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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Oct 05. 2020

염원하던 삼봉을 드디어

토레스 델 파이네, 푸에르토 나탈레스

아침 일찍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를 탄다.
토레스 델 파이네에 오르기 위함이다.


남미는 장거리 버스가 많아서 그런지, 모든 버스가 다 좋아 보인다.

좌석도 넓고, 등받이도 많이 젖혀진다.

우리나라에서 오래 걸리는 수준이 여기서는 짧게 걸리는 수준이니, 충분히 그럴만하게 느껴진다.

엘 칼라파테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길 또한 6시간이나 되는 긴 거리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넘어가는 것이기에, 국경을 통과해야 한다.

브라질에 다녀온 이후, 두 번째로 버스로 국경을 넘어본다.

출입국 심사소가 붙어있으면 금방 처리가 될 텐데, 당연히 출국을 하는 사람은 다시 입국을 할 텐데

왜 굳이 출입국 심사소가 떨어져 있어서 다시 버스에 타고 이동해서 내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출입국 심사소


출입국 심사소에는 줄이 아주 길게 늘어져있다.

딱히 별다른 질문을 하지도, 짐 검사가 까다롭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느린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면 10분이면 걸릴 일이 이곳에서는 30분 이상은 걸리는 기분이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알고 보니 피츠로이를 같이 다녀온 K 형님이 같은 버스를 타고 있다.

출입국 심사소에서 만나서 내일 같이 토레스 델 파이네에 오르기로 한다.

숙소도 다르고, 버스 시간도 달라서 토레스 델 파이네 입구에서 만나자고 한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도 엘 칼라파테와 같은 여행자들의 집합소이다.

피츠로이와 모레노 빙하를 보기 위해 엘 칼라파테에 모인다면, 토레스 델 파이네를 보기 위해 모두가 이곳을 거쳐간다. 엘 찰텐 보다는 조금 크고, 엘 칼라파테 보다는 조금 작은 기분이다. 건물도 낮고, 거리도 조용하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다. 엘 찰텐 마냥, 트래킹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곳곳에 등산용품 대여점이 있다. 이미 피츠로이에서 자신감을 얻은 터라 보기만 하고 지나친다. 칠레에 왔으니, 새로 환전소에서 환전도 하고, 유심도 갈아 끼우고 나서 마트로 가서 내일 트래킹을 하며 먹을 햄버거 재료를 산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거리


원래는 동행들 다 같이 산행을 하려 했는데, 어제 피츠로이를 다녀와보니 아무래도 같이 가다간 제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뿐만 아니라 W도 그런 생각을 한다. 결국 여자 동행 두 분에게 힘들지 않겠냐-라고 말하면서 투어를 하는 게 어떻냐고 꼬신다. 그리고 결국 산행은 나와 W만 가기로 한다. 어쩌면 다행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입구로 가는 버스도 무려 2시간이다. 2시간......

입구에 내려서 K형님을 기다린다. 그런 도중에 후지 민박에서 만났던 제주도 레스토랑 사장님도 마주친다.


버스 터미널에 있던 삼봉 날씨 표, 그리고 토레스 델 파이네 입구


K형님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질 않는다. 

이러다가 우리도 늦겠다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끼리 등산을 시작한다.

연락이 되면 늦는 이유라도 알았을 텐데, 버스를 타고 오는 도중부터 데이터가 아예 안 터진다. 와이파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아예 휴대폰은 불통이 되어버렸고, 그저 카메라로 전락해버린다. 분명 몇 시에 모이자고 말을 했는데, 늦는 걸 보면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지 알 수 없다.


이곳도 피츠로이처럼 시작은 산책길이다.

이제 막 올라가려는데, 벌써 내려오시는 한국인 분들이 보인다. 아마 새벽에 올라가셨나 보다.

그들에게 얼마나 걸리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저희는 빨리 올라가서 3시간 30분 정도 걸렸어요. 등산 스틱 없이는 힘들걸요."

아무런 장비도 없는 우리를 보며 말하신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등산 스틱 없이 2시간 40분 만에 올라갔다.


가는 길은 마테호른의 트레킹 풍경만큼이나 웅장하다.

드넓은 들판과 곳곳에 서있는 거대한 산봉우리들. 가슴이 탁 트일 수밖에 없는 풍경.

경치를 조금 더 즐겼으면 좋았겠지만, 우리는 삼봉에 미쳐 쉬지 않고 올라간다.


토레스 델 파이네 등산길의 흔한 풍경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햇살이 너무 강렬해서 덥다.

피츠로이처럼 패딩과 바람막이를 입고 가는데, 너무 더워서 다 벗고 오르는데도 덥다.

털바지를 입고 온 탓에 다리를 타고 땀이 흐르는데 벗을 수도 없고 너무 답답하다.


그렇게 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새 등산로는 숲 속으로 이어지고, 바람도 불고 햇살도 가려 살만하게 느껴진다.

별거 없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표지판이 보인다. 45분 정도 남았단다.

거의 다 왔네-라고 생각하는데, 남은 거리는 얼마 안 된다. 불길한 기운이 급습한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건......


장난이 아니다. 엄청 가파르다.

체감상 피츠로이보다 더 가파르고 힘들다.

피츠로이는 어두워서 그 경사를 체감하지 못해서일까, 혹은 피츠로이는 작은 돌계단이라도 있어서일까.

고개를 들어 올라가는 길을 보니 막막하기 짝이 없다.

흙길과 커다란 돌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경사도 엄청나다.


삼봉으로 향하는 마지막 코스


숨이 가빠진다. 피츠로이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왜 이러지 싶다.

고산 증세가 이런 건가-라고 생각한다.

5분 걷고 쉬고 다시 걷고의 반복이다. 며칠간의 트레킹에 몸이 지친 건지, 체력이 이전 같지 않은 기분이다.


기어 올라가듯 올라가니 삼봉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거대한 삼봉을 보는 순간 울컥한 감정이 물밀듯 밀려온다.

삼봉이 그 정도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피츠로이보단 삼봉이 더 와 닿는다. 남미 여행을 꿈꾸며, 우유니와 더불어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삼봉이다. 갈라진 세 개의 봉우리. 그 앞에 한없이 작게 보이던 사람들. 나는 오래도록 삼봉을 염원해왔다.

그러니, 나에게 삼봉의 가치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고생 끝에 드디어 바라보는 웅장한 삼봉의 모습에 압도당한다.


토레스 델 파이네, 삼봉


구름이 끼긴 했지만, 80퍼센트 이상이 보인다.

이 정도면 만족한다. 그래도 삼봉이 갈라지는 것을 본 게 어딘가.

아주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누군가는 구름에 가려 삼봉 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데, 그거보단 나은 편이니까. 사실 깨끗한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피츠로이가 너무 운이 좋았던 것일 뿐.


점심으로 싸온 햄버거를 먹기 전에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

미리 여행자들의 사진에서 봐 둔 포토스팟인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본다.

우리가 차례로 사진을 찍자, 다른 외국인들도 우리가 찍는 스팟이 마음에 들었는지 줄을 서서 기다린다.

역시 한국인의 사진 실력은 자랑할만하다.


햄버거는 먹으려고 꺼내보니 다 찌그러져있어서 햄버거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배는 고프니 먹긴 해야겠고, 꺼내서 먹어보니 나름 맛이 좋다.

삼봉을 바라보며 먹어서 그런 걸까, 역시 환경이 중요하긴 한가보다.


거의 2시간 동안 삼봉을 바라보다 내려갈 채비를 한다.

점점 구름도 몰려오고, 약한 비도 내리고 바람도 세게 분다. 빗방울이 바람에 날려 따가울 정도다.

풍속 40 km/h까지 분다더니 사실인가 보다.

이러다가 비가 오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에 서둘러 내려가려 한다.

내려가려는데, 이제 올라오고 있는 K형님이 보인다.

알고 보니 버스에 사람이 덜 차서 출발하지 않고 계속 기다렸다는 것......

남미의 시스템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일찍 올라오길 잘한 것 같다.


2시간 만에 올라왔다는 K 형님, 얼마나 빨리 쉬지도 않고 올라온 건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K 형님 사진도 찍어주고, 전날 준비해온 K 형의 햄버거도 전해준다.

다 찌그러져서 미안하다고 했는데, 나중에 전해 들은 말로는 '여태 먹은 햄버거 중에 제일 맛있었다.'라고 했단다. 맛있게 먹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 산장


내려가는 길에도 2번 정도만 쉬고 줄곧 내려간다.

내려가는 도중에 올라오는 사람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든다.

등산복으로 무장하신 한국인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보인다.

거의 20명 가까이 되신 것 같은데, 단체로 올라오신다. 우리 보고 한국에서 왔냐고 물어보신다.

"네, 그럼요. 한국말 이렇게 잘하는걸요." 

당연히 한국에서 왔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미국에 이민 가신 분들의 모임이라고 한다. 미국 각지에 살고 계신 분들이라고......

얼마나 더 가야 되냐는 아저씨들의 물음에 W가 하는 말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나는 속으로 당황한다. 조금만이 아닐 텐데......


거의 다 내려오니 작은 공사현장에 여자들이 있다.

안전장비까지 다 갖추고 공사 일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등산을 하면서,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그 옆으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면서도 느낀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산도 많고 어릴 때부터 강하게 키우는 느낌이 든다. 대단해 보인다.




다 내려와서 비지터 센터(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건물)에서 맥주 하나를 사서 먹는다.

지친 몸을 달래주니 이렇게 맛이 좋을 수가 없다.

버스를 타고 이곳을 벗어나기 전까지 데이터도, 와이파이도 쓸 수 없다. 

아무도 연락이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 도대체 산에서 길을 잃거나 다치면 큰일 날 것 같긴 하다.


7시 45분에 온다던 버스는 8시가 다 되어서 온다.

그리 큰 차이는 아니라 생각할지라도, 우리나라에선 시간 약속이 칼 같기 때문에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아마 남미에서 힘든 트레킹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69 호수랑 비니쿤카가 계획에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산을 탈 일은 없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W 트레킹이나 O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2박 3일 혹은 3박 4일 동안 캠핑을 하면서 토레스 델 파이네를 트레킹 하는 것이다.

나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도전해볼 법했지만, 시간이 많지가 않다.

사실 삼봉을 보기 위해 W 트레킹이 필수라면, 나는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W 트레킹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일치기로 삼봉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굳이 몇 박씩 해가면서 트레킹을 할 이유는 없었다. 

나의 목표는 트레킹이 중심이기보단, 삼봉을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왕복 4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시간만에 삼봉을 보고 내려왔다.

삼봉은 질리도록 바라보았다. 다시 올라가고 싶은 곳은 아니지만, 그만큼 충분히 바라보았다.


무채색의 호수와 함께 있던 삼봉의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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