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주 동안은 줌(zoom)으로 상담을 했기 때문에 3주 만에 다시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상담사: 어서 오세요.
나: 네. 안녕하세요.
상담사: 오늘은 방이 바뀌었어요. 옆방으로 옮겼어요. 하하. 건강하셨죠, 그동안?
나: 네. 덕분에요.
상담사: 그래요. 다행이에요. 물 하나 갖다 놨어요. 혹시 목마르시면 드시라고.
나: 아이고, 네. 감사합니다.
상담사: 하하 별말씀을요. 지난주에 교통사고에 대한 얘기를 하시면서, 세 번의 교통사고요. 그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이제는 조금 자유로워져서 '운전을 해볼까?'라고 생각을 하시게 되었고요.
나: 하하하. 네.
상담사: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세요?
나: 음, 네. 지난주에 선생님이 뭔가를 회피하려는 마음이 심리적으로 전염이 된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서 선생님이 차 운전 말고도 또 다른 부분에서 회피하는 것들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셔서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지난주에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도 그렇고요. 또 차분히 생각을 해보니까 모든 인생 전반에서 '실패'라는 것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상담사: 음, 실패가 두려우세요?
나: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정말 웃긴 게 제가 항상 아이들이나, 학부모님들, 선생님들한테 '실패를 해야 배우는 것이 있고, 우리는 모두 실패에서 배우고 성장한다'라고 말하고 다녔거든요. 제 스스로도 진짜로 그렇게 믿었고요. 하지만 그렇게 믿은 건, 의식 파트에서만 그랬던 것 같아요. 무의식은 실패를 회피하고 있는 거죠.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면서요.
상담사: 음, 무의식에는 두려움이 계속 있다는 말씀이군요.
나: 네. 제 진짜 욕구는 진취적으로 일을 벌이고, 사람을 모으고, 제가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것들을 실현시켜서 내 아이디어가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 사람들이 그것을 찾고, 좋아하고,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것...... 이런 것들을 너무나도 즐기고 좋아하는데, 두려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상담사: 그래요. 아무리 두려워도, '두렵지만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가는 것과 두려우니까 계속 피하는 것은 다른 거니까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그런데 선생님은 학원도 운영을 해보셨고, 사업을 이끌어 보셨지 않나요?
나: 네. 제가 운영을 한건 맞지만, 어쨌든 제 돈으로 하는 사업은 아니었으니까요. 만약에 잘못되더라도 제 인생이 무너지거나 하는 리스크는 없잖아요. 직장을 잃을 수는 있지만, 퇴직금도 있고, 빚더미에 오른다던가 하는 일은 없는 거죠. 그리고 직원들의 퇴직금 같은 부분도 제가 책임지는 건 아니니까요. 회사에서 책임지죠.
상담사: 음, 그렇군요. 그러네요.
나: 네. '나는 왜 진취적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있음에도 실패나 위험이 두려워서 안전한 길만 찾을까?' 하는 의문점이 생겼고, '이런 두려움이 어디에서 왔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된 거예요.
상담사: 아, 두려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해지셨군요.
나: 네. 두려움 때문에, 저의 원래 성향이나 욕구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계속 가게 되는 것 같아서 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상담사: 음, 그렇군요. 그럼 선생님의 기억 속에 실패를 해서 욕을 먹었다거나,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나요? 아주 하찮은 것이나 작은 것이라도요.
나: 글쎄요. 그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딱히 없는 것 같아요. 늘 안전을 추구하는 선택만을 했기 때문에 그렇겠죠.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상담사: 그렇군요. 선생님이 기억이 나는 것들 중에는 딱히 실패한 경험이 없는데도. 사실, 정신분석에서는 의식 속에 남아있지 않은 경험들이 몸에 남아있다고 해요. <Body keeps the score (몸은 기억한다)>라는 책에도 나오고요. 그러니까 주로 3살 이전이죠. 그 책에서는 3살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것이 내 무의식과 몸에 남아있어서 자동반응을 한다, 이렇게 주장을 해요. 3살 이전은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엇이든지 그냥 쭉 흡수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는데, 지금 내 의식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그때 벌어졌던 사건과 관계를 통해서 내 성격의 기초가 잡힌다는 얘기를 하죠.
나: 아, 그렇군요. 제가 뇌과학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요. 그분 말씀이...... 너무 괴로운 기억 같은 경우에, 그러한 기억들이 아예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분명히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자신이 스스로 자물쇠로 잠그듯이 잠가버렸기 때문에 기억이 안 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상담사: 네. 그래서 때로는 어떤 트라우마가 몇십 년이 지나고 기억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나중에.
나: 와, 네. 그렇군요. 동생하고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동생은 굉장히 세세한 에피소드를 기억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상담사: 어머, 동생보다 나이도 더 많았는데 기억이 전혀 안 나시는 거네요.
나: 네, 그러니까요. 얘기를 듣고 보면 그랬을 것 같다는 느낌은 있지만, 그 장면이나 상황이 기억나지는 않더라고요. 아마 저도 부정적인 기억을 자물쇠로 잠가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무섭더라고요.
상담사: 그랬군요. 동생이 얘기한 에피소드를 하나만 말씀해보실래요?
나: 어렸을 때 늘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면 엄마가 '네가 뭘 해? 그게 되겠어?'라는 반응을 했다고요. 무시하는 듯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가슴에서 무언가 감정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기분 나빴던 그 감정이요. 그런데 저와 관련된 어떤 사건이 기억나진 않아요.
상담사: 음, 엄마한테서 그런 말을 들었군요. 아, 선생님. 이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어린 나이에 엄마로부터 그런 얘기를 계속 들으면, '나는 무엇이든지 해봤자 실패할 거야.'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굳어지게 되거든요.
나: 네. 맞아요. 그렇죠. 그런데, 선생님. 저는 오히려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이 하나 또렷하게 남아있어요.
상담사: 오호, 그래요? 그게 뭘까요?
나: 제가 초등학교 때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가기 싫어서 학원을 빠졌는데, 엄마가 그걸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학원 선생님한테 전화를 받고 다 알면서도 학원을 결석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날 목욕탕에 데리고 가서 목욕을 하고 우유였나, 아이스크림이었나, 아무튼 그런 걸 사줬던 기억이요. (제가 무의식적으로 일부러 좋은 것만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는 걸까요?)
상담사: 음, 그랬군요. 좋았던 기억은 나는데, 무시받거나 하는 구체적인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사실 이것도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방어기제 중 '억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안 좋은 기억은 확 눌러버려서 아예 기억도 안 나게 하는 거죠.
나: 네, 맞아요. 그런가 봐요.
상담사: 바로 그 '억압'이 선생님이 살아남는 기술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선생님이 살아날 수 있으니까. 그때는 그게 잘 먹혔던 거예요.
나: 맞아요.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고 직책이 올라가면서 사회적인 기대치가 높아지고, 저 자신도 욕심이 더 생기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무언가를 시도할 때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계속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상담사: 그렇죠. 무의식에 각인이 되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건 하면 안 돼'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거죠.
나: 네, 맞아요. 선생님하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어렸을 때를 돌아보기도 했지만, 최근 3~4년 이내의 과거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됐거든요. 최근에도 상사나 직장동료들이 제가 한 일에 대해 칭찬을 했을 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나를 띄워주려고 하는 말이겠지.'라는 식으로요. 그냥 기분 좋으라고, 의례 하는 말로 생각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무리 크게 칭찬을 해도 저는 저 스스로 '저 사람이 좋게 말해주는 것뿐이지, 사실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상담사: 음, 네. 그랬군요. 그러한 칭찬이 '팩트'라고 생각하지 않은 거네요. 그러니까 선생님을 정말 칭찬해주고 지지해주는 발언에 대해서...... 이렇게 튕겨내는 거네요?
나: 네. 맞아요. 겸손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제가 한 일이 그렇게 가치 있거나 대단하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상담사: 아, 실제로 그렇게 믿으면서. 아이고, 세상에. 그랬구나.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생각의 패턴이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지금 과거의 엄마로부터 받았던 무시라던지, 이런 것들에 대한 구체적인 사건이 전혀 기억이 안 나 시는 거잖아요?
나: 네. 그랬을 거 같다는 느낌은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은 기억이 안 나요. 사실 동생처럼 기억이 난다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만약 내가 무의식적으로 자물쇠로 잠가놓은 것이라면, 그런 나쁜 기억을 굳이 열 필요가 있을까 싶고요.
상담사: 그래요. 상담에는 여러 가지 접근이 있어요. 과거의 문제를 다루는 접근이 있고, 현재에 집중해서 하는 접근 방식도 있어요. 어차피 과거는 기억이 잘 나지 않으니까, 최근의 에피소드로 얘기를 한번 해볼까요? 혹시 그러면 최근에 누군가가 선생님에 대해서 칭찬을 했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나: 네. 아주 최근의 일인데, 이전에 회사에서 저를 채용하셨던 분을 만났어요.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본인이 20년 이상 사회생활을 했지만 저같이 진정성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요. 이렇게까지 성실하고 진심으로 자기 일에 충실하고 결과까지 만들어내는 사람은 처음이라면서요. 지금까지 보여 준 것도 놀랍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다고.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한계가 어디까지 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요.
상담사: 어머나, 네. 엄청난 칭찬이네요!
나: 네, 맞아요. 물론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감사한 마음이 들죠. 하지만 더 주요한 마음은 '아, 이분이 실제보다 나를 너무 좋게 보시는구나.', '내가 뭘 더 보여줄 수 있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였어요.
상담사: 아, 그러셨군요. '아, 감사하다. 나를 알아봐 주네?' 이런 게 아니고.
나: 그런 마음이 있긴 있는데, 그것 보단 일단 두려움...... 내가 뭘 더 해야 하지? 뭘 더 보여줘야 하지? 어떻게 하지? 나는 그럴 능력이 없는데...... 이런 생각이 앞서는 것 같아요.
상담사: 아....... 네. 그러시구나. 두려움이 자꾸 나오는군요. 사실 우리 안에는, 내가 한 사람인 것 같지만, 생각도 여러 가지가 있고, 여러 감정들도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 뜨고 있는 치료법 중에는 '내면 가족 치료'라는 게 있어요.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부분들이 어떻게 역할을 하고, 상호작용 하는가에 대한 거예요. 그런데 지금 선생님 안에는 두려움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목소리가 큰 상황이네요.
나: 아, 네.
상담사: 의도는 좋아요. 나를 보호하고 싶은 거예요. 실패로부터 나를 지키려다 보니까, 두려워야 나를 지킬 수 있는 거잖아요. 음, 심상 기법으로 한번 상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눈을 한번 감아보세요. 그리고 최근에 만난 그분이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세요. "선생님처럼 그렇게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나도 선생님만큼 진정성 있게 일을 할 자신은 없는데, 선생님은 정말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듣고 있는 나를 지긋이 바라봐주세요.
나: 네.
상담사: 그 얘기를 듣는 내가, 선생님이 생각하는 평화로운 곳. 지난번에 말씀하신 제주도 해변에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그 평화로움을 한번 느껴보세요. 그리고 평화로운 마음을 가진 내 귀에 누군가가 "당신은 참 성실하네요.", "당신은 정말 능력이 있어요."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내 마음 상태는 계속 평화로워요. 그리고 그런 말이 잔잔한 파도가 찰싹이듯이 내 귀에 들렸어요. 그 말을, 마음을 열고 한번 받아들여보세요. 가슴으로 느껴보세요. 그 말이 나에게 주는 느낌을요. 그리고 나에게 '아, 나는 성실하다. 내가 성실해서 참 좋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구나. 이런 성실함과 능력이 있어서 참 좋다. 나는 내가 좋다. 나는 나에게 감사해.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속으로 말해주세요. 자, 이제 눈을 서서히 떠보세요. 지금은 어떤 느낌이신가요?
나: (3초 정도 침묵이 흐르다가) 음, 혼란스러워요.
상담사: 음. 혼란스러우시군요. 어떤 생각이 떠올라요?
나: (다시 5초 정도 침묵이 흐르다가) 어렸을 때 엄마가 '사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한 것들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떠오르네요.
상담사: 엄마가 사람에 대해서 어떤 부정적인 말을 했을까요?
나: 어렸을 때부터, 뭐 최근까지도 마찬가지지만요. 미디어에 나오는 부정적인 뉴스들 있잖아요. 뉴스에 나오는 성범죄, 강도, 살인 같은 끔찍한 같은 사건들...... 그런 것들을 저에게 끊임없이 얘기해요. 물론 걱정되고 조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지만, 부정적인 얘기를 계속해서 들으니까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 '사람'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자리잡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상담사: 어머니가...... 아, 저런. 그럼 제가 선생님한테 심상 기법으로 상상해보라고 했을 때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계속 떠오른 거예요?
나: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왜 칭찬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하지?'라고 생각하다 보니까, 제가 사람을 이렇게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이유가......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들어온 부정적인 말, 그러니까 엄마의 언어로 제 무의식 속에 새겨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상담사: 아, 그렇군요. 충분히 가능하죠.
나: 정말 사람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상담사: 아이고, 저런.
나: 그런데 사실 사회생활하다 보니까, 웬만한 사람들은 다 정상이에요. 범죄자도 아니고요.
상담사: 그럼요. 정상이죠.
나: 네. 맞아요. 특히 제가 활동하는 범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상담사: 그럼요. 그 뉴스에 나오는 건 0.1%잖아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그러셨구나....... 정말 힘드셨겠어요. 지금 보니까 어머니로부터 계속...... 그러니까 작은 트라우마가 오래 쌓인 거예요. 뭔가 아주 큰 하나의 사건으로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은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장기간에 걸친 부정적인 말들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였다고 봐야 해요. 사실은, 이게 하나의 큰 트라우마 보다 더 힘들다고 볼 수 있어요.
나: 아....... 그렇군요. 강펀치는 아니지만 계속 잽을 날리는 것과 같은 거네요?
상담사: 네. 맞아요. 그게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는 거죠.
나: 네. 그래서 요즘은 부정적인 기사도 일부러 잘 안 봐요.
상담사: 맞아요. 볼 필요 없어요. 도움이 안 돼요.
나: 이것도 극복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겠죠?
상담사: 네. 시간이 필요하죠. 자, 이제 상담을 마무리할 시간이에요. 오늘 상담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있으세요?
나: 네. 그 전에는 이전 상담에서는 어렸을 때나, 시간이 많이 지난 과거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오늘은 가장 최근의 에피소드 얘기를 했던 것이 좋았어요.
상담사: 음, 네. 그러셨군요. 사실 저와 지속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상담하시는 분들은 최근 1~2주 사이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오세요. 가장 최근의. 그리고 그때 나의 생각, 욕구, 감정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저랑 얘기를 나누거든요. 선생님도 그렇게 하셔도 돼요.
나: 네, 좋습니다.
상담사: 오늘 상담을 정리해 볼게요. 결국 선생님이 회피하는 패턴은 선생님의 어떤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걸까요?
나: 부정적인 경험을 피하려는 싶은......
상담사: 네. 맞아요. 보호하려는 거예요. 나를 보호하고 싶은. 안전하고 싶은 거예요. 엄마가 계속해서 범죄자에 대한 얘기를 하니까, 나는 그런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고 안전하게 살고 싶은 거예요. 안전에 대한 욕구가 엄청 크다 보니까 회피하게 되죠. 조금이라도 위험의 소지가 있으면 회피하게 되는 거예요.
나: 네. 맞아요.
상담사: 음, 네. 그런데 사람에게는 욕구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안전에 대한 욕구도 있지만, 예를 들면 자율성이나 성취라던지, 친밀한 관계, 이런 욕구들이 다 중요한데, 안전만 붙잡고 있으니까 다른 욕구들이 무시당하고 있는 거죠.
나: 네. 맞아요. 정확해요. 하하하. 그래도 뭔가 상담을 통해서 변화가 느껴져요. 운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요.
상담사: 네. 정말 좋은 소식이에요. 이번 한주도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또 뵈어요.
나: 네. 선생님도 연휴 잘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 뭔가 굳어져 있던 것들을 헤집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혼란 속에서도 내가 할 일만큼은 분명했다. 나 자신에게 세상은 충분히 안전한 곳이라고 말해주는 것. 이 세상 사람들도 안전하다고 계속해서 말해주는 것. 나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