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브룬 궁전은 여름 궁전으로 지어졌지만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가 사랑해서 거의 1년 내내 머물렀다고 하는 아름다운 궁전이다. 그곳에서는 운 좋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화려하게 꾸며진 많은 방을 돌아다니면서 황족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가장 사랑
해서 '씨씨'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미모의 황비 엘리자베쓰가 하루에 수 시간 동안이나 머리 손질을 하며 서 있었다는 거울 앞에서 사람이 머리 빗기만 몇 시간을 하는 게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품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도 미장원에 가서 파마하고 염색할 때 몇 시간씩 꼼짝없이 앉아 있다. 내 무릎 위에 놓인 것은 미장원에 비치되어 있는 여성잡지이고 씨씨는 시녀가 머리를 빗어 줄 동안 각종 언어 교육과 유럽의 정치, 역사 과외를 받았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정략결혼한 남편과의 애정 없는 결혼 생활과 시모 조피에게 자녀 양육을 비롯한 모든 전권을 빼앗기고 사는 갑갑한 궁궐 생활에서 느끼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씨씨는 몸매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해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아 화려한 다이닝룸 테이블에도 앉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거대한 식탁 위 반짝이는 은식기에 묻은 쓸쓸함이 아무리 공들여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구나, 싶다. 그래도 그녀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고 남편의 외사랑도 받았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자주 궁을 비우고 본인 외모 가꾸기에나 힘쓰고 다른 왕족과의 스캔들도 있었지만 대중은 그녀를 동정하고 사랑했다.
"이 쇤부른 궁전의 주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은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입니다. "
오디오 가이드의 이 설명에 이르면 여름궁전의 방문객은 역사의 얄궂은 아이러니를 느낀다. 여기서 태어나 프랑스로 시집간 한 여인은 똑같이 돈 쓰고 똑같이 외모 꾸미고 똑같이 순탄치만은 않은 결혼 생활을 하고 똑같이 스캔들 나고 그냥 그렇게 여느 황족처럼 살았는데 천하의 악녀로 몰려 단두대에서 죽임을 당했구나.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외설적인 소설들의 단골 주인공은 마리 앙트아네트였다고 하니, 누구도 가까이서 지켜본 적 없는 오스트리아 악녀의 사치와 부도덕함과 기행을 전 국민이 쉽게 입에 올렸다. 급기야 지어낸 말들이 문자로 쓰이고, 쓰인 것은 있음 직한 공신력을 얻고, 있음 직한 것이 믿음직한 것이 되면서 대중의 분노는 혁명의 필요조건만큼 축적되었으리라. 그래서 종종 학자들이 뽑아내는 섹시한 칼럼 제목은 '프랑스혁명은 야설에서 비롯되었다'류가 되기도 한다.
이들 인생은 다른 방식으로 마감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씨씨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테러로 죽었다. 비극적인 결말을 제외한 이들 운명의 공통점이라면 후세는 이 두 여인의 초상화가 새겨진 수많은 기념품으로 장사를 한다는 거다. 조리돌림 당하다 억울하게 죽었어도, 사랑받고 동정받다 비명에 갔어도, 잊힐 수 없고 또다시 이야깃거리가 되는 운명을 타고난 비범한 여인들이여. 당신들을 내몰았던 그 바쁜 운명의 짐을 내려놓고 먼 곳에서 편히 쉬고 있기를...