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여 이 나이쯤 되면 중용 지키기, 말 아끼기, 현명해지기같이 To be list를 작성할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도 To do list를 작성하고 있다. 그 목록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운전면허 따기, 수영, 어학 등과 같이 20대 초반에는 획득했어야 할 생존 스킬인 것을 보니 남보다 20년은 늦은 나의 자립도를 어찌할꼬.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이사 온 2년 전 4월의 비 내리는 어느 날 핸드폰 메모장에 끄적인 메모가 있는데 지우기엔 의미 있는 것 같고 다시 읽기엔 괴로워서 메모장 앱을 열 때마다 행여 눈에 띌까 잽싸게 스크롤 다운해 버린 것을 여기 옮겨 적으며 새해를 맞는다.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와 같이 망설이고 있어서 지금의 심정을 대변하기도 하거니와 이제 메모장에서 지울 수 있게 된다면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운 새해가 아니겠는가.
2017 바젤, 봄비.
낯설고 차가운 도시에서 익숙한 것은 이 공기 속 습도뿐.
계절을 알 수 없는 바람과 빗줄기 속을 혼자 걷는다.
이 길에 속하지도 않고 이 길 끝에도 닿을 곳이 없는 신세를 처량하게 여기지 말자, 다짐하면서 옷깃을 여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