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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국경의 갈림길에서

2019년 1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새해를 맞이하여 이 나이쯤 되면 중용 지키기, 말 아끼기, 현명해지기같이 To be list를 작성할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도 To do list를 작성하고 있다. 그 목록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운전면허 따기, 수영, 어학 등과 같이 20대 초반에는 획득했어야 할 생존 스킬인 것을 보니 남보다 20년은 늦은 나의 자립도를 어찌할꼬.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이사 온 2년 전 4월의 비 내리는 어느 날 핸드폰 메모장에 끄적인 메모가 있는데 지우기엔 의미 있는 것 같고 다시 읽기엔 괴로워서 메모장 앱을 열 때마다 행여 눈에 띌까 잽싸게 스크롤 다운해 버린 것을 여기 옮겨 적으며 새해를 맞는다. 시간이 지났어도 그때와 같이 망설이고 있어서 지금의 심정을 대변하기도 하거니와 이제 메모장에서 지울 수 있게 된다면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가벼운 새해가 아니겠는가.



2017 바젤, 봄비.


낯설고 차가운 도시에서 익숙한 것은 이 공기 속 습도뿐.

계절을 알 수 없는 바람과 빗줄기 속을 혼자 걷는다.

이 길에 속하지도 않고 이 길 끝에도 닿을 곳이 없는 신세를 처량하게 여기지 말자, 다짐하면서 옷깃을 여민다.

쓸쓸해지기엔 쑥스럽고 씩씩해지기엔 피곤한 나이.

무엇의 초급자가 되어 실수를 방긋방긋 웃으면서 해결하는 것도 하루 이틀 일이 아니건만.

어딘가 초행길에 방향을 잃고 헤매고 늦어 사과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건만.

아직도 서투르고 계속 서투르고 죽을 때까지 서투를 건가 보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국경이 여기에서 나뉨을 알려 주는 동네 산책길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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