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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영 Oct 09. 2020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질문

연산군과 정조의 삶에서 발견하는 사랑의 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실천하는 노력을 하며 살아간다면 그것 역시, 능력이며 개인의 이력이 된다. 그 숨겨진 노력을 성실하게 실천하는 사람을 보면 세상 모두가 알 수는 없지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은 느낄 수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가지고 잘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풀리지 않은 사람을 종종 보게 되는 것처럼 자신이 가진 능력과 배움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과  자만하지 않는 사람은 어제처럼 오늘을 살고 있으며 조급하지 않게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기적을 낳는 특별한 삶을 살게 된다.

일상에서 급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자만심은 자신의 능력을 더욱 성장시키지 못하게 방해하며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할 만큼 발전을 마비시킨다. 못해서 못한 것이 아니며 또 잘해서 그 일을 잘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 분야의 대가들은 언제나 더욱 치열하게 자신을 알기 위한 실천을 아끼지 않았고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행동에 초점을 두고 그것에 기준하며 근본을 제시했다.

복잡한 시기를 지나며 새벽 '2시'까지 학교 수행평가 과제를 마치고 잠이 들기 전 한 권의 책을 읽고 필사를 하는 아이의 습관과 태도 또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자신을 스스로 알기 위한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만들어 가는 거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어린 시절의 상처와 아픔이 있었지만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연산군과 정조의 삶에서 구분되는 삶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이 어머니인 폐비 윤 씨의 죽음을 입밖에도 내서는 안된다며 향후 '100년' 동안 함구령을 내린 터라 어느 누구도 연산과 제대로 된 소통을 해주지 않았다. 그만큼 외롭고 힘든 인생을 살았으며 할머니마저 ''너를 보면 죽은 네 어미가 떠올라서 너를 도저히 예뻐할 수가 없어''라는 마음을 가질 정도였으니 외롭고 힘들었을 연산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까이 머무는 나인들까지 어느 누구도 그의 답답함을 들어주지 않았고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 성장이 쌓여 폭군이 되었고  비참한 생을 살아 가지만 정조는 달랐다. 혜경궁 홍 씨와의 소통에서 내면의 안정과 온유함을 함께 할 수 있었고 할아버지 영조가 사도세자는 미워했으나 정조만큼은 극진히 아끼고 사랑을 전해 주었다. 정조 나이 열한 살 때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어가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격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보고도 트라우마에 빠지지 않고 악과 복수심으로 살기보다 그야말로 사랑 가득한 성군이 되어 행차를 하다가도 백성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그의 억울한 사정을 듣고 귀와 마음을 열어주었고 백성을 위해, 백성을 위한 성군이 될 수 있었다.

연산군은 절대적으로 그 누구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불통의 시간으로 외로웠으며 사랑 또한 받을 기회가 없는 쓸쓸한 인생을 살았다.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 씨가 할아버지를 이해해야 한다. 고 늘 타일렀으며 아픔을 사랑으로 이겨 나갈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가르쳤으며 할아버지의 사랑 또한 극진히 받고 자랐다. 물론 아버지인 사도세자 또한 아들 이산에게만큼은 사랑을 아끼지 않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며 인문의 시작이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인문 하며 사는 삶은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을 찾고 배움을 추구하며 이 세상에서 결국 사랑으로 자신을 중심에 세울 수 있고 다시 세상을 향해 사랑의 손길을 내밀며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이란, 차곡히 쌓아두는 '지식' 이 아니라 매일 실천하는 '소통'과 '사랑'이다. 사람들 모두 똑같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을 찾아서 떠날 수는 있는 것은 인문이 주는 공평함이다. 세상에 뿌려진 일들의 상처나 아픔은 상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닌 마음과 생각에서 나온다. 사람들이 모두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안다면 그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할까? 그래서 우리는 또 반짝이는 희망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는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쯤 반성과 후회를 하지만 언제나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결국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나를 풀지 못한 세월은 자신의 가족과 주변에 영향을 미치고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일으키지만 그러므로 풀어야 할 숙제 속에서 선명한 답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잘 키우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의 욕망이 함께 한다. 그러나 잘 키우고 싶은 마음만 있을 뿐 행동하는 일상의 태도와 습관과 규칙은 무엇인지는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부모도 그런 세밀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과 관심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부모를 보며 아이도 그것을 따라 그대로 배울 수 있다. 내가 이토록 잘 살고 싶었던 간절한 이유라면,
“나는 언제나 잘 살고 싶었다”그러나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스스로 잘 사는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 그럴 수 없음에 늘 흔들리는 내면이 나를 더 아프게 방치하고 놓아두는 삶을 벗어나지 못함이. 더 서글펐다.

언제나 부모는 자식에게 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고민하면서 보다 나은 인생을 살아갈 습관과 규칙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물론, 모든 부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며 지금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평생 짊어지고 가는’ 삶의 지혜’를 이야기하는 거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답습했던 고통과 슬픔의 시간을 건넜기에 종원 작가님께 배운 사랑과 치유의 시간들을 다시 세상을 향해 보내드리려 한다.

배움을 시작한 하루 한 줄 인문학 카페에서 가을 낭송회를 진행했다. 반가운 초3. 소년은 낭송을 하고 엄마는 필사를 하며 꾸준하게 공유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마다 아이가 준비하고 맞이할 세상의 귀한 미래가 나의 소망이었음을 그뿐 아니라 종원 작가님의 책을 독서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온 가족이 필사하는 모습과 실천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맞이할 행복한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꾸준하게 필사하는 분들의 숭고한 사랑의 깊이는 해본 사람이 아는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내가 왜 하는지’
‘내가 왜 그것을 하는지’
한 사람의 인생, 단 한 줄을 읽고 말하는 순간부터 피어나는 단, 하나의 희망을 소망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라면 해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부모가 되어야 하고 어떤 것이라도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알 수 없고 듣지 않으면 담을 수 없다. 늘 힘이 없기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해야 한다. 일상에서 힘을 낼 근거를 찾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그 무엇도 전할 수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발견하는 과정의 습관이 아이와 어른의 ‘ 하루 한마디 인문학 질문의 기적’ 이 되어 사람의 마음과 생각의 근육을 키우고 행복해지는 일상을 단련하는 실천, 독서와 필사, 낭송을 통해 당신은 분명 스스로 행복해지는 ‘자본’으로 ‘지혜’ 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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