
코카 잎도 팔고, 차도 팔고, 코카 캔디도 판다. 차는 끓여먹을 수 없어서 패스하고, 캔디를 살까 하지만 코카 잎 그대로를 맛보고 싶어서 코카잎을 아주 싸게 산다. 실수였다. 코카잎을 시험 삼아 씹어본다. 가게 아저씨가 3~4시간은 씹어야 효과가 온다고 해서 잘근잘근 씹어보는데 맛이 더럽게 없다. 그냥 풀 씹어먹는 맛 그 자체다. 별다른 맛이 있을 거라 기대한 내 잘못이다. 겨우 3분 씹어보다가 뱉는다. 다신 못 씹을 것 같다.
아타카마 광장에서 커다란 개와 같이 누워서 쉬다가 안데스 투어사로 이동한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투어사라 그런지, 아타카마에 있는 한국인들은 다 모인 것 같다.
덥다. 찌는 듯 한 햇살에 구워지다 보면, 괜히 사막의 사람들이 검고 긴 옷을 입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옆에 한국인 여행자들이 우산을 챙겨 왔는데, 우산이 이럴 때 쓰이는구나-싶으면서도 부럽다.
투어는 4시간가량 진행된다고 한다. 버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새롭다.
온통 풀 하나 제대로 자라지 않은 사막. 내가 알고 있던 고운 모레가 잔뜩 쌓인 사막은 아니지만, 이런 풍경을 두고 보면 누가 보더라도 사막이라고 할 것이 분명하다. 건조하기 짝이 없으니까. 마치 그랜드 케니언의 일부를 보는 듯하다.(물론 그랜드 케니언을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실제로 아타카마는 빨래 말리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밖에 널어놓기만 하면 금세 말라버린다.
처음에는 모든 게 신기하다.
가이드가 보여주는 암염은 실제로 맛을 보니 엄청 짜다. 사막의 능선은 하늘과 닿아 깨끗하다.
조금 걷다 보니, 더운 건 둘째 치고, 모레 바람이 엄청 불어서 미칠 지경이다.
눈도 충혈되고 입에 잔 모레가 엄청 들어간다. 덥고 건조하기까지 하니 짜증이 밀려온다.
정상 컨디션이 아닌 기분이다. 분명 보이는 풍경은 엄청난데, 사진을 찍을 기분이 아니다.
처음 보는 사막은 참으로 황홀하다.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그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컨디션이 좋지 못해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다.
투어가 늦게 출발하는 이유는 사막에서 지는 석양을 보기 위함이다.
날씨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다른 여행지와 달리, 이곳은 사막이기 때문에 석양을 아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사막의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드넓은 사막의 풍경은 지구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화성이나 금성의 일부를 보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사람들의 실루엣 사진이나 찍다가 일찍 투어 버스로 돌아온다.
컨디션이 좋지 못하니, 더 피곤한 느낌이다.
온몸에서 잔 모레가 느껴진다. 모레 운동장에서 축구를 열심히 하다 돌아온 기분이다.
숙소에 와서 바로 씻는다.
이곳에는 물이 많지 않아서, 샤워 시간을 7분으로 제한한다.
무조건 지켜라! 이건 아닌 듯 하지만, 암묵적인 이 도시의 규칙인 듯하다.
칠레에서 마지막 날이기에, 칠레 페소를 모두 사용하기 위해 시내로 나선다.
여전히 길거리에는 큰 개들이 주인 없이 돌아다닌다.
다른 한국인들은 십자가 언덕 투어도 따로 가서 별을 본다고 하지만, 난 딱히 흥미가 없다.
이상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맥주와 함께 지친 몸을 달랜다.
맥주가 5천 원가량 하는데, 작은 병에 준다. 물가가 비싸긴 한가보다.
잠을 자지 않고 바로 우유니로 넘어가기 위해 숙소 라운지에서 밤을 새운다.
짐을 아주 크게 들고 온 여행자가 있었는데, 고무장갑이 있는 걸 보니 한국 사람이 분명하다.
알고 보니, 은퇴하고 여행을 떠나오신 어르신이다.
혼자 오셨다고 하는데, 남미에는 은퇴하고 먼 길을 떠나오신 여행자 분도 참 많은 듯하다.
버스는 새벽 2시 30분이다.
일찍 터미널에 도착하니, 터미널 문이 잠겨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조금 기다리니, 버스 출발 15분 전에 터미널 문이 열린다.
함께 우유니로 넘어가는 한국인 여행자가 나 말고 5명이나 더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여행 오신 N 누나를 처음 만난다.
(훗날 이들은 라파즈, 쿠스코, 이카, 리마에서도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버스를 탔는데, 어떤 현지인이 노래를 크게 틀고 자기도 따라 부른다.
너무 시끄럽다. 다들 눈치를 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N 누나가 욕을 해댄다.
야간 버스라서 잠을 청해야 해서, 결국 이어폰을 꼽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그렇게 짧은 칠레의 일정을 마치고 볼리비아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