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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작가 Mar 07. 2020

[4]실패한 음악가의 커피, 블루보틀

제2의 인생, 신선함으로 승부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꿈이란 존재하는 걸까. 인생을 걸고 땀흘리고 공을 들였지만 오르지 못하는 장벽을 느낀다면 그땐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예술가의 삶을 살고 싶었지만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 남자가 선택한 건 커피였다.


블루보틀은 '스토리를 지닌 커피'다. 스토리 때문에 더욱 맛있게 느껴지는 커피다.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커피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과정을 들여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블루보틀커피의 매력이 느껴진다.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클래식 음악가였다. 12세 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클라리넷을 점검하고 연습하며 멋진 음악가로서의 삶을 꿈꿨다. 물론 미국이나 한국이나 클래식 음악으로 먹고 사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가난한 음악가. 밥은 굶고 살지 않았다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구걸해도 부지런하기만 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바다 건너 북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면 5시간 넘게 걸리는 훔볼트 카운티. 미국에서 카운티는 통상 시보다 넓은 지역 단위다. 제임스 프리먼은 훔볼트 카운티의 필드브룩(Fieldbrook)이라는 동네에서 자랐다. 이 동네는 레드우드(미국 삼나무)가 울창하고 태평양 연안에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레드우드국립공원이 있는 곳이다. 언젠가 한번 가봤는데, 정말 곧게 뻗은 삼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그런 곳이었다. 소년은 태평양 해안가의 자욱한 이슬을 먹고 사는 삼나무들을 보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주정부 공무원으로 근무했고 어머니는 주부였다.

 

클라리넷이 배우고 싶어 철학을 공부하다?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샌타크루즈 캘리포니아대학(UC Santa Cruz)에 진학한다. 자동차를 타면 그가 살던 곳에서 남쪽으로 6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학교다. 음악으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었다. 전공은 철학. 그런데도 이 대학에 진학한 이유는 찾아가 배우고 싶은 클라리넷 연주자가 근처에 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동으로 쓴 책 <블루보틀 크래프트 오브 커피>(유연숙 옮김, 2016)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유명한 클라리넷 연주자인 로사리오 마체오 선생님의 개인 지도가 받고 싶어서 산타크루즈(책에선 산타크루즈로 표기) 카운티에 있는 캘리포니아대학에 등록했다. 로사리오 선생님은 캘리포니아대학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카멜(Carmel)이라는 도시에 살고 계셨다. 나는 카멜에 가서 하루에 네 다섯 시간씩 로사리오 선생님의 지도를 받는 동시에 철학 학위를 받기 위해 학점을 꽉 채워 듣고 쏟아지는 과제들을 열심히 해내가며 노력했다.”


명성 있는 클라리넷 스승을 찾아 학교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는 CareerLab 인터뷰에서 “소수의 학생들과 함께 오디션을 통해 로사리오 선생님에게서 배울 수 있게 돼 산타크루즈 지역으로 가게 됐다. 그래도 학위는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철학이 그 중에서 끌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스승으로 삼은 로사리오 마체오(Rosario Mazzeo). 22세에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연주자가 된 '로사리오 선생'은 33년 동안 같은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1881년 첫 콘서트 이후 지금까지 활발히 연주 활동을 해온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오케스트라. 그리고 마체오는 동시대 최고의 클라리넷 연주자 중의 한 명이었다.  

 

일류가 되지 못한 '노마드 음악가'의 삶

 

자서전 격의 책 <블루보틀 크래프트 오브 커피>를 보면, 프리먼은 대학을 졸업한 뒤엔 뉴욕으로 가서 유명한 클라리넷 교수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8년 동안 클라리넷 연주자로 일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음악원(San Francisco Conservatory of Music)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후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로 구성된 '프리웨이 필하모닉'이라는 소규모 교향악단에 들어가 10년 정도 활동했다.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했지만 음악가로 성공하진 못했다. 연주자로서 정말 원하는 자리에 도전했지만 오디션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1999년 연주자의 삶을 그만 뒀다. 

음악가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는 사라졌다. 목표를 잃은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패배자가 된 걸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었을테니 말이다. 그는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열 두 살부터 서른 네 살까지 22년 동안 매일 같이 어떻게 하면 클라리넷을 더 잘 연주할 수 있을지 생각하며 살았다”고 했다. 그에게 클라리넷은 인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음악가의 삶을 접은 그는 닷컴 거품이 꺼지기 직전 친구들이 일하던 인터넷 음악서비스 회사에 들어가 일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래도 음악과 관련된 회사였다. 몽고뮤직이라는 회사였는데, 이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되면서 MS 본사가 있는 시애틀로 가서 잠시 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고됐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와 동료들이 수작업으로 하던 음악취향 분석 작업을 자동화하면서 할 일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해고된 날을 정확히 기재했다. 2001년 9월 11일이었다(뉴욕에서 참사가 난 바로 그날이다). 직장에서 해고된 날 블루보틀 창업의 씨앗이 뿌려졌다.  

 

제2의 인생, 커피


음악가의 꿈을 접은 뒤 잠시 인터넷 음악서비스 회사에 몸 담았던 그가 해고 뒤에 찾은 일이 커피 로스팅이었다. 클라리넷 연주와 커피 로스팅은 전혀 딴 세상 일이다. 다만 프리먼의 경우, 커피는 음악 외에 그가 중독돼 있었던 유일한 대상이었다. 이제 나는 뭘 해야 할까. 뭘 하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음악 빼고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보니 커피만 남았던 것이다.

제임스 프리먼은 '커피 너드(nerd)'였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겠다며 볶지 않은 커피콩(생두)을 사서 집 주방의 오븐에 넣어 로스팅을 했을 정도였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 때도 원두와 수동 그라인더, 여과지 등을 챙겨 갖고 다니며 승무원에게 뜨거운 물을 부탁해 커피를 내려 마실 만큼 극성(?)이었다.  

그가 커피 맛을 음미하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이 있던 샌타크루즈 시내에는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신선하게 드립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들이 나름 인기를 끌며 영업을 했다. 이런 카페에 가서 로스팅한 원두를 산 뒤 집에서 커피를 그라인더에 갈고 여과지에 담아 드립 커피로 내려 마시면서 신선한 커피의 매력에 빠졌던 듯 하다. 가끔 샌타크루즈에 가곤 하는데, 갈 때마다 아마도 제임스 프리먼이 드나들었을 오래 된 카페를 찾아가곤 한다.


오클랜드 멕시코음식점 원예창고

 

블루보틀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 중 하나가 오클랜드 멕시코음식점의 원예창고다. 2001년 9월 음악서비스 회사에서 해고된 프리먼이 커피 사업을 시작한 출발점이 바로 이 창고였다. 해고된 뒤 얼마 동안 뭘 하고 살아야 할지 궁리도 하고 고민도 하다가 남은 선택지는 커피 뿐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프리먼은 커피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를 염두에 둔 게 아니라 신선하게 커피콩을 볶아 원두를 판매하는 사업을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600달러(2019년 기준 약 866달러, 자료 saving.org) 월세에 오클랜드의 한 멕시코음식점 원예창고를 빌렸다. 음식점이 저녁 손님을 받기 위해 문을 여는 오후 5시 이전에 로스팅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연기도 많이 나고 소리도 시끄러운 작업이라 음식점 영업 시작 전에 끝내야 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자신의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제임스 프리먼이 원예창고를 빌려 로스팅을 했던 레스토랑, 도냐 토마스. 사진: 황작가


도냐 토마스 레스토랑 안쪽에 있는 바로 그 '원예창고'. 사진: 황작가

원예창고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동네에 있는지 궁금해 직접 찾아가 봤다. 프리먼이 원예창고를 빌렸던 멕시코음식점 이름은 도냐 토마스(DOÑA TOMÁS). 창고는 안 쪽에 자리하고 있어 확인하는 일은 좀 눈치가 보였다. 토요일 오후에 찾아갔는데, 영업 중이라 손님들이 야외 테이블 의자에도 꽉 차 있었다. 일행을 찾는 시늉을 하며 야외 테이블을 살펴봤다. 바로 그곳에 삽이며 각종 공구를 넣어둘 법한 작은 창고가 있었다. 혼자 들어가 커피 로스팅을 하면 꽉 찰 것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는 2002년 8월, 오클랜드 파머스마켓에서 처음으로 로스팅한 커피 봉지를 팔기 시작했다.


그가 원예창고를 빌리고 로스팅한 커피를 팔기 시작한 도시 오클랜드. 오클랜드는 외부인이 선뜻 호감을 가질 도시는 아니다. 샌프란시스코와 그 주변 지역 중에서 치안 상황이 좋지 않은 도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2018년 오클랜드의 살인 사건 발생 숫자가 지난 19년 동안 최저로 떨어졌다'는 게 뉴스에 나올 정도다. 1968-2018년 오클랜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사망자는 총 5147명이었다. 오클랜드 인구(2017년 발표 수치)는 약 42만5000명이다.


오클랜드는 주변 도시들보다 저소득층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역이다. 2013-2017년 미국 인구통계국 자료를 보면, 주민 1인당 연소득은 3만7000달러로 빈곤층 비율이 18.7%에 이른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1인당 연소득은 5만9000달러, 빈곤층 비율은 11.7%다. 그래서 집값, 월세도 상대적으로 싸다. 제임스 프리먼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오클랜드 원예창고를 빌린 데엔 월세가 싼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신선함에 집착하다

 

그렇게 오클랜드의 원예창고를 빌려 사업을 시작한 그가 가장 중시한 건 신선함이었다. '언제 볶았는지 표기한 원두를 팔자.' 그는 대중이 좋아하는 맛을 추구한 사람은 아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어떤 맛을 원하는지, 어떤 커피가 그래서 유행하는지, 인기 있는지, 이런 것들은 관심사 밖이었다. 좋은 원두를 제대로 로스팅한 커피, 로스팅 이후 오래되지 않은 커피, 그래서 맛있는 커피, 내가 좋아하는 커피, 이런 커피를 팔자는 생각이었다. 품질 좋은 커피를 팔면 사람들도 당연히 좋아하지 않겠느냐, 당연히 좋아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런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제임스 프리먼 스스로가 신선한 커피에 목 말라 있었다. 아니 대체 왜 언제 로스팅한 커피인지 표기하지 않는 거야? 그가 즐겨 찾던 피츠커피에 가서 맨날 물어보던 게 언제 로스팅한 커피냐는 것이었다고 한다(이렇게 보니 그도 피츠커피의 팬이었다). 로스팅 날짜를 표기해서 원두를 팔자고 결심한 것도 그렇게 파는 가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한 번에 6파운드(약 2.7킬로그램)까지만 볶을 수 있는 로스터(커피 볶는 기계)를 샀다. 그리곤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고객들이 가장 맛있을 때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로스팅한 지 48시간이 넘지 않은 커피만 팔겠다. 또한 가장 맛있고 생산자들에게서 투명하게 구매한 최상의 생두만 사용할 것이다.”

제임스 프리먼이 블루보틀커피 블로그에서 밝힌 내용이다.

엄밀히 말해서 블루보틀은 이 원칙을 끝까지 지키진 않았다. 최상의 생두를 사용한다는 원칙은 지키고 있다고 해도 지금은 ‘로스팅한 지 48시간이 넘은 제품’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블루보틀 매장에서 직원에게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라는 원칙은 깨진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직원의 대답은 이러했다. “미스터 프리먼이 결국 48시간이 넘어도 일정 기간 맛이 유지된다는 걸 인정한 것이죠.”


일부 변화가 있었지만 블루보틀은 지금도 신선한 커피를 제공한다는 가장 중요한 프리먼의 원칙은 지키고 있다. 커피 원두 봉지마다 언제 로스팅했는지를 반드시 표기하고 있다. 지금도 다양한 커피 원두를 파는 상점 진열대를 살펴보면 모든 제품들이 블루보틀처럼 로스팅 날짜를 표기하진 않는다. 로스팅 날짜 대신 ‘언제까지 내려 마시면 최상(best by 몇 년 몇 월 며칠)’ 이렇게 표기돼 있는 제품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편 예고. '파머스마켓, 시장통의 커피, 블루보틀'입니다>


<참고자료>

-제임스 프리먼, 케이틀린 프리먼, 타라 더간, 블루보틀 크래프트 오브 커피, 유연숙 옮김, 한스미디어, 유연숙 옮김, 2016.

-CareerLab,  “The  Blue Bottle Coffee Story: From the Farmer's Market to a $700 Million  Business”, https://youtu.be/6Qs-s5oHKLs.

-Boston  Symphony Orchestra, “The History of The BSO”, BSO Website, https://www.bso.org/brands/bso/about-us/historyarchives/the-history-of-the-bso.aspx.     

-James  Freeman, “Entrepreneurial Thought Leaders Seminar”, Stanford  Center for Professional Development,  February 17, 2016, https://youtu.be/f_Bb4NzTiXQ.    

-Lisa  Fernandez, “Oakland murders dip to lowest level in 19 years, not  everyone impressed”, 

KTVU, January 3, 2019, http://www.ktvu.com/news/oakland-murders-dip-to-lowest-level-in-19-years-major-crimes-decline-by-11-percent.    

-U.s.CensusBureau,  “Oakland city, CA 2017 Population Estimates”, https://www.census.gov/search-results.html?q=oakland+city+population&page=1&stateGeo=none&searchtype=web&cssp=SERP&_charset_=UTF-8.  


-U.S.  Census Bureau, “QuickFacts:  San Francisco city, California; Oakland city, California”, https://www.census.gov/quickfacts/fact/table/sanfranciscocitycalifornia,oaklandcitycalifornia/INC910217#INC910217.  

-Blue  Bottle Coffee, “Our Story”, Blue Bottle Coffee Website, https://bluebottlecoffee.com/our-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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