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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지경 Feb 06. 2024

"쟤는 왜 맨날 지각해?"의 쟤를 맡고 있습니다.

작심삼일 120번만 하면 1년 동안 지각 안 하겠네

수영장 수영 강습에는 정해진 식순이 있다. 매시각 정각 샤워를 마치고 나온 회원들이 수영장을 빙 둘러서서 안전요원의 동작을 따라 체조를 한다. 체조가 끝나면 회원들은 수영장에 들어가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한다. 회원들이 발차기를 하고 있으면, 수영 강사들이 등장해 각자 맡은 반으로 가 어떤 영법을 어떻게 훈련할지 설명하며 강습을 시작한다.


이때 수영장에 등장하는 수영인은 세 부류로 나뉜다. 1. 일찍 들어가서 체조부터 하고 강습을 받는 수영인. 2. 체조는 하지 않아도 킥판을 잡고 발차기를 하며 몸을 풀고 수업에 임하는 수영인. 3. 10분 이상 늦어서 체조는커녕 몸도 못 풀고 수영장에 뛰어드는 수영인. 여기서 2,3번 수영인을 세 글자로 줄이면 '지각생'이다.


지각생을 또 한 글자로 줄이면 나다. 바로 나. 매일 아침 7시 새벽 수영반에 등록해 한 달에 20번 이상 수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10분~15분쯤 늦게 수영장에 들어가 수영을 시작하기 일쑤다. 어쩌다 20분이 넘어 수영장에 들어가게 되면 수영강습을 받는 시간은 단 30분. 수영 강습이 50분인데 10~20분은 날리는 셈이다.


지각을 자주 하다 보니 체조가 끝날 무렵 수영장에 들어가면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어쩐 일이에요?"

"오늘은 일찍 왔네."

"웬일이야?"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를 변호하느라 바빴다. 역시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서 아침에 눈이 잘 안 떠지는 게 아닐까 하는 아침형 타령. (또) 아침형 인간이 아닌데 새벽수영을 하는 게 어디냐는 셀프 칭찬. 스트레스 풀려고 하는 취미 생활인데 좀 늦으면 어때하고 자기 합리화까지 지각생의 변명 래퍼토리는 돌림노래처럼 돌고 돌았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일찍 와서 체조하고 발차기로 몸을 푼 사람들은 준비가 된 상태에서 수영을 하지만, 나는 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명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수영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강습이 끝나고 몸이 풀린 상태로 5~7분쯤 자유수영을 하기는 했지만, 운동량이 부족하다는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운동량을 늘리고 싶은데, 화 목은 8시 반 수업을 연달아 들어도 될까요?"

얼마 전 수영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가 "운동량을 늘리려면 일찍 와서 하면 되지. 왜 두 타임을 들어요?"라는 답을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8시 수업을 등록할 때 지각을 기본 값으로 하고 30분 할 수영을 1시간 30분 해보자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제야, 화요일 목요일에 무리해서 8시 수업을 추가로 들을 바에야 이 참에 지각하지 않고 정시에 수영을 하는 습관을 들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 마침 SNS에서 이런 문장과 마주쳤다.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성공한 사람이다_밥 딜런"


밥 딜런의 말에 따르면 아침에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수영과 샤워인데 그걸 거의 매일 하고 있는 나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주식에 실패하고 코인에 물려 있더라도. 그렇다면 매일 아침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며 성공하는 기분을 좀 더 길게 만끽해 볼까.


습관적 지각병 자가치료를 위해 원인부터 분석해 보기로 했다. 대체 나는 수영이 그렇게 좋다면서 왜 늘 수영 강습에 10~15분 지각하는가?       


1. 수영장에 50분이 넘어서 도착한다.

샤워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가려면 50분에는 샤워를 시작해야 하는데, 수영장에 50분에 도착했다고 해서 바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을 딸리는 샤워실에 50분은 전 강습을 마치고 나오는 회원과 다음 강습을 들어갈 회원이 모여드는 피크타임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45분에는 도착해야 샤워를 하고 수영장에 제시간에 들어갈 수 있다.


2. 낙관적 이동 시간의 오류

내 머릿속에는 집에서 수영장까지는 도보 10분 컷이라는 최단 시간만 입력돼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안 잡힐 수도 있고, 비나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울 수도 있는 변수를 고려하면 이동 시간을 15분으로 잡는 게 안전한데, 그동안 이동 시간은 딱 10분으로 잡고 6시 40분에 나가야지 하면서 50분에 나섰으니 지각을 할 수밖에. 이제부터 45분에 도착하려면 집에서 6시 30분에 출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6시 반에 나서려면 전날 미리 수영가방을 챙겨 놓는 것도 필수다. 이제부터 수영 다녀온 후 바로 다음 날 수영 가방 챙겨 놓기 습관을 들여보자. 아이폰 쉬리에겐 매일 6시 30분 알람도 추가해 달라고 하고.   


3. 체조가 싫어서

일찍 수영장에 도착해 운 좋게 샤워기를 차지해도 샤워를 오래 하느라 체조가 끝난 후 들어간 적이 많다. 나는 왜 남들보다 샤워를 오래 할까 생각해 보면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 안에 들어가는 것은 좋아하지만 수영복을 입고 체조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밤새 찌뿌둥한 몸을 풀고 수영을 시작하고 싶은데, 체조는 하기 싫어서 한동안은 6시에 일어나 눈 뜨자마자 집에서 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한 후 수영장 나갈 준비를 한 적도 있다. 스트레칭하고 양치하고 물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수영장에 가는 것은 괜찮은 루틴이니 체조가 싫다면 모닝 루틴을 다시 시작해 보자. 그러려면 6시엔 꼭 일어나야겠네. 불끈!


분석하고 전략을 짰으면 실천해 보자 하는 마음으로 어제오늘 일찍 일어나 체조가 끝날 무렵 수영장에 입장했다. 내일은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나가볼 계획이다.


내일까지 수영장에 일찍가면 작심삼일이다. 작심삼일 하다 다시 지각하거나 수영을 빠지는 날도 있겠지. 그럴 땐 다시 작심삼일을 하면 된다. 작심삼일 120번만 하면 1년 동안 지각하지 않고 수영을 오래 할 수 있으므로.


습관적인 수영장 지각을 자가치료하려고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 방안까지 도츌하는 걸 보니, 수영이 내게 좋은 운동임이 틀림없다. 운동을 너머 삶의 태도를 바꾸주는 취미라고 해야하나. 수영이라는 취미를 즐기며 하루하루 조금 더 나는 내가 되고 싶다.


자, 이번 생에 상급반 가는 그날까지 일단 지각생에서 탈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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