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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지안 Oct 10. 2020

마음껏 우세요 그게 더 좋은 거예요

8회차: 감정을 억누르면 병이 돼요

상담사: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으세요?

나: 지난주에 최근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선생님과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었는데, 최근 일주일 사이에 누구를 만나거나... 그런 일이 없어서 에피소드라고 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네요.

상담사: 그렇군요. 누구를 만나거나 그러진 않으셨고. 그러면 꼭 최근 일주일이 아니더라도 6개월이라든지, 비교적 최근에 있었던 일 중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사건 같은 것이 있으실까요?

나: 음...... 글쎄요. 생각이 나지 않아요.

상담사: 네. 그래요. 그러면 지난번 문장 완성 검사지에 답변하신 내용을 한번 다뤄볼까요?

나: 네.


상담사: 그래요. 여기에 답변하신 내용을 보면, 어머니에 대해서는 주로 '희생을 한다, 열심히 산다'라는 답변을 하셨는데, 어머니의 어떤 모습에서 이런 생각이 드세요?

나: 음...... 그러니까 저는 살면서 엄마가 활짝 웃는 모습이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제 기억에는 없어요. 늘 힘들고, 괴롭고, 마지못해서 사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거든요.

상담사: 음, 네. 그랬군요. 그러면 아주 어렸을 때 말고, 최근 한 5년 이내에 선생님이 느끼기에 '어머니가 희생하거나 힘들게 사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으세요?

나: 최근에는...... 제가 이사를 할 때인데요. 엄마가 제 이사를 꼭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마음에서 우러나서 즐겁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꼭 도와줘야만 한다는 어떤 의무감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몸도 아프니까 굳이 안 도와줘도 되는데 억지로 "그래도 엄마가 가야지. 도와줘야지."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상담사: 아. 그랬군요. 엄마가 그렇게 억지로 도와주겠다고 할 때 선생님의 느낌은 어땠어요?

나: 거부감이 들었어요.

상담사: 그랬군요. 반가운 게 아니고 거부감이 들었군요.

나: 네. 반은 거부감, 반은 안타까운 마음. 그랬던 것 같아요.

상담사: 그렇군요. 그럴 때 선생님은 거부감, 안타까움,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선생님의 욕구는 무엇일까요? 선생님이 바라는 것이요.

나: 음...... 제가 바라는 건....... 저렇게 억지로 의무감 때문에 하는 모습이 보기 싫고,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상담사: 아, 그렇군요. 선생님이 어머니한테 바라는 건, 억지로 의무감 때문에 하지 말고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는 는 거군요. 쥐어짜 내듯이 하는 게 아니라, 물 흐르듯이 즐겁고 기쁘게 해 줬으면 좋겠다는 거네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아, 네. 충분히 이해가 되네요. 굉장히 정상적이고요. 앞으로는 선생님의 그 정상적인 느낌과 욕구를 표현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어머니한테 선생님의 매우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욕구를 표현하는 역할극을 해보는 거예요. 빈 의자에 어머니가 앉아있다고 생각하시고, 선생님의 그 욕구과 감정을 언어인 말로 표현해보는 거예요.


'역할극'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 일종의 공포가 느껴졌다.


나: 하하. 선생님 그런데 그런 걸 하면 폭풍 눈물이 쏟아질 거 같아요. 너무 주체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상담사: 그러면 좋은 거예요. 감정이라는 것을 쌓아놓고, 눌러 놓잖아요. 그러면 이것들이 신체화가 돼서 나타날 때도 있고요. 이런 분들이 나중에 암이나 심장질환이 올 수도 있어요. 감정을 억압하는 게 이렇게 심각해요. 차라리 상담실에는 폭풍 눈물을 흘리는 게 더 좋아요. 차라리 그게 병을 예방하는 데 좋아요.

나: 음, 그렇군요. 그렇겠네요.

상담사: 마음껏 우세요. 여기 있는 휴지 다 쓰셔도 돼요. 정말 다 쓰세요. 하하하.

나: 네. 고맙습니다. 하하.


상담사: 자, 이제 그럼 다시 그때의 상황을 상상해볼게요. 선생님이 이사를 준비하는데,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을 하셨죠?

나: "내가 도와줘야지. 내가 가봐야지."라고요.

상담사: "내가 가봐야지."라고 했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선생님의 느낌은요?

나: 억지로 도와주려고 하니까 받는 사람도 불편하고......

상담사: 음, 불편해요. 선생님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거죠. 몸에 어딘가 뭐가 느껴져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그래서 좀 답답해요? 약간 경직되고요.

나: 음.....(가슴에 손을 대며) 뭔가 여기가 꽉 막힌 느낌?

상담사: 가슴이 꽉 막힌 느낌, 그 감정을 한번 느껴보세요. 그 감정을 지켜보면서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그 꽉 막힌 것이 무슨 색인 것 같으세요?

나: 검은색이요.

상담사: 검은색이군요. 그것을 이렇게 만져보면 딱딱한가요, 부드러운가요?

나: 딱딱해요.

상담사: 딱딱해요. 네. 그러면 크기는 어느 정도 돼요?

나: 주먹만 해요.

상담사: 주먹만 한, 딱딱한 것이 거기 들어있군요.

나: 네.

상담사: 그게 있어서 내 몸이 느끼는 것이 뭘까요?

나: 답답함......

상담사: 답답함이 있어요. 네. 그럴 거 같아요. 까맣고 돌덩이처럼 딱딱한 주먹 만한 것이 가슴 한가운데 있어요. 그리고 나는 답답해요. 그 돌덩이 같은 것이 잘게 부서져서 흩어지거나, 밖으로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다 녹아서 없어지던지, 그렇게 된다면 좋겠네요?

나: 네.


상담사: 맞아요. 그럼 그 돌덩이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을 한번 상상해볼까요.

나: 아이스크림 녹듯이 싹 녹아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어요.

상담사: 음, 네. 아이스크림. 그래요. 그 까만 아이스크림이 흐물흐물 녹아요. 한번 상상해보세요. 흐물흐물 녹아 점점, 서서히 흘러내려가요. 결국 녹아서 다 없어진다. 더 이상 내 가슴에 까만 돌이 남아 있지 않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서 다 없어져요. 아, 좋네요. 이제 우리가 이제 그렇게 만들어갈 거예요. 녹아 없어지도록 만드는 건, 선생님의 선택이 될 거 같아요.

나: 네. 그러네요.

상담사: 그런 말을 하는 어머니의 욕구는 무엇인 것 같으세요? 왜 그렇게 쥐어짜 내듯이 억지로 희생하려고 할까요? 선생님이 바라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해하는데도요.

나: 음, 아마도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욕구인 거 같아요.

상담사: 아, 어머니는 그렇게 억지로 희생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끼는 거네요. 어머니가 죄책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욕구 때문일까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걸까요?

나: 음, 아마도요.

상담사: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우리의 감정은 욕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어요. 욕구가 충족될 때 우리는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고, 이런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반대로 욕구가 좌절됐을 때 슬프고, 화가 나고, 짜증 나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거거든요. 그래서 '감정'아래에 있는 진짜 '욕구'를 알아줬을 때 깊은 공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상대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의 감정만, 그러니까 '그래 너는 지금 슬프구나.'이건 피상적인 거고요. 그 밑에 어떤 욕구가 지금 채워지고 있는지, 아니면 좌절되고 있는지 알아주는 게 진짜 깊은 공감이거든요.


나: 아, 그렇군요. 엄마의 일생이 너무 불행하고 불쌍하게 느껴져요.

상담사: 그렇게 느껴지시는군요. 결국 선생님은 엄마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거예요. 행복한 엄마를 보고 싶은 거죠. 그게 선생님의 욕구인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의 행복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예요.

나: 음, 그럴 수 있는 거 같아요. 그게 내 욕구인지, 내가 행복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상담사: 딸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행복한 엄마를 보고 경험했으면,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계속 불행하게 사는 걸 보면, 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어머니의 행복과 나의 행복이 분리가 잘 안 될 수도 있어요.

나: 네. 의식적으로 그냥 엄마는 엄마,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데....... 무의식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한 여자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멋있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도 왜 저렇게 밖에 살지 못할까..... 불쌍하고 안타까워요.

상담사: 음, 그렇군요. 특히 대상관계 이론 같은 걸 보면, 생애 초기에는 엄마하고 아이가 공생 관계라고 표현을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성장하면서 분리가 되고 성인이 되는 거죠. 그런데 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아직도 선생님은 아직도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분리가 덜 되어 있어서 선생님 자신의 행복을 만끽하고 즐기기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나: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상담사: 자, 그러면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공생관계라는 것은 결국 이 사람 느낌이 내 느낌이고, 내 느낌이 이 사람의 느낌인 거예요. 선생님의 의식은 지금 어머니와 분리가 되어있는데, 무의식이 아직도 연결이 되어있으니까 그 부분을 의식화하는 작업을 해야 해요. 선생님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하는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즉시 선생님의 감정을 알아차리세요. 느낌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아, 내 느낌이 이거구나. 내가 여기 지금 까만 돌덩어리가 들어있구나. 딱딱하구나. 답답하고 숨이 막힐 것 같구나.' 이렇게 이름을 붙여주세요. 그리고 그 느낌 밑에는 반드시 욕구가 있다고 말씀드렸죠?

나: 음, 네.


상담사: 그 욕구가 '나는 엄마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다.' 이렇게 이름을 붙여주세요. '엄마가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구나. 내가.' 이렇게 나의 진짜 욕구를 알아주세요. 이런 나를 자꾸 의식적으로 알아주세요. 이런 연습을 계속하다 보면 심리적인 근육이 발달돼요. 말로 중얼중얼해보세요. '내가 지금 이런 느낌이네.', '내가 지금 원하는 게 이거구나.' 이렇게 나를 알아주세요.

나: 네......

상담사: 그리고 선생님과 이렇게 상담을 하다 보니까 엄마의 거울 같은 모습이 있어요. 선생님은 굉장히 애쓰면서 살아왔어요.

나: 네 맞아요. 직장에서도 항상 '그렇게 까지 할 필요 없다. 지금도 충분하다. 제발 적당히 하시고, 대충 하셔도 된다.' 이런 말을 들어왔거든요.

상담사: 그러니까요. 선생님이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랑 똑같은 말을 들으신 거죠. 이게 엄마와 심리적으로 분리가 안돼서 그런 거예요.

나: 맞아요. 의식적으로는 분리가 됐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잠재의식 속에서는 분리가 안돼 자꾸만 엄마의 행동을 반복하고 따라 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까지' 했기 때문에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거니까요.


상담사: 네. 맞아요. 음과 양이 있듯이 밸런스가 깨지면 문제가 돼요. 너무 자신의 행복과 쾌락만 찾아서 살아도 안되고, 너무 의무만 쫓아서 살아도 안되고요. 특히 나의 욕구와 상대의 욕구가 어떻게 조화롭게 채워질 수 있을지,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거니까요. 엄마가 의무만 다하고 희생하면서 사는 거는 문제라고 할 수 있어요. 자신의 욕구도 적당히 채워가면서 상대와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것인데, 엄마는 자기가 다 하고 있는 거잖아요.

나: 맞아요. 저는 남편과 아이가 없으니까 직장에서 그게 나오는 거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칼퇴하기 바쁜데, 저는 다른 사람이 안 하면 나라도 해야 된다라고 생각하고 지나치게 애쓰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그렇게 했기 때문에 받은 인정과 보상도 있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선생님 말씀대로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제가 신이 아니니까 모든 것을 다 챙길 수는 없겠죠. 그걸 알면서도, 내가 안 챙기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상담사: 그런 불안감 같은 거......

나: 네. 맞아요. 불안함이 있으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계속 의식적으로 알아채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상담사: 네. 계속 알아차리세요. 내 감정이 뭐지? 아, 내가 이런 느낌이네. 이렇게요. 특히 몸이 느끼는 것이 사실 감정이거든요. 소름이 끼친다던가, 그런 것들이요. 몸의 반응이 바로 감정이에요. 그 감정 밑에 있는 욕구는 뭐지? 내가 원하는 것이 이것이구나. 이렇게 계속해서 알아줘야 해요.

나: 네. 선생님. 연습해야겠어요. 감사해요. 아, 오늘 눈물이 많이 나네요.

상담사: 그게 좋은 거예요. 그걸 눌러놓으면 정말 좋지 않아요. 저도 눈물 정말 많이 흘렸어요. 아주 많이, 정말 많이 울어봤어요.

나: 네. 고맙습니다. 말씀해주신 대로 실행해볼게요. 다음 주에 또 뵈어요.

상담사: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시고 다음 주에 봬요.


매번 심리상담을 진행할 때마다 크게 달라지는 것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심리상담을 받을 때 나의 심리상태를 떠올리면 많은 변화를 실감한다. 최소한 그때의 나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심리적으로 건강해진 것 같다.


우리는 성인이다. 아무데서나 울거나, 울고 싶다고 말한다면 어떤 취급을 받을지 안다. "울지 마세요." 대신에 "마음껏 우세요. 그게 더 좋은 거예요."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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