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심리상담을 결심한 이유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것은 '분노'나 '억울함'같은 감정과 비슷한데, '두더지 망치'로 아무리 세게 내려쳐도 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나를 극도의 불안으로 몰고 갔다.
결국 나는 40년 가까이 내 인생에서 감정을 통제했던 '두더지 망치'를 내려놓기로 하고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두드려 맞았던 두더지를 마주할까 봐 두렵고 싫었지만, 이제는 마주해야 할 것 같은 강한 느낌이 들어서 였다.
10번의 심리상담을 마친 지금, 나에게 일어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통제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심리상담사와 함께 연습한 대로 분노나 억울함을 포함한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솟구칠 때, 나는 차분하면서도 빠르게 그 감정을 알아챈다. 그리고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고요하게 바라보면서 그 감정 아래에 있는 진짜 욕구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욕구를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한다. 마치 다정한 엄마가 어린아이의 투정을 사랑으로 받아주는 것처럼.
이는 상담치료에서 추천하는 방식이지만, 부처가 마라(악마)를 상대하는 방법과 비슷하다.
부처는 마라가 찾아오면 화를 내며 쫓아내는 대신, "마라여, 내가 너를 본다."라고 말하고 따뜻한 차를 내어주며 귀빈 대접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마라는 차를 마시며 잠깐 앉았다가 가곤 했다. 이후에도 마라가 종종 찾아왔지만 부처는 항상 미소로 반기고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나는 내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에 '마라'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부정적인 감정이 솟아날 때, 그것을 두더지 망치로 내려치는 대신에 즉시 그것을 알아채고 바라본다. 그렇게 감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통제 불능의 심각한 상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절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두고 나서 그러한 감정이 나오게 된 이유를 차분하게 생각해본다.
나의 어떤 소중하고 중요한 욕구가 좌절되어서 이런 감정이 생긴 걸까?
내 욕구는 소중하고 중요하다. 그것을 인정하고 알아준다. 그리고 따뜻한 엄마가 되어 감정을 안아준다. 실제로 안아주거나 쓰다듬는 상상을 하며 시각화를 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어느새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감정을 적절하게 통제'한 경험을 하고 나면 매우 기분이 좋다. 언제든지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안감도 해소된다. 이런 경험이 계속되면 통제감은 점점 강해진다. 통제감이 강해질수록 불안감은 약해진다.
'마라'는 언제나 찾아온다. 심지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마라'가 찾아오든 내가 통제할 수 있으면 더 이상 마라가 올까 봐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심리상담을 하면서 40년 가까운 나의 일방적인 '두더지 망치질'에 만신창이가 된 두더지를 마주했을 때,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처참했다. 하지만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그 두더지에게 따뜻한 음식과 쉴 수 있는 공간을 내어주기로 했다.
우리의 감정에는 중요하고 타당한 욕구가 숨어있다. 심리상담을 통해 그 욕구를 인정하고 수용해주는 내가 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는 나의 엄마가 되어주기로 했다.
*지난 3개월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의 두더지를 치료해주신 상담심리사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또한,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과 위로의 댓글을 남겨주신 분들께도 저의 심리치료 여정을 함께해주심에 깊은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덕분에 조금은 자유로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