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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꼴레오네 Jun 30. 2024

마음여린 담임선생님에 대한 추억

꼴레오네의 수필집 #009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우리반에는 자폐를 앓고있던 친구 정호가 있었다.

재미있는 친구였고 돌발행동을 가끔 했지만 어린 우리들은 그런 정호의 모습에 재밌어했던 것 같다.

정호가 가끔 웃통을 벗거나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그럼에도 원래 그런 친구였다는 생각에 그 또한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넘어갔던 것 같다.


그런 정호의 모습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지나치게 위험하거나 불쾌한 행동을 하려 한다면, 담임 선생님이 알아서 말리고 화도 내고 혼도 내고 교육을 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로 인해 수업이 중단된 경우도 있었고, 선생님이 그 친구를 데리고 복도로 나간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정호는 화가 나면 선생님을 때리기 일수였다.


언젠가 선생님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옆 반 선생님이 와서 다독여 주셨고, 옆 반 선생님은 정호에게 장난식으로 선생님께 사과하라 하였다.

그리고 정호 또한 장난식으로 선생님께 억지스럽게 사과를 하기도 했다.


선생님은 어른인데, 분명 나에게 선생님은 무척이나 어른이었는데

울고 계신 선생님의 모습은 낯설 수 밖에 없었다.

20대 후반의 어린 교사였던 담임 선생님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을까

당시에는 선생님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돌이켜보면 혼자서 힘든 싸움을 하고 계셨던 것은 아닐까.




당시 우리반은 칭찬 스티커 제도를 운영했다.

상벌점 제도 같은 것인데 한 학기가 가기 전에 스티커를 다 모은다면 영화를 같이 볼 기회를 주신다고 하셨다.

굳이 영화 때문은 아니었지만, 원래 그런 학급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나는 어느덧 칭찬 스티커를 다 모을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4명의 학생이 비슷한 시기에 스티커를 다 모았고, 그런 나는 선생님에게 보채다싶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졸랐고, 어느 주말에 다같이 모여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지역에 영화관은 딱 하나 존재했고, 학교에서 다같이 모여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모든 어른은 자가용이 있다고 생각했던 그 어린 나는, 버스를 타자는 그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선생님께 왜 차가 없냐고 묻기도 했다. (지금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가 된 나 또한 자가용이 없지만)


팝콘 따위의 간식을 먹었는지, 심지어 무슨 영화를 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뜻깊고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었다.

스티커를 다 모았다는 성취감도 있었지만, 학교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과 사적인 자리에서 영화를 봤다는 자체가 특별한 이벤트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일개 선생님이 주말에 개인시간을 들여서, 그것도 개인 사비를 들여서 아이들을 위해 영화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하면 대단할 따름이다.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지만, 나였어도 절대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많지 않은 젊은교사 월급에, 황금같은 주말일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조각들을 곱씹어 보다보면

나이듦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그 조각들은 담임선생님을 참 잘 만났다고 추억하게 된다.

마음 여리고 교육에 열정이 강한, 순수하고 따뜻했던 그런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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