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리] 먼지다듬이 카페

2017년 3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한국에서 미국으로 처음 유학 나왔을 때 싸구려 이민가방의 바퀴가 고장 나서 25kg 이민가방 두 개를 기숙사 방까지 끌고 올라가느라 고생한 기억.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게 되면서 나도 실리콘 밸리에서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게 되는 것인가, 하는 우쭐한 마음으로 처음 이케아를 벗어나 로컬 가구점에서 큰 맘먹고 구입했던 침대와 소파 등을 그대로 두고 한국으로 다시 들어갈 때의 허망함.

파리의 작은 아파트에는 둘 데가 없어 대부분의 소유물을 버리거나 남에게 넘긴 기억.


물욕은 많지만 잦은 국제이사를 하면서 소유는 결국 고난으로 이어진다는 걸 체감했다. 이제 강제적으로 공간이 좁아서 버리는 것 말고 의식적으로 덜 소유하는 미니멀 라이프라는 걸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다이슨 무선 청소기부터 구입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 청소기를 충전하며 기다리다가 습관처럼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네이버, 구글, 다음, 이글루스의 #비우기 #버리기 #미니멀 라이프 #옷장 정리로 나온 모든 글을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검색의 맥시멀리즘)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찬양 일색인 글들 가운데 수십 번째 목록 페이지에 드디어 미니멀리즘에 대한 부정적인 글이 나왔다.


"미니멀 라이프 하는 사람들은 버리고 기뻤다는데 전 기분이 너무 안 좋네요. 옷들 다 버리면서 눈물 났어요."


댓글들은 토닥토닥하고. 아, 유행 따라 자기 라이프 스타일에 맞지 않는 비우기를 하다가 마음속 심연에 가라앉은 진짜 욕구를 들여다본 사람의 자기 성찰적 고백인가, 하며 다시 보니 카페명이 '먼지다듬이 카페.' 삼가 옷들의 명복을 빕니다. 먼지다듬이와 싸우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위로하고 토닥이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본 느낌이다.

keyword
이전 05화[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