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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독일어 수업

2019년 9월의 기록

by 바다에 내리는 눈

어려서부터 내 생각에 나는 말이 많았다. 청소년기에는 시끄럽기만 한 주전자 돈데크만 (이게 무엇인지 설명은 하지 않는다. 불친절한 비유로 동년배 검증)이라고 나 자신을 비하하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 없고 과묵한 사람을 동경했다.


'저 사람들은 답답해서 어떻게 말을 안 하지?'


웃고 떠들고 실수하는 것의 반복이었던 젊은 날에는 대화 도중 생기는 공백을 참지 못해 아무 말이나 하고 바로 후회하고 그 순간 침묵을 더 오래 지켰던 인내심 있는 승자들을 부러워했다. 쿨해서 좋겠다, 너...... 그래도 커뮤니케이션 전공을 하며 비슷한 애들만 모여 사적인 모임에서도 알아서 사회 보고 패널처럼 격론하고 공백이 생기는 게 다 뭔지, 서로 오디오가 겹쳐 문제인 그런 세월을 오래 거치다 보니 내 말 많음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석됐다.


그렇지만 각종 격언에서 알 수 있듯 인류의 모든 문화권에서 침묵은 금이고 입만 살은 사람은 경멸당하지 않던가. 나이가 들면서 말하는 나나 듣는 청자나 한 번 술자리로, 진심 담은 편지 한 장으로, 유쾌한 농담 한 마디로 말실수를 주워 담기엔 에고(Ego)를 둘러싼 두터운 나이테가 생겨 버렸다. 그래 우리 이제 괜찮은 거지? 하고 포옹하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살아가려 해도 서로 멀찍이 떨어져 선 나무들처럼 꽉 안을 수가 없는 어른들은 괜찮다고 웃고 돌아서 연락처를 지우고 마음에서 비운다. 내 말의 화살촉이 남의 마음에 박히기 전에 잘 하자, 실수하지 않으려면 좀 듣자, 먼저 판단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 보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참고 1/10만 하자......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오늘 어학 학원 독어 수업에서 언어 배우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다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언어들끼리는 그나마 배우기 쉽고 한국어나 아랍어처럼 인도유럽어에서 먼 언어면 어렵다, 이런 얘기가 나왔다. 그러면서 선생이 한국어는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 다른 어족에 속하고 어쩌고 하길래 '아 또 동양 언어에 대한 이해가 없이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가 비슷한 줄 아는 우물 안 스위스 개구리인가 보네'라는 나의 무의식의 발로였는지 나는 자꾸 독일어 선생 말을 끊으며 주절댔다.


"한국어는 고립어야, 비슷한 말이 없어, 어족 (Makro Sprachfamilie 마크로 슈프라흐파밀리에)이 없다니까, 예전엔 우랄 알타이어족이라고 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아니랜다......"


선생이 '내 말이 그 말이잖아. 한국어는 알타이어에 속한다고 하다가 이젠 아니라고 하는데 아주 예전엔 다른 비슷한 말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우리가 몰라서 고립어라고! 내가 몇 분 동안 말하려고 하면 네가 자꾸 끊으면서 안 들었잖아!'라고 분통을 터뜨리기 전까지.


이런...... 나의 성급함에 대한 나름의 변명을 해 보자면 프랑스 살던 시절부터 누적된 피해의식이라고나 할까. 동양과 한국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는 유럽 우물 안 개구리들이 더듬거리는 내 말을 끊고 하도 개굴 대니까 이 사람도 또 그러겠지, 하고 이미 대화 시작 전에 머릿속에서 상황 시뮬레이션이 끝나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은 내가 매 번 당했지만 이번만은 내가 본때를 보여 주리라, 무지몽매한 유럽 개구리에게 한 수 가르쳐 주자, 마음이 급한 나는 선생 말을 듣기보단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서 머릿속에서 만든 문장을 그저 내뱉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듣는 것인데...... 돈데크만이 또.


IMG_20200502_150025_586.jpg 독어 공부를 위해 읽고 있는 좀머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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