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거슬리는 행위는 금지, 규칙을 어기면 당연히 벌금, 그 벌금의 액수는 엄청날 것. 이게 스위스 라이프다. 그래서 '스위스 살이 어때?'라고 물어보는 지인들에게 '조용한 지옥'이라고 농담 삼아 대답하곤 했다. 밤 10시 넘으면 층간 소음 걱정으로 화장실 물도 못 내리게 하는 나라가 이게 나라인가.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위험하며 시끄러운 파리의 지하철에 비해 깨끗하고 안전하고 조용한 스위스의 트램은 탈 때마다 황송하다 (물론 무지하게 비싸지만).
그런데 어제 트램에 앉아 있는데 한 할머니가 앉아서 전화로 엄청 시끄럽게 떠드는 거다. 스위스 사람도 대중교통 안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구나,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아무리 요즘 독어를 배우고 있어도 독일식 Hoch Deutsh를 배우고 있어서 어차피 스위스 독어는 못 알아들으니까 시끄럽다고 해서 별로 거슬리지도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선글라스 너머로 멍하게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울었다. 격정적인 그 통화 내용은 내가 못 알아 들었지만 어쩌면 누군가 아플 수도 있고, 누군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 미치도록 그리울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었나 보다. 한 사람의 긴 인생의 상처가 목격자의 마음에도 새겨졌다. 그의 행동이 타인에게 민폐라 생각했던 나의 알량한 판단력이 부끄러워졌다. 가서 눈물 닦아 주거나 왜 우냐고 물어보거나 혹은 쳐다봐서 미안했다고 사과도 하기 전에 다음 정거장에서 할머니는 울면서 내렸다. 그리고 그의 자리에 묻은 눈물의 흔적은 커피를 들고 탄 젊은 여인이 풍기는 커피 향이 닦아 냈고 트램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알아들은 사람들이나 못 알아들은 나나 모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흔들리며 앞만 보며 가고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못 알아 들어서 오해하고 알아 들어도 망설이다 따라 내리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상처 입은 사람들을 흘려보내고 있다. 내가 그에게 대고 싶었던 이기적인 핑계는 다음과 같다.
"미안합니다, 아직은 내가 당신의 언어로 말하지 못해요. 아직은 내가 당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요. 그러니 내가 당신을 오해한다 해도 당신은 나를 이해해 줘요. 당신의 이해에 미리 감사합니다."
Entschuldigung, ich kann Ihre Sprache noch nicht sprechen. Ich verstehe Ihre Sprache noch nicht. Auch wenn ich Sie falsch verstehe, bitte verstehen Sie mich. Danke im Voraus für Ihr Verständn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