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밤낮이 바뀌어 잠이 오지 않아 집안 정리를 하고 있다. 내 책상에는 언제 받았는지 알 수 없는 미국 서점 기프트카드와 (쓰지 않으면 1년 후 매 달 1.5불씩 삭감된다고 쓰여 있었는데도 20불이나 남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할 때 받은 각종 실리콘 밸리 스튜디오와 IT회사들의 명함 (그 많은 스타트업 회사들 중 아직까지 몇이나 살아 있으려나), 몇 년 전 동네에서 도적놈에게 후추 스프레이로 공격당하고 아이폰 털렸을 때 후추 범벅이 된 나를 집까지 바래다주었던 선한 사마리아인 아주머니의 (지방에서 와이너리 경영하는데 파리에 비즈니스 차 오면 우리 동네 사는 친구 집에 신세 진다고 함. 그날도 친구 집에 가는 길에 나를 발견하고 경찰에 연락할 때 증인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준) 명함, 그리고 이것이 있었다.
비행기에서 받은 명함 Rick W. 이 분으로 말하자면 언젠가 한국 가는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에 앉았던 미국 할아버지다. 인천 공항을 거쳐 러시아인지 우크라이나로 가는데 재혼한 아내에게 줄 선물로 기내 면세 브로셔를 보고 한방 화장품을 샀는데 스튜어디스가 샘플을 안 주니까 스튜어디스한테는 소심해서 못 물어보고 나한테 '이거 사면 샘플 준다고 쓰여 있는데 왜 나 안 줘?'라고 물어보길래 '여기 조그맣게 쓰여 있는데 한국이 최종 목적지여서 한국 주소 있어야 준다고 쓰여 있는데요?' 그랬더니 약간 실망했지만 괜찮다고...... 그러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트럼펫 연주자이자 대학 교수라는 Rick은 서양 음악과 아프리카 음악이 뭐가 다른지 알아? 기본 박자가 다르다고, 하며 두둠칫 둠칫 박자 시범을 보여 주었다. '서양 음악은 4분의 3박자면 따따따 따따따, 아프리카 음악은 쿵 따다다 쿵 따다다 이렇게 비트가 쪼개진다니까.' Rick은 그의 말을 끊을 타이밍을 놓친 나에게 시카고에서 인천 가는 14시간 내내 1:1 음악 레슨을 해 줬고 결국 인천 공항에서 내릴 땐 명함 뒷면에 전화번호를 적어 주며 나를 입양하고 싶다고 했다. 너무 착하고 좋은 젊은이 같다며 (별로 놀랍지는 않았다. 비행기에서 미국 할머니 할아버지들 말동무를 해 주면 20대 때 종종 들었던 제의여서).
이 명함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워 그의 근황을 알아볼까 하다가 망설여졌다. 그때도 할아버지였는데 지금 혹시나? 우크라이나인 부인과는 아직 잘 사는 걸까. 미국인 전처를 욕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여자들이 훨씬 착하다고 말하는데 동의해 줄 수도 없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처했는데 새 부인이랑은 지금도 행복한지.
마치 피천득의 아사코처럼 찾지 아니하는 편이 좋았다고 후회할까 봐 망설이다가 결국 얄팍한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별로 어렵지 않게 그의 이름을 찾아냈고 나는 그가 내가 공부했던 학교에서 수학한 적이 있었다는 걸 프로필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가 어린 딸과 찍은 사진도 보였다. 아직 연주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고맙고 반갑고 안도가 될 수가 있나.
정정해서 고맙습니다, Rick.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양반을 친구로 추가하거나 '기억나요? 십여 년 전 대한항공 비행기 안에서 한방 화장품 샘플에 대해 설명해 주었던 애송이를? 나 그 후에 무럭무럭 커서 당신과 같은 학교를 들어갔고 어엿한 아줌마가 되었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낼 일도 없다. 이 분이 나를 기억할 리 만무하니...... Rick의 프로필을 보고 있노라니 그를 만났을 때 상냥한 젊은 청년이었던 내가 저 멀리서 단숨에 십여 년을 달려와 가뿐 숨을 몰아쉬며 중년의 내게 인사한다.
'헉헉, 그동안 너 잘 살아온 거야?'
글쎄. 공부도 지겹게 오래 하고 강도에게 후추 스프레이도 맞아 봤고 불어도 배우고 살도 찌고 그럭저럭 살아온 것 같네. 너를 오래 잊고 있었어. 잘 웃고 상냥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던 너를.
그래서 이 명함은 버릴 수가 없다. 그래, 나는 결국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