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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재현 Apr 15. 2024

군인, 박사과정 대학원생 그리고 가장(2)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로 알아보는 결정의 순간

(지난 글에 이어서) 

https://brunch.co.kr/@uce03211/55

결과에 아쉬움은 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육군은 일부 선발된 우수한 장교들에게 국비를 지원받아서 낮에 전일제(풀타임)로 박사과정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당연히 저도 국가의 봉급을 받으면서 동시에 최상의 교육기관에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했었고 도전했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깝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당연히 국비지원의 학업여건 보장이라는 자원은 희소하고, 그렇기 때문에 또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원한다고 잡을 수 있는 기회라면 중요하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육군이 필요한 인재를 적시에 선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아쉬움 보다는 제가 속한 조직과 군의 발전을 위해서 저보다 더 뛰어난 인재들이 선발되어 학업의 기회를 보장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래 왔고, 또 준비했던 기회가 지나갔습니다. 이제 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이미 발생한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는가?”였습니다. 크게 봤을 때 당시 제가 취할 수 있는 옵션은 세 가지 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1.  앞으로 나에게 다시 같은 기회(도전)가 올 것인지 판단하고 그에 합당하게 행동한다.

2.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서 해당 기회에 재도전한다. : 관련 논문, 자격증, 어학성적 등 준비

3.  현상유지 =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원래 했던 일을 그대로 행한다. 되는대로 사는거지 뭐..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 속 주인공의 결심

조금은 안타까운(?) 개인사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넷플릭스의 명작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정말 뜬금 없지요.) 이 드라마는 워낙 웰 메이드 작품이라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실 텐데요. 개인적으로 2013년에 공개된 시즌1 에피소드1의 극 초반부에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아주 잠깐만 줄거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프란시스 "프랭크" 언더우드는 야심 있는 민주당 하원의원이자 하원 다수당 원내 부총무이다. 그는 국무장관 자리를 약속한 개럿 워커를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돕는다. 그러나 워커의 취임을 앞두고 비서실장 린다는 그에게 예상치 못한 사실을 알린다. 바로 워커가 프랭크 대신 상원의원 마이클 컨을 국무장관 후보로 지명할 예정이라는 것. 그들은 프랭크가 하원에 남아 행정부를 도와주길 원한다며, 도널드 블라이스와 함께 교육개혁안을 구상하는 일을 맡긴다. 워커의 배신에 분노한 프랭크와 그의 아내 클레어는 워커를 무너뜨리기로 결심하고, 마이클 컨을 처리할 계획을 세운다. -넷플릭스 하우스오브카드 시즌1 공식 설명 중

https://www.netflix.com/kr/title/70178217


주인공 프랭크는 본인이 계획했던 플랜A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쟁취하기 바로 직전까지 왔다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합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짐합니다. 생각정리를 끝낸 주인공은 이른 새벽 그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파트너인 아내 클레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I know what I have to do”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 알았어.” 그리고 프랭크는 그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시즌6까지 이어지는 대작 드라마의 대장정이 시작됩니다. 철저하게 계획/판단(J)형인 주인공이 잃어버린(스스로는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자기 삶의 통제권과 목표를 되찾기 위해 정말 처절하게 달려갈 것을 결심합니다. 사실 주인공 프랭크는 오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다는 목표 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며, 그것을 위해 누구보다 비열하고 때로는 저열하고 무자비한 사람으로 변해갑니다.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는 워낙에 명장면 명대사가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가 이 장면을 최고 중 하나로 뽑는 이유는 이 장면이 드라마의 '극초반부'에서 시청자들에게 주인공의 성격을 암시하고, 앞으로 어떤 에피소드가 벌어질 것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극초반부' 작은따옴표를 한 이유는, 그것이 장대한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저는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그것이 결코 포기를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실패를 한 경험조차 없습니다. 그냥 조금 다른 경로를 택한 것 뿐입니다.


Now or Never!

저는 앞의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과감히 첫 번째 옵션을 택했습니다. 당시 저는 "다시 똑같은 기회가 찾아 올 것 같다."는 낙관적인 기대를 과감하게 버리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가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대를 버리고 각오를 다져라! 육군과 조직의 장기적인 인력운영 측면에서 봤을 때, 매년 새로운 후배 기수에게도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야합니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믿는다면, 그 결과를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사실은,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곧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제가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바라볼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어차피 계속 공부를 하고 자기 발전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계획했던 것과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내가 나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자. 앞으로 계급이 더 오르거나 경력과 연차가 쌓이면 더 큰 책임과 과업이 주어질 것이다. Now or Never!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지금이 최고의 기회다.”


제가 직장에 다니면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려고 결심하였을 때, 주변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종종 들었습니다. 

1.  고생을 사서 한다. 학위 따서 뭐 하려고 그러냐.

2.  그래 박사학위가 전문인력 장교로서 임무수행 하려면, 필요하다는 점과 언젠가는 해야 하는 공부인 것은 

     알겠다. 그런데 그걸 꼭 지금 해야 하는가? 

3.  당장 학위가 급하지 않으니까 조금 더 실무 경험을 쌓고 훗날을 도모하자.

4.  대학원을 선택하는 많은 옵션이 있을 텐데 굳이 카이스트에 가야 하는가? 

5.  학업의 강도 및 졸업요건 그리고 학비 등을 고려했을 때 다른 대안이 있지 않은가?등


반대로 저에게 따뜻한 응원의 말씀을 건내 주셨던 분도 많았습니다. 

1.  큰 결심했다. 너는 할 수 있다. 

2.  군인이 더 학업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다. 무조건 해!

3.  절대로 이 기회를 놓치지 마라.

4.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분명 나중에 후회 없을 선택이다.

5.  어차피 시간은 간다. 기왕 고생하는 거 조금 더 하자 등 


어쩌면, 당시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의견 혹은 반대의 목소리 또는 실패사례 등의 다소 우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말해주는게 정말 진심에서 나오는 충고(조언)일 수 있습니다. 주변인들의 우려의 목소리와 반대하는 의견 역시 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왔을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결국 내 인생이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결국은 '내 인생'입니다. 학업에 쏟을 시간도 공부를 지속하는 에너지도 심지어 학비도 모두 제 주머니에서 나갑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요즘 속어로 참 MZ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아니 속으로는 생각할 수 있다고는 치자, 그래도 공개적으로 글로 남기는 것은 너무 MZ아니냐?"라는 생각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같은 현상에서 반대를 생각합니다. 생각과 삶의 방식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개인이 발전하는 것은 결국 소속된 조직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개인에게 주어진 업무시간을 준수하고 또 명시된 과업을 수행한다는 사회적 약속을 지킬 수 있다면, 개인의 발전을 막아 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에 맡깁니다. 실제로 현재 제도적으로 일과 이후에 학업을 지원하고 또 유지하는 것에 승인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각 소속 부대의 임무수행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조건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앞서 주변분들이 공부를 결심할 수 있는 상황 자체가 축복이라는 말씀을 하셨을테지요. 


한편, 처음 박사 학위과정 비선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을 때 당시의 저는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동안 내가 고생해서 어학성적을 만들고, 관련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에 참석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인턴연구원을 하고 등등 과거에 제가 했던 많은 노력들이 다 소용없어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헛되고 무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일전에 제가 준비했던 모든 과정들이, 바로 이어지는 저의 두 번째 도전 카이스트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도움이 되더라.

많이 알려져 있듯이 카이스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연구중심의 대학 중 한 곳입니다. 학교는 학생을 선발할 때 과거의 실적을 바탕으로 이 사람이 앞으로 학업적으로 어떤 부분을 성취할 수 있는가를 판단합니다. 대학원 프로그램별로 필요 서류와 입학 전형이 차이가 있으니 입학을 준비중이라면 사전에 꼭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속한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인류와 지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싱크탱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지난 2013년에 설립되었습니다. https://futures.kaist.ac.kr/ko/

홈페이지 프로그램 소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정말로 다양한 인재들이 모여서 다학제적 연구가 이뤄지는 대학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입학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거쳐야 하는 행정절차와 또 검증의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박사과정의 경우 입학전에 반드시 사전에 지도교수를 선정하고 그 분에게 지원의 승인을 받는 과정(=교수 컨택)을 거쳐야합니다. 다음은 제가 지도교수님께 처음으로 보냈던 지원 메일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저는… 누구입니다...(중략). 앞으로 저는 전문인력장교로서 ~~~ (중략) 에서 임무를 수행을 할 예정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펜으로 싸우는’ 군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직장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대학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국 내 최고의 연구중심 대학인 카이스트에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이 저에게 꼭 맞는 커리큘럼을 제공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중략) 모든 군인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며 필승의 전기전술(戰技戰術)을 연마해야 합니다. 저에게는 박사과정의 수학을 통해서 한층 더 학문적으로 성숙하며 발전할 수 있는 계기라 생각했습니다.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은 ~~~ (중략). 본 대학원에 입학하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 역시 각 분야에서 최고를 꿈꾸며 대학원에 진학 하였으리라 생각합니다.(이하 생략)


장문의 사전 연락 메일 뒤에는 저의 CV와 학업적으로 또는 직무 분야에서 성취했던 증빙자료를 첨부했습니다. 각 교수님 별로 본인들이 원하는 학생을 뽑을 때 작성을 요하는 양식들이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논문을 작성하고자 하는 주제로 10페이지 정도 분량의 레포트(Reference 포함)를 제출했습니다. 이후에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서류지원을 해도 좋다는 1차 승인을 받고 본격적인 대학원 입학을 위한 행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학교 홈페이지를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대학원 입학은 첫 사랑과 같은 것

그렇게 우여곡절과 노력을 통해서 결국 대학원 박사과정에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은 알고 계시겠지만, 대학원은 입학보다 당연히 졸업이 더 어렵습니다. 2차 면접심사를 볼 때 어떤 교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박사과정 공부라는 것이, 마치 첫사랑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줄 듯이 말하고 맹세하지만, 결국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 열정은 모두 식어버립니다. 당신은 어떻게 지금의 그 열정을 학업의 과정 동안 이어가겠습니까?” 


또 다른 교수님께서는, 우리 대학원은 박사과정 학생들에게 최소 주 30시간의 공부량을 요구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그것도 업무강도가 강하고 단체 조직문화가 많이 있는 군에 속한 당신이 이것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30시간을 7로 나누면 약 4~5시간이다. 퇴근하고 씻고 밥 먹고 옷 갈아입으면 아무리 빨라도 저녁 7시가 가까운 시간일 텐데 가능하겠습니까?” 


합격을 시켜준다는데 무슨 말을 못하겠습니까. 저의 첫 사랑은 이제 시작입니다. 당연히 Yes, I can do를 외쳤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공부는 잘 하고 있냐고요??


글이 또 너무 길어졌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이어나가겠습니다^_^


글 표지 그림 출처 : https://library.kaist.ac.kr/libGuidance/libInfo/libIntrc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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