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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Jan 25. 2024

오지랖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선한 오지랖과 과한 오지랄

"왜 수영복 어깨끈은 늘 꼬이는 걸까?"

수영장에서 샤워를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분명 양손으로 끈을 잡고 입는데 입고 나면 꼬여있다. 끈이 꼬인 채 수영을 하면 어깨가 아플 수 있으니, 누구한테 풀어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눈치를 보다 낑낑대며 어깨끈을 풀던 날이 많았다.


하루는 샤워기 물을 맞으며 수영복을 입고 있는데, 옆에서 샤워를 하던 할머니가 말없이 꼬인 어깨끈을 풀어주었다. 내 몸에 타인의 손이 닿는 느낌에 잠시 당황했지만, 고마웠다. 부탁하기도 전에 내미는 도움의 손길이라니. 어깨끈이 꼬였는데 물어보고 풀어주셨다면 더욱 고마웠겠지만 선한 오지랖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6시 반 수영 강습이 끝내고 나오는 사람과 7시 수업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모여들며 인구밀도가 높아지는 6시 50분경 샤워실에서도 선한 오지랖을 여러 번 경험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나 다했어. 여기서 해."

"들어갈 사람이 먼저 해."

"수영복에 비누칠하고 입어봐요. 그럼 잘 들어가."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내게 손을 흔들어 알려주거나, 지금 나갈 테니 여기서 하라고 말해 주거나, 동시에 빈자리를 발견했을 때 수업에 들어갈 사람이 먼저 하라고 양보해 주는 경우였다. 수영복에 몸을 욱여넣느라 낑낑대고 있으면, 수영복에 비누칠을 한 후 입으면 쉽게 입을 수 있다고 알려주는 분도 있었다.  


오지랖이 아니아 지랄 맞은 경우도 있었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 말도 없이 내가 쓰고 있는 샤워기에 밀고 들어와 샤워를 하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랐다. '아무리 사람이 많고, 수업에 늦어 급하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과 말도 없이 샤워기를 같이 쓴다고?'


수영장 샤워실의 샤워기는 분명 1인용인데, 1인용 샤워기 아래 2명이 머리를 들이대는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깜빡이도 안 켜도 들어오는 차처럼, 몸을 밀어 넣는 비매너도 문제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샤워기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부족한 것이다. 애초에 설계를 할 때 샤워실이 더 컸더라면 샤워기 수가 더 많았더라면 샤워기를 둘러싼 암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영장 회원의 남녀비율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수영 강습과 아쿠아로빅을 합치면 하루종일 수영장을 이용하는 회원은 남자보다 여자가 많을 텐데, 어째서 여자 샤워실을 남자보다 크게 만들 생각은 못한 걸까.



다행히 지금의 수영장에 다니는 동안 지랄을 떠는 사람보다는 오지랖을 떠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수영장의 오지라퍼 중 베스트 오지라퍼는 s언니였다. 나는 매일 아침 수영장 샤워실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녀를 보곤 했다. 그녀는 너무 활달했고, 너무 잘 웃었다. 하지만 부담스럽게도 너무 에너지가 넘쳐서 어떤 말도 붙일 자신이 없었다. 그런 그녀와 같은 중급반이 된 후 일어난 일이다.


"이리 와, 이리 와, 여기서 같이 씻어!"

그런 그녀가 나에게 샤워기를 공유하자고 손짓하고 있었다. 엄마나 동생이랑도 같은 샤워기를 써본 적이 없었던 고장 난 로봇처럼 쭈뼛거리며 다가갔다. 샤워실은 이미 6시 수영 수업을 듣고 나온 사람과 7시 수영 수업을 들어야 할 사람으로 꽉 차고 넘친 상태. 나를 배려해서 부르는 호의를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다.

"고맙습니다. 오늘 사람이 너무 많죠?"

"에이, 이게 뭐가 많아. 다른 수영장 안 다녀봤나 보다. 다른 데는 세네 명이 샤워기를 같이 써."

"아, 그래요?"

"근데, 수영복에 비누칠 안 하고 입어?"

내가 왜 수영복에 비누칠을 하지 않는지 대답하기도 전에 s언니는 수영장으로 총총 향하며 말했다.

"먼저 간다. 어서 와."


그날 이후 s언니의 오지랖은 계속 됐다.

"나랑 같은 오리발이네. 이거 쓰는 사람 많아. 다른 사람 거랑 바뀔 수도 있으니까 자기도 실리콘 오리발 스티커 사서 붙여."

"아 그래요?"


"중급반 왔으니까 스노클 하나 사. 00 브랜드가 좋아. 수영 오래 하라고 얘기해 주는 거야."

"아 그래요? 이 브랜드가 좋아요?"


"오늘 너무 춥지? 내가 갈 때 태워줄게."

"우와, 언니 고마워요!"


"내일 꼭 나와. 내일도 추우면 내가 태워줄게."

"(내일은 안 나오려고 했는데... 용하네 이 언니) 하하 내일 봐요."


"지경 씨, 수영복 사이즈 뭐야? 당근 마켓에 이 수영복이 올라왔는데 잘 어울릴 것 같아."

"(와, 이제는 나에게 어울리는 수영복까지 점지해 주는구나.) 전 L 입죠.'

 

"등에 로션 발라 줄까?"

"고마워요. 언니는 발랐어요?"

"응 나는 발랐어."


나는 여름부터 겨울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s언니의 오지랖을 겪으며 생각했다. 오지랖은 필요 이상의 마음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구나. 그 오지랖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s언니 같은 오지라퍼가 있는 한 수영장에서 웃을 일이 더 많아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영장에 어깨끈 풀어주기 금지령(?)이 내렸다. 사건의 발단은 한 회원의 민원이었다. 수영 강습이 끝난 후 초급, 중급, 상급 반별로 손을 잡고 파이팅을 외치며 인사하는 것과 모르는 사람이 수영복 어깨끈을 풀어주는 것, 수영강사가 강습을 할 때 자세를 잡아주는 접촉이 불편하니 하지 못하게 해 달라는 민원을 홈페이지에 올렸단다. 수영장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강습 후 인사를 할 땐 손을 잡지 말고 모르는 사람의 어깨끈을 풀어주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 사건 이후 수영장 샤워실에서 이런 일을 겪었다.

“혹시, 어깨끈 좀 풀어줘도 될까요?”

수영장 샤워실에서 수영복을 입고 매무새를 다듬는데 옆에서 씻고 있던 분이 내게 물었다.

“아, 그럼요.”

“어깨끈 꼬인 걸 보면 풀어주고 싶은데, 그러지 말라니까 물어봤어요."

"전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손을 잡는 게 불편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타인의 손이 내 몸에 닿는 게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자세 교정을 해주는 강사에게 말로만 자세 교정을 하라는 건 과한 오지랖이 아닌가. 꼬인 어깨끈을 풀어주는 일 또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 않나? 어깨끈도 마찬가지다. 불편하다면 상대에게 "괜찮아요. 제 어깨끈은 제가 풀게요."라고 말로 이야기하면 될 일 아닌가. 하지만, 내가 불편하다고 모두에게 그 행동을 못하도록 해달라고 민원을 넣는 것이야 말로 선을 넘는 오지랖(과한 오 지랄)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주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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