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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Dec 22. 2022

크리스마스 쿠키

 미국 드라마 ‘커뮤니티’는 어울렁 더울렁 모여 사는 마을 공동체 얘기가 아니라 전문대 과정인 ‘커뮤니티 칼리지’ 안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드라마다. 잘 나가던 주인공 변호사 제프는 학력 위조가 걸려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학력을 쌓기 위해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해서 그곳의 다른 학생들에게 ‘난 너희와 달라’라고 담을 쌓고 무시하는 듯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어 간다. 시즌 1의 한 에피소드는 타 대학과의 토론 대회에 전직 변호사였단 이유로 학교 대표로 뽑혀 나간 제프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내용인데 제프는 인간은 타고나길 악하다는 성악설을 주장하고 상대방은 성선설을 주장한다. 처음에는 밀리던 제프가 점점 실력을 발휘해서 토론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자 무언가 비장한 결심을 한 듯한 타 대학 대표는 장애인이었는데 앉아 있던 휠체어에서 몸을 일으켜 넘어질 듯이 바닥으로 자신을 내던진다. 그 모습을 본 제프가 깜짝 놀라 그가 다치지 않도록 안아서 잡아 주자 의기양양해진 상대방이 소리를 지르고 승리하며 토론 대회는 끝난다. “이것 봐, 인간은 선하다고!”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드라마를 팔 엄두는 나지 않아서 예전에 보던 ‘커뮤니티’를 복습하느라 이 에피소드를 본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마약 중독자와 노숙자를 돕는 단체에서 크리스마스 전에 거리에서 쿠키를 나눠 주는데 우리 교회의 여선교회에서 쿠키를 기부하기로 해서 몇몇 아줌마들과 함께 성경공부 후에 남아 쿠키 포장을 하고 있었다. 정성껏 구워 온 홈메이드 쿠키들의 고소한 버터 냄새, 빨간색 초록색 포장지가 내는 사각사각 소리,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색 리본, 그리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 가운데 기분 좋게 일을 하는데 리더가 말한다. 목사님이 그러는데 최근에 교회에서 없어지는 물건이 많으니 쿠키 포장을 마치고 교회에 두고 가지 말고 꼭 들고 가라고 했다고.


 연말을 맞아 교회는 바쁘다. 주일학교에선 밀가루, 쿠키, 바디로션, 샴푸, 커피와 차 같은 것을 모아서 취약계층 가정에 전달하기로 했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전자제품과 헌 옷도 모으고 있다. 매춘부들을 돕는 사역을 하는 팀, 중동 선교사를 돕는 팀, 각종 소그룹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산 음식과 물품들도 창고에 모이고 있다. 그런데 그 창고에서 자꾸 물건이 없어진다는 거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한다는 봉사자들 중에 누군가 창고에 드나들다가 견물생심인지 하나씩 슬쩍 가져가는 것 같은데 참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어느 교회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교회는 죄인들이 모인 곳이라고 하니까.


 거짓말을 하고 학력을 위조하는 사람도 남이 다칠 것 같으면 구해 줄 수 있다. 그 사람이 또 뒤돌아서서 남을 무시할 수도 있다. 자기 시간을 빼서 남을 돕는 일에 열심인 사람도 양심을 속이고 도둑질을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또 뒤돌아서면 회개하고 눈물 흘리며 더 큰 것을 내어 줄 수도 있다. 도둑질을 하는 사람을 정죄하고 혀를 끌끌 차는 나도 언젠가는 이기적이었고 언젠가는 남의 것을 부러워 한 적 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우리를 용서하며 쿠키를 포장한다. 내 것을 하나 슬쩍 가져가는 미운 누군가가 있어도 그래 그까짓 쿠키, 먹고 따뜻한 크리스마스 되거라 하고 웃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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