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살림살이를 갖춰 놓고 정착해서 사는 안락한 삶터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시카고 유학 시절 나에게는 coffee라고 겉에 쓰인 9불짜리 커피통이 떠돌이 유학생이 아닌 현지에 정착하여 안정적인 삶을 사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물건처럼 느껴졌다. 9불보다 더 비싼 옷이나 화장품은 살 수 있었어도 주방용품으로 분류될 수 있는 무언가를 산다는 게 꽤나 큰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날도 영화관 옆 각종 잡화와 수입 가구를 파는 상점 World Market에서 그 통을 만지작거리며 이거 사고 싶은데 망설여져서 이렇게 가끔 와서 구경만 한다고 하니 친구가 고맙게도 '이까짓 게 뭐라고 질러!'라고 뽐뿌질을 해 주어 살 수 있었다. 그 통을 사고 한동안은 기분이 좋았는데 나중에 네스프레소 캡슐 머신을 이용하면서 그 커피통은 몇 년째 세탁실 상부장 맨 위칸에서 잠자고 있다.
프랑스에 와서도 여전히 떠돌이의 마음을 가지고 살던 내가 갖고 싶지만 망설여져서 결국 못 산 물건은 키친타월 꽂이. 언젠가 키친타월 꽂이를 놓아도 자리가 충분히 남는 큰 식탁을 사고, 그 식탁을 두어도 충분히 공간이 남는 큰 거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야 살 수 있는 그런 닿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키친타월 꽂이는. 그렇지만 그동안 그것 없이 나는 어떻게든 살아왔다. 지나고 보니 내 습관과 동선에 불필요한 물건이었나 보다.
좁은 아파트를 청소하고 매실 엑기스 한 잔
불필요한 물건을 덜어내거나 소유하지 않는 대신 필요한 품목은 설렘을 주는 고급품으로 구비하는 것이 요즘 대세 정리법,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인 것처럼 또 다른 마케팅이 유행이다. 그래서 디자이너 의자와 멋진 조명 사진을 기웃거리며 '플라스틱 그릇과 입지 않는 옷, 오래된 가구를 버리는 대신이잖아!'라고 새로운 소비를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생겨났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에는 관심 없지만 물건을 소유하는 것의 기준이 곤도 마리에 식의 '설렘'이나 TV 프로그램 '신박한 정리'에서 나오는 '필요/욕구'말고 뭐가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실 디자이너 의자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걸 몰랐었다. 아니 왜? 그저 의자잖아? 그러다 조금 생각해 보니 몇 시간씩 서서 스탠딩 파티는 해도 의자가 없으면 대성리 민박집 바닥에 양반다리로 앉아 새우깡이랑 소주 깔아 놓고 엠티도 못할 서양인들에게 의자란 정말 중요한 물건이구나 싶다. 마찬가지로 이불을 펼쳐 두는 침대 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베딩의 디자인과 색깔이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부자리는 개켜서 장롱에 넣는 우리네 전통 살림 방식에는 이불 자체의 색과 디자인보다는 장롱이 중요했을 것. 붙박이장과 침대를 쓰는 요즘 사람이지만 옛날 딸 시집보내며 가장 중요한 혼수는 장롱이었다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고 자개장을 보면 할머니 댁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래서 소유의 기준으로 '물건의 가치를 지금 나라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로 삼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의자를 산 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낯선 북유럽 디자이너들의 이름들과 그 의자들의 역사를 공부하는 수고로움을 거쳐 그것들이 단순한 의자가 아닌 작품이라는 가치를 납득해야만 하는 과정 자체가 좌식 문화에서 온 나에겐 이미 미니멀하지 않다고 생각하니 언젠가는 아름답고 편하고 비. 싼. 의자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었다. 내가 소유하는 물건이 나를 정의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물건이 내 생활에 들어오는 게 맞다는 생각. 결국 모든 게 나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흔한 소비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