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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지안 Sep 23. 2020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물었다

6회차: 교통사고 트라우마가 있는 제가 운전을 하고 싶어 졌어요

선생님, 혹시 내일 상담을 오전 중에 줌(zoom)으로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보낸 문자 메시지에 상담사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다른 상담도 아니고 '심리상담'인 만큼 대면상담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난번에 마스크 없이 서로의 표정을 볼 수 있었던 화상 상담이 더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화상상담을 요청했다.


상담 약속 시간인 10시가 되기 몇 분 전에 받은 zoom 회의 링크를 클릭했다.


상담사: 한 주간 잘 지내셨어요?

나: 네. 선생님, 정말 신기한 게 첫 상담 때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1회부터 4회까지는 오히려 악몽을 꾸거나 기분이 다운될 수도 있는데 5회부터는 좋아질 거라고요. 그 얘기하셨는데, 진짜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신기해요.

상담사: 어머나, 그래요? 정말 다행이에요! 한숨 돌릴 수 있겠네요. 하하하.

나: 하하. 네. 정말 신기해요.

상담사: 네네. 정말 좋네요. 내담자가 힘들면 저도 어렵죠.

나: 네. 선생님.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선생님은 다른 사람 힘든 것을 들어주는 일을 하시잖아요. 아마도 엄청나게 행복한 사람은 심리상담을 안 받을 거 같은데.

상담사: 그렇죠. 행복하면 떠나죠, 이제.

나: 힘든 것을 들어주는 일이 , 그 자체로 힘들 수 있잖아요.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러 사람이. 그게 힘들지 않으실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상담사: 아유, 저를 또 이렇게 생각해주시네요. 하하.

나: 하하. 네. 저도 상담심리사는 아니지만, 일을 하면서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저의 상황에 따라서 항상 똑같이 차분하게 하기는 정말 어렵더라고요. 선생님은 어떻게 힘든 이야기를 차분하게 들어주시는지 궁금해요. 선생님만의 어떤, 방법이 있으세요?

상담사: 네. 좋은 질문이에요. 정말 좋은 질문인데, 그 질문을 듣고 보니까요. 음......'내가 어떻게 힘든 얘기를 계속 들을 수 있고, 또 차분하게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을 해보면요. 저는 희망을 붙잡고 있는 거 같아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지금 굉장히 어려운 마음이고, 굉장히 절망적이고, 너무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우울하거나, 여러 가지가 복잡한데, 이게 끝이 아니다. 이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사람은 회복될 수 있다. 노력하면 반드시 나아진다. 우리가 힘을 합쳐서 노력하면 더 빨리 나아질 수 있다. 정말 이렇게 믿고 있어요.

나: 아...... 확신을 가지고......

상담사: (확신에 찬 눈빛으로) 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람은 안 변해."라고 말하지만, 저는 상담사로서 '사람은 변한다'라고 믿어요. 그걸 믿으니까 상담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걸 안 믿으면 상담을 할 필요가 없죠.

나: 네. 그러네요.

상담사: 저는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진짜로 믿어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런 책도 있잖아요? 인생의 방향이 조금만 바뀌어도, 아주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도 5년, 10년 지나면 이렇게 크게 벌어지는 거니까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지만,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효과가 있다고 믿어요.

나: 아, 그렇군요. 아마 저는 그 정도로 확신이 없었나 봐요. 학부모님들 상담할 때요. 이 분이 저와 상담을 해서 나아지거나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확신 수준이, 그러니까 확신은 있었지만 선생님만큼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렇게 반반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확신 수준이 낮았던 거 같아요. 물론 그분들이 나아지게 하고 싶은 열정과 의지는 있었지만, 속마음은 잘 안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나 봐요. 그래서 힘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상담사: 네. 그러실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선생님은 단기간 내에 어떤, 성과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아주 작은 도토리가 나중에 아주 커다란 나무가 되듯이, 당장은 이 사람에게 큰 변화가 없다고 할지라도 이만한 작은 도토리 하나 심는 것, 그걸 하는 거예요.

나: 아, 네. 좋은 것을 또 배웠네요. 하하.

상담사: 하하.


나: 오늘 제가 선생님과 얘기 나누고 싶었던 게 있어요.

상담사: 네네. 말씀하세요.

나: 제 첫 상담 때도 말씀드렸었는데, 교통사고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그런데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해요. 그 전에는 차를 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차 속도가 빨라진다거나 갑자기 급정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너무 불안하고 그랬거든요. 제가 운전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요. 그게 약간 좋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지금 당장 운전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요. 그런데, 최근에 갑자기 운전을 하고 싶은 거예요.

상담사: 오호, 그래요? 그건 굉장한 변화예요.

나: 네. 맞아요. 저는 교통사고 나기 전에도 '나는 평생 운전을 안 하고 살 거야'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좀...... 뭐랄까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면허는 있어요. 하하. 면허가 있다는 것은 어쨌든 연습이나 시험으로라도 도로주행까지 했다는 거잖아요. 그때는 20대 초반, 아주 어릴 때여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한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운 거예요. 나도 다칠 수 있지만, 내가 누군가한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상담사: 오, 네. 그렇군요.

나: 그런데 제가 이런 얘기를 남들한테 하면, "그렇게 치면 할 수 있는 게 없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 이런 반응이었어요. 맞는 말이기도 하고요.

상담사: 네네. 그랬군요.

나: 나이가 들면서 점점 차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할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 저만 차가 없으니,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거나 신경 써야 하는 일이 생기더라고요. 약속 장소에 가더라도 저를 픽업 와야 한다거나 하는. 저도 불편하고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차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던 중에 세 번의 교통사고가 있었던 거예요. 몇 개월 사이에 연속으로 교통사고가 나니까 더 두려워지게 된 것 같아요.

상담사: 와...... 세상에나, 세 번이나. 그랬군요.

나: 네. 안 그래도 사고 날까 봐 불안하던 사람이 그 상황을 실제로 겪게 된 거죠. 상상 속 불안이 사실이 되어버린 거예요.

상담사: 네. 그렇게 되죠. 당연히. 사람은 위험을 겪으면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고, 위험을 피하게 되죠. 그게 우리의 기본적인 심리죠. 위험을 피하고 싶은 게 당연한 거예요. 그러면 오늘은 선생님의 교통사고 에피소드를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첫 번째 일어났던 사고는 언제였어요?

나: 첫 번째는 도로에서 터널로 진입하는 순간이었어요. 저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 터널로 진입하기 직전에 갑자기 '쿵'소리가 나는 거예요. 진동은 없었고, 소리만요. '쿵'하는 소리만 들려서 "이게 무슨 소리지?"라고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쿵'소리가 나면서 뒤에서 들이받더라고요.

상담사: 아, 그랬군요. 그래서요?

나: 그러니까 그게 4중 추돌인데, 저는 그 4대 중에 앞에서 두 번째 차에 타고 있었고, 맨 뒤의 네 번째 차가 세 번째 차를 '쿵'하고 들이받는 소리가 먼저 들렸던 거예요. 그다음에 세 번째 차가 밀리면서 다시 한번 '쿵'하면서 제가 타고 있던 차와 충돌한 거고요.

상담사: 아, 네. 그때 충격이 어느 정도로 느껴졌어요?

나: 그렇게 심하지 않았아요. 그냥 '쿵'하면서 몸이 앞으로 약간 쏠리는 정도?

상담사: 네. 충격이 심하지는 않았군요. 다친 데도 없고요?

나: 네, 전혀 다치지는 않았아요. 다치지는 않고 놀라기만 했죠. 그리고 터널로 진입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차들이 모두 속도를 줄이고 있었어요. 아무도 다친 사람은 없었어요.

상담사: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네요.

나: 네. 맞아요. 어쨌든 경찰이 와서 조사하고 보험 처리하고 잘 마무리됐어요. 결국 네 번째 차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했던 거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제 인생의 '첫 교통사고'가 생긴 거죠.

상담사: 아우, 진짜 그랬겠네요.

나: 네. 그렇지만 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지만 어쨌든 그때 불안의 씨앗이 생긴 거 같아요.

상담사: 네. 그랬군요. 그럼 그 후부터 차를 탈 때 더 불안해지셨어요?

나: 네. 맞아요. 사고 이후에 조수석에 앉아서도 자꾸 사이드미러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안 봤었는데. '뒤에서 오는 차가 안전거리를 잘 유지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사실 의미가 없는데. 제가 운전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그냥 불안한 거예요. 자꾸 확인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상담사: 음, 그랬군요. 아이고.


나: 그게 첫 번째였고, 확실히 큰 사고는 아니었어요. 두 번째는, 어느 날 친구와 술을 한잔하고 대리기사님을 불렀어요. 대리기사님이 오셨는데, 뭐랄까. 느낌이 좀 이상한 거 있잖아요. 아주 짧은 그 1,2초 사이에 그 대리기사님이 좀 어리숙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멀리 가는 게 아니니까 아무 말 없이 같이 술을 마셨던 차주인과 뒷자리에 탔죠. 운전은 대리기사님이 하고요. 뒷자리에서 계속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가고 있는데 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제가 가슴 쪽을 운전석 의자에 부딪혔어요. 그때는 좀 심하게 부딪혔어요.

상담사: 음, 그랬군요.

나: 조금 다치기는 했지만, 크게 다친 것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하지만, '왜 이렇게 자주 사고가 생기지?'라는 생각부터 오만가지 별의별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요, 그럴 수 있는 일이고 다행인 거예요. 그냥 이 세상에 정말 많은 차들이 있고, 그 골목에 가로등이 없고, 대리기사님은 마음이 급하셨겠죠? 빨리 다음 고객에게 가셔야 하니까요.

상담사: 네네. 그렇죠.

나: 그런 와중에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계속 남아있는 거예요. 그때 또 제가 운영하고 있던 학원 건물에 불이나기도 하고, 안 좋은 일이 계속 겹치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지? 뭐가 잘못됐나?' 이런 생각을 계속하게 된 거 같아요.

상담사: 네네. 그렇게 되죠. 그러니까 '왜 그러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 '내가 이렇게 힘들구나', '이렇게 사고가 나고, 이런 일들이 자꾸 생기니까 내가 참 어렵네.', '이게 누구 탓인지도 궁금해지고'. 왜 그러는지 궁금하다는 건 결국 원인을 찾고 싶은 거니까요. '이게 어디서 왔는지 내가 알고 싶어 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좀 바라봐주는 게 어떨까, 이런 생각이 드네요.


나: 아, 네. 맞아요. 그러네요. 그때 여러 가지 힘든 일이 겹치면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세 번째 사고가 결정적이었어요.

상담사: 음, 네.

나: 왜냐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고까지만 해도 '내 잘못이 아니야.', '친구의 잘못이 아니야'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뒤차의 졸음운전 여부를 알 수 있던 것도 아니었고, 사고를 낼 대리기사님을 미리 예측하고 선택할 수도 없는 거니까요. 그 생각으로 불안을 잠재우고 있었던 거 같아요.

상담사: 네네. 그렇죠.

나: 하지만 세 번째 사고는 친구인 운전자의 실수로 일어났어요. 그때도 저는 조수석에 타고 있었는데, 운전자인 친구가 직진신호를 좌회전 신호로 착각하고 좌회전을 한 거예요. 직진, 좌회전 신호가 동시인 경우가 있고 따로인 경우가 있잖아요.

상담사: 네, 맞아요. 그렇죠.

나: 직진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는데 좌회전 신호와 동시신호라고 순간적으로 착각한 거예요. 그렇게 좌회전을 했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직진하는 차가 있었고, 그 직진하는 차의 앞쪽과 제가 타고 있던 차의 오른쪽 옆면, 그러니까 제가 앉아있던 조수석이 심하게 부딪혔어요. 제 쪽으로 부딪혔으니까 저한테는 소리와 충격이 컸죠. 그때 조수석 쪽 바퀴가 날아가고 에어백도 터졌어요.

상담사: 와. 어머나, 세상에. 에어백까지요? 와.

나: 그런데 문제는요. 제가 그날 그 운전했던 친구에게 어디 바람 쐬러 가자고 했거든요. 제가 바람 쐬러 가자고 했을 때 그 친구는 사실 그날 좀 피곤하다고 하더라고요. 다음에 갔으면 하는 눈치였는데, 제가 가고 싶다고 하니까 제 의견을 따라준 거예요. 그랬는데 바람 쐬러 가는 길에 사고가 났으니, 제가 너무 큰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최근에 안 좋은 일이 너무 많았는데, 그냥 집에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굳이 나와서 내가 이런 일을 만들었나 싶은 거예요. 운전한 친구한테도 너무 미안하고요.

상담사: 음, 내가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하셨군요.

나: 네. 사고 후에 차에서 내리고 나서 제 몸을 보니까 다리가 부어오르고 (나중에) 피멍도 들긴 했지만, 뼈가 다친 건 아니고 멀쩡한 거 같더라고요. 운전한 친구도 멀쩡하게 서있는 거 보니 크게 다친 건 아닌 거 같았고요. 상대편도 걸어 다니는 걸 보니 다행이었고. 누군가 피를 흘리며 누워있다거나, 뭐 이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담사: 아, 네. 그러셨구나.

나: 하지만,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사고를 냈다는 것, 그것에 대한 어떤...... 죄책감. '내가 왜 그랬을까? 피곤하다는 친구에게 굳이 놀러 가자고 해서......' 이런 생각 때문에 너무 괴롭더라고요. 그런데 그 운전한 친구는 제 탓을 1%로 하지 않더라고요.  

상담사: 아, 그랬어요?

나: 네. 그 친구에게 그랬어요. 피곤하다는 사람한테 굳이 놀러 가지고 한 것도 저고, 그 사고가 발생한 그 시점에 집중을 못하게 말을 시킨 것도 저고, 모든 게 내 탓인 거 같다고요. 물론 운전한 친구가 신호위반이라는 과실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제 잘못도 큰 거 같다면서요. 그런데 그 친구는 전혀 제 잘못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100% 자기 잘못이라고요. 제가 놀러 가자고 했을 때 어쨌든 가기로 결정한 것도 자신이고, 그 전에도 차 안에서 계속 대화를 하면서 다녔기 때문에 특별하게 그때 말을 시킨 게 문제가 아니라, 신호를 착각한 본인의 잘못인 거라고요.

상담사: 음, 굉장히 합리적인 분이네요. 그 친구가요.

나:  네. 맞아요. 합리적이고 정말 좋은 친구예요. 어쨌든 저는 그때 간접경험을 한 것 같아요. 내가 아무리 조심하고 신경을 써도, 사람이 매초 매 순간 완전하게 집중할 수는 없는 것이고, 순간 몇 초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러다가 뭔가가 잘 맞지 않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사고가 나기 전에는 의심(걱정)만 하다가 그 사고 이후에는 현실로 마주하게 된 거예요.


상담사: 아, '사고는 피할 수가 없구나. 방안에만 있던지, 걸어만 다녀야 해.' 이런 생각이......

나: 네네, 맞아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차를 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럼 이제 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차를 탈 것인가 아니면 차 없이 평생 불편하게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남는 거죠. 거기에서 결국 '나는 운전을 안 하는 게 낫겠다.'라는 결론을 내고 지내고 있었어요.  

상담사: 오, 그러셨구나.

나: 그러다가 최근에 친동생 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유롭고 편하게 다니는 동생의 모습을 보면서 부럽다고 해야 할까요? 음,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선생님하고 상담을 하면서 약간 생각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상담사: 네. 그랬군요. 저하고 상담하면서 어떤 점이 선생님을 좀 자유롭게 한 거 같으세요?

나: 음...... 일단 첫 번째로 '자기 수용'을 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상담을 하기 전에는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과 똑같은 말을 다른 사람에게 들었어도, 이렇게까지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항상 '너의 생각은 잘못됐어.', '그건 아니야.'는 식으로 말하니까 그러한 태도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맞는 말이라도 자꾸 안 들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상담사: 네. 그렇죠. 선생님은 자율성이 참 중요하죠. 이건 모든 사람이 그래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조금이라도 강요로 느껴지면, 탁 쳐내게 되는 거니까요. 그만큼 인간에게는 자율성이 중요한 거예요. 내가 선택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그게 자율성이지요. 저와 상담을 하면서 선생님의 자율성이 존중받았다고 느끼신 건가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매우 기뻐하면서 두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와! 정말 다행입니다!

나: 하하. 네. '자기 수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그 마음 상태를 만들어주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요. 그러다 보니까 저 자신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 거고요. 저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되었어요. '너 뭐하고 싶어?', '어떤 것을 원해?'라고 물어보게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이거 제대로 해야 해.', '그 정도 가지고 힘들어서 뭘 제대로 할 수 있겠어?'라는 식으로 일방적으로 다그쳤다면, 지금은 (민주적으로) 대화를 하는 거죠. 하하.

상담사: 오호, 네네.

나: 나 자신과의 대화를 하다 보니 '내가 차를 운전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보였고, 그 욕구를 수용하고 싶더라고요. 예전처럼 '그거 위험해.', '사고 나려고?'이런 식으로 찍어 누르는 게 아니라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최근에, '나도 운전을 해볼까?'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며칠 전에는 심지어 저도 모르게 유튜브에서 차 리뷰를 보고 있더라고요. 하하하.

상담사: 하하하. 그랬군요. 여기서 '저도 모르게' 이게 정말 중요한 말인데요. 나도 모르게, 즉 '무의식적으로'라는 의미잖아요? 생각을 하고 계획해서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요.

나: 네네. 맞아요.

상담사: 이런 것을 정신분석학에서는 '무의식을 의식화하는 작업이다' 이렇게 얘기해요. 무의식에서 나도 모르게 자동반응을 하면서 억압했던 것들을 의식세계에서 다루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선생님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무의식이 의식화된 것이죠. 의식의 세계로 꺼내놓고 보니까 '이게 이렇게 두려워해야 할 일인가?'라고 하면서 두려워하는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고요. 전에는 아예 안 들여다보고 그냥 묻어두기만 했는데, 그걸 들여다보게 됐다는 거잖아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와. 정말 많이 달라지고 계시네요.

나: 네. 아마 제 지인들이 제가 운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제가 워낙 차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부정적으로 생각해야 내가 차를 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를 수 있으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너무 편협하고, 좀 뭐랄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상담사: 아, 그렇군요. 참 반갑네요.

나: 네. 하하. 그리고 또 조금은 무서운 생각도 들었어요. '아, 차에 관련된 것 말고도, 또 이런 식으로 내가 편협하게, 잘못 생각하는 게 있지 않을까, 아니 많은 것 아닐까?'라고요.

상담사: 그랬군요. 떠올려보시면, 또 뭐가 있을까요? 운전 말고, 선생님이 위험을 두려워해서 피하고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요?

나: 음...... 결혼도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상담사: 네. 저도 사실 살짝 그런 생각을 좀 했어요.


정말 뜨끔했다. 운전보다 더 근본적인, 아니 더 본질적인 무언가를 마주친 기분이었다.


나: 너무 두려우니까. 엄마처럼 살까 봐 너무 두려우니까요......

상담사: 맞아요. 선생님, 이런 게 있어요. 내가 어떤 한 가지에서 상처를 크게 받고 그걸 피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러면 이게 다른 영역에도 전염이 돼요.

나: 아......

상담사: 네. 심리적으로 전염이 돼요. 그게 일종의 패턴이 되는 거예요. 내가 이게 무서워서 피해요. 그리고 다른 게 또 무서워서 피하게 되고요. 이런 식으로 피할 게 계속 많아지는 거예요.

나: 아.....


신선한 충격이었다.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상담사: 자, 이제 곧 마무리할 시간이니 오늘 상담을 정리해봐요. 오늘 선생님이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하셨어요. '나도 모르게' 운전을 해보려는 생각을 하고, 차에 대해 알아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는 거요. 굉장히 좋은 이에요. 선생님이 '억압된 나'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거니까요. 사실 정신분석에서 가장 원초적인 방어기제가 바로 '억압'이거든요. 그런 억압에서 지금 자유로워지고 있으신 거니까 굉장히 반가운 사인이 지금 보이고 있네요.

나: 네.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하하. 정말 감사해요.

상담사: 아니에요. 선생님이 심리상담을 받아보겠다는 선택을 하신 것, 이건 선생님이 지혜로운 거예요.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선택을 하고, 그걸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정말 힘이 없는 분들은 아예 상담실을 못 오세요. 너무 안타까워요, 사실은.

나: 아, 정말 그렇겠네요.

상담사: 네, 선생님은 정말 지혜로운 선택과 실행을 하셨어요. 자, 그럼 이번 한주 동안은 '내가 어떻게 이런 회피하는 패턴을 갖게 되었나?'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고, 다음 상담시간에 저와 또 얘기를 나누면 좋겠어요.

나: 네, 알겠습니다. 잘 생각해볼게요. 오늘도 정말 감사했어요.

상담사: 하하. 별말씀을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도 고맙네요. 한 주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고, 다음 주에 봬요.


나는 내가 진취적으로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만들고, 실행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번번이 그런 욕구들은 나에게 위험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어떤 패턴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분명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데,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그게 되겠어?', '그러다가 큰 사고나 나지.'라는 억압의 소리가 가득했다.


아직은 의식화되지 않은, 더 많은 무의식 속의 부정적인 생각의 패턴들을 찾아서 의식의 세계로 끌어내고 싶어 졌다. 뭐가 있을지 몰라서 두려운 마음에 꼭꼭 숨겨뒀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볼 용기가 생겼다. 용기가 생기니 불안하고 막막했던 미래가 조금씩 희망적인 이미지들로 변해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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