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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책을 읽다 01화

『기학(氣學)을 읽다가

대체(大體)는 마음이다

by 휴헌 간호윤

최한기 선생의 『기학(氣學)』을 독해하여 쓴 부분이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내가 뜨끔하다. 소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의 뜻을 풀기를 구하면서 다만 책에 있는 자의(字義)와 구두(句讀)만을 통하여 문득 제 의견을 내는 것은 바로 초학(初學)이 하는 일이다. 만약 평소에 신기를 존양한 것이 사물의 운화를 명백히 한 데 있다면, 글을 해석하는 데에도 이것에 의하여 고험(考驗)하여, 작자가 뜻하는 바 심천(深淺)‧우열(優劣)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사물의 운화를 들어 취사(取捨)했기 때문이지, 근거 없는 나의 마음을 가지고 논평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학문은 공허함이 병폐이다. 지금도 책과 삶이 어우러지는 ‘실학’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한기 선생은 이 책에서 ‘사무가 참된 학문(事務眞學問)’이라고 단언한다. 요즈음에도 들어 보기 어려운 말이다. 이 시절에도 고루한 학문만을 일삼는 자들이 강단에 득시글하다. 저 시절 선생 말이 이 시절에도 유용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무릇 온갖 사무가 모두 참되고 절실한 학문이다. 온갖 사무를 버리고 학문을 구하는 것은 허공에서 학문을 구하는 격이다.… 만약에 상투적인 고담준론만 익혀 문자로 사업을 삼고 같은 출신들로 전수받은 자들에게 일을 맡긴다면 안온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남을 가르치게 해 보아도 조리를 밝혀 열어주지 못한다. 이름은 비록 학문한다고 하나 실제 사무를 다루고 계획함에 몽매하니 실제로 남에게 도움과 이익을 주는 일도 적다.


지금도 이어지는 우리의 헛된 교수 행태를 지적하는 말이다. 선생은 ‘사(士)‧농(農)‧공(工)‧상(商)과 장병(將兵) 부류’를 학문의 실제 자취(皆是學問之實跡)’라 하였다. 현재 우리 국문학계만 보아도 그렇다. 국문학과가 점점 개점폐업 상태가 되는 까닭은 실학이 안 되기 때문이다. 거개 학자들의 논문은 그저 학회 발표용이니 교수 자리 보신책일 뿐이다. 심지어 대중들의 문학인 고소설조차 그렇다. 춘향전, 흥부전, 홍길동전 등 정전화 한 몇 작품에 한정되고 그나마 작품 연구 자체만 순수학문연구라고 자위(自爲)한다. 고소설 연구가 사회 각 분야로 방사(放射)되어도 살아남기 어려운 이 시대다. 이렇게 몇몇이 모여 학회랍시고 ‘그들만의 리그’나 운용하고 ‘같은 대학 출신들’로만 패거리 짓고 ‘사회가 외면하는 글을 논문’이라 치부하며 자신이 한껏 고귀한 학문을 한다고 으스댄다. 점점 사회와 학생들로부터 배척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는 학문을 한다는 이들이 소인이라 그렇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나오는 이야기다. 공도자가 물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대인이 되고 누구는 소인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는 ‘대체(大體)를 따르면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따르면 소인이 된다.’ 일러주었다. 소체는 귀와 눈과 같은 기관이다. 귀는 듣기만 하고 눈은 보기만 하여 소체이다. 대체는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귀와 눈, 코, 입만이 아닌 온몸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일신의 안녕과 영화만을 생각하니 국문학 전체가 보일 리 없다. 나 자신도 내가 우리나라 국문학 발전을 저해하는 소인임에 통렬히 반성하며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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