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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Jan 30. 2024

태어난 김에 가족수영 어때요?

부부수영, 모녀수영, 모자수영 그리고 이조수영?

"남자 친구야?"

남편과 저녁 9시 수영 강습을 다닐 때의 일이다. 같은 시간에 도착해도 늘 나보다 남편이 빨리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에 먼저 들어갔다. 종종걸음으로 수영장에 들어서다 남편을 보면 반가워서 웃었더니 이런 질문을 들었다.  


"아니요. 남편이에요."라고 말했을 때의 반응이 더욱 놀라웠다.

"활짝 웃길래 남자친구인 줄 알았지. 남편을 보는데 웃음이 나와?"

"..."

대체 남편의 얼굴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거지? 울화가 치밀어 째려본다? 쯧쯧 혀를 차며 실눈을 뜬다? 눈도 안 마주치고 모른 척한다? 알쏭달쏭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은 도통 늘지 않는 수영이 재미없다며 수영을 그만두었고, 홀로 남은 나는 수영장에서 눈이 마주쳐도 활짝 웃을 남편이 없어서 더 이상 그런 말을 듣지 않게 되었다.


새벽수영을 시작하고 나서 함께 수영하는 다른 부부를 보게 됐다. 레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소를 주고받으며 동작을 봐주는 다정한 부부, 수영강습 후 벤치에서 아내가 나오길 기다리는 남편.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나도 그 대열에 껴볼까 하는 마음에 남편을 새벽수영 초급반에 심고(?) 싶었지만 안 그래도 피곤한데 새벽부터 더 피곤할 수 없다는 강경한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다. 평포자(평영 포기자)였던 나의 평영을 교정해 준 초급반 선생님이라면 배포자인 남편도 배영을 할 수 있게 하는 기적을 일으킬 것 같았는데. 정말이지 아쉬운 일이다.   


사실, 내 눈에 다정한 부부보다 더 부러운 이는 모녀 수영을 하는 엄마와 딸이었다. 새벽부터 언덕길을 정답게 올라가는 엄마와 딸이나 엄마와 앞뒤로 수영하는 딸이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에 엄마의 팔짱을 끼고 있는 딸을 보면 딸에게 감정 이입을 해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럴 때면, 나도 엄마랑 수영장에 다니던 때가 있었지. 엄마랑 동생이랑 나랑 셋이 같은 시간에 수영강습을 받았는데 하며 아련한 기분에 잠기곤 했다. 초등학교 때라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나는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정말 열심히 했으며 엄마 웃음소리는 수영장에서도 참 유쾌했다. 어디서나 주변의 공기를 밝게 만들던 엄마였다. 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시장에서도 심지어 병원에서도. 항암치료를 받느라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와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던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아이폰 속에 남아 있다.


내가 서울에 살지 않고, 엄마 가까이에 살며 같이 수영을 했더라면 엄마는 아프지 않았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엄마가 살아 있지는 않았을까. 엄마랑 나도 나란히 상급반이었을까.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밀려오면 어디선가 지경아 하고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나직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감정이입의 대상은 아니지만 모자 수영을 하는 엄마와 아들도 꽤 보았다. 나와 같은 중급반 1번 레인의 한 회원님은 내게 아들이 상급반인데 수영을 안 가르쳐 준다고 푸념을 한 적이 있다. 호기심에 아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저 사람이 아들인데 수영을 얼마나 잘하는지 대회에 나가서 상을 얼마나 많이 타왔는지 자랑이 랩처럼 이어졌다. 자식자랑 하시는 모습이 정겨워서 한참을 들었다. 이왕 들은 김에 추임새도 넣었다.  

"아들이랑 같이 수영해서 좋으시겠어요."

"에이, 아들이 무슨 소용이야. 딸이 최고지. 자기도 엄마랑 같이 수영해."

"아, 엄마가 돌아가셔서요...."

"아이고 너무 빨리 가셨다."

"아 저 어릴 때는 아니고... 4년 전에요."

"빠르지. 우리 시어머니는 90이 넘었는데 아직 살아계셔."

"하하하."


그날 나는 엄마처럼 유쾌하게 웃었던 것 같다. 그게 웃을 일이 아니었을지라도.


나는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족 수영을 꿈꾼다. 이모와 조카가 함께하는 이조수영? 나의 조카는 지금 런던에 살고 있지만, '한국에 가면 이모랑 같이 살고 싶어.'라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그 아이가 서울에 돌아와 내가 함께 놀아주는 날이 온다면 줄을 서서 번호표를 뽑더라도 함께 수영장에 가고 싶다. 엄마가 나에게 함께 수영장에 다니던 추억을 선물했듯 나도 아이에게 이모와 함께 수영했던 추억 한 조각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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