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기분 좋은 알랑방귀다. 접수계의 직원이 나이를 십 년이나 깎아준다. 뻔한 거짓말임에도 어쩔 수 없이 웃음부터 터져 나오니, 정말 십 년은 과해도 한오 년만 깎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솔직히 일찍 결혼해 제 할일을 끝내놓은, 조금이라도 더 젊은날에 여유를 갖는 친구들이 부럽다는 맘을 갖고있는 참이었다.
왼쪽 시신경이 약해 강남의 안과를 찾았다. CT를 찍고 각종검사를 한 후 담당의를 만난다. 우와 참 잘생겼다, 어째 그리생김이 좋은지, 부드러운 어투에 미소까지, 증상에 상관없이 마음이 들뜨고 기분이 좋아진다.
꽃이 피는 순간을 보았을까? 꽃 같은 미소가 저절로 피어오른다.
"어머님"
꽃 진다.
헐, 이젠 이름보다 어머님이 빠르다. 하긴, 안타깝긴 하지만 저 생김 좋은 의사도 나이가 들면 살도붙고 배도 나와, 아버님하고 불릴 것이다. 어머님답게 여유를 갖고 몇 잔의 공짜 커피를 더 마시고 병원을 나선다.
어느새 어두워진 거리는 불빛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산책이라도 나선 듯 서둘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는 여유로 낮보다 반짝이는 거리를 걸어 서점을 향한다.
겨울 숲은 약간의 검정과 갈색, 우윳빛깔이 뒤섞여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 생각했다. 서점도 비슷한 색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햇볕을 따라 산길을 걷듯 책장과 책장 사이를 걷는다. 충분히 여행자 또는 이방인의 기분을 만끽하는 중이다.
유난히 우울증 약을 많이 복용한다는 프랑스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프랑스 여성들의 다른 점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여성으로 사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부드럽고, 달콤한 듯 하지만 속은 강하고, 자유롭고 당당하며, 때론 파격적인 정신에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면서 그 열정에 충실치 못하게 사는 것을 인생의 실패로 본단다(장미란, 파리의 여자들).
변화되어가는 사회지만,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수동적인 삶을 살던 나와는 분명 다른 삶이다. 물론 그들의 화가 뒷받침 되었겠지만, 진정 부러운 것은 그들의 감수성이다.
여자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간 적이 있었던가? 여자를 내려놓아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딱 한 시기쯤 연애를 할 때, 여자여서 좋았고 우쭐했던 기분을 가졌던 거 같다.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제대로 표현하며 살아왔을까? 어느 정도 혜택 받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드러내지 않는 게 오히려 미덕이라며 은근히 강요받던, 집단적 무의식을 갖고 있던 사회다.
그러고보니 나도 내 엄마처럼 옛날 사람이 다 되어가나보다. 변한 세상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아집으로 거부하고 있으니 말이다. 허나 요즘의 젊은 친구들이야 그리 살기에 딱 좋지 아니한가?
문제는 나이가 들어가며 변화와의 타협보다는 개개인의 감수성을 어머님 또는 아줌마라 불리는 뭉텅이 속으로 숨겨두는 여자의 삶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 내정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정말 대답할 말이 없다. 아직 복사꽃 피던 날의 설렘을 다 게워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허기가진다. 언제나 분열된 나와의 산책길을 멈추는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나의 위장이다. 고약한 위장을 달래는 대신 책한권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박쥐가 되어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젊거나 늙거나 기분에 따라 넘나들기로 하자, 눈치가 보이지만 좀 앉아도 괜찮다, 스스로 다독이며 경로석에 엉덩이를 들이 민다.
콩사탕 하나를 까 입에넣는다. 달콤하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중에 괜찮은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자신의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나만의 뻔뻔한 속성일 수도 있다). 이제 달콤한 사탕 맛을 음미하며 마음 닿는 곳까지 눈을 감아도 되는 것이다.
달콤한 사탕 맛이 또꼬드기길 시작한다. 꽃도 잘만 말리면 생화보 다보기 좋을 때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